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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호소 "내가 죽어야 가정폭력 인가요" 지난 10월 22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혼한 전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여성이 사망하는 등 가정폭력 참사가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29일 오전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 권우성

"등촌동 아파트 주차장 살인사건 피해자의 친구"가 마이크를 잡았다.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떨렸다. 목이 메 발음이 새기도 했다. 손글씨로 써온 A4용지를 바라보며, '피해자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혼 후 4년간 살해 위협에 시달린 고인과 가족들의 고통이 너무나 큽니다. 가족들이 친구에게 사고를 당하기 바로 전날에도 '조심하라'고 하고 헤어졌는데..."

29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670개 여성단체 회원 100여 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시스템을 전면 쇄신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이들은 "지난 10월 22일 강서구 등촌동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혼한 전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사망했다"라며 "이 사건에 대한 분명한 수사와 엄중 처벌을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경찰의 대응도 비판했다. 자신을 "15년간 가정폭력을 당한 피해자"라고 밝힌 여성은 "전 남편이 이혼 후 저를 '죽이겠다'며 한밤중에 문을 부수기까지 해 경찰에 신고했다"라며 "그러나 출동한 경찰은 전 남편과 대화 후 제게 '아줌마가 좀 잘하세요'라고 말할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 남편에 맞아 갈비뼈가 2대나 부러지고 목을 졸라 기절하는 등 심각한 폭행으로 경찰을 여러 번 불렀으나 (출동한) 경찰은 가해자의 말만 들었다"라고 말했다. 

 
여성들의 호소 "내가 죽어야 가정폭력 인가요" 지난 10월 22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혼한 전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여성이 사망하는 등 가정폭력 참사가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29일 오전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 권우성

아빠에게 폭력을 당한 아이도 손에 마이크를 잡았다. 피해자는 "수차례 아빠에게 구타를 당해 경찰에 신고하면 그때마다 (출동한) 경찰은 오히려 아빠를 신고한 나를 나무랐다"라며 "그때마다 몸과 마음에 멍이 들었고, (아빠가) 칼로 날 죽이겠다, 라이터로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할 때도 경찰은 별 말 없이 돌아갔다"라고 했다.  

이들은 가정폭력을 처벌하지 않는 국가가 "가해자"라고 했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이 '가정의 보호와 유지'를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어 가정폭력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있다는 것.  

여성인권실현을 위한 전국가정폭력상담소연대 준비위원회 김명진 위원은 "(가정폭력 가해자를) 처벌한다 해도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해 상담명령 등으로 처벌 수준이 미미하며,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도 과태료만 내면 그만일 뿐"이라며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해당법을 개정하고, 가해자가 상담이나 교육을 받는 것을 조건부로 한 기소유예를 폐지하라고 권고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는 처벌의 대상이지 상담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가정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둔 현행법이 사라지지 않는 한 김씨(등촌동 주차장 살인사건 가해자)와 같은 가해자는 만연하고, 죽음으로 몰리는 제2, 제3의 피해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원미경 변호사도 "법원행정처는 협의 이혼 때 의무적으로 면담을 하는 현재의 법을 개정하고 부부 상담을 권장하는 관행도 바꾸어야 한다"라며 "(현행법은) 가정의 회복에 치우쳐서 가정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방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성들의 호소 "내가 죽어야 가정폭력 인가요" 지난 10월 22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혼한 전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여성이 사망하는 등 가정폭력 참사가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29일 오전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 권우성
 
한편 같은 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2017년까지 5년간 가정폭력 신고는 115만 9159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검거 건수는 15만 9372건으로 13.7%에 불과했다. 

가정폭력 사범의 구속률은 1%도 안 됐다. 지난 3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2018년 6월까지 가정폭력 사범은 16만 4020명으로 이 가운데 1632명이 구속됐다. 수치로 따지면 0.995% 이다.     
태그:#가정폭력, #강서구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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