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이 일본 영화의 얼굴이 되기까지

누군가 '구로사와 아키라'를 말한다면 많은 이들이 자연스레 <라쇼몽>을 떠올릴 것이다. 구로사와는 1950년에 이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최고상을 받았다. 이전까지 신예에 불과했던 그는 <라쇼몽>을 기점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라쇼몽>을 필두로 혜성처럼 떠올랐기에, 구로사와하면 떠오르는 게 <라쇼몽>인 것은 몹시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라쇼몽>이 구로사와 영화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로사와의 영화로 일본 영화를 접한 서구인들은 일본의 영화 전반을 '구로사와'로 인식했다. 구로사와가 국제무대에 '일본 영화'를 널리 알리게 된 탓인지, 이후의 일본 영화들은 구로사와의 변형이거나 복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다. 구로사와의 후광이 일본 영화계에 드리운 것이다. 

구로사와가 1950년에 라쇼몽으로 베니스 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이후로 일본 영화는 거진 '구로사와의 시대'였다. 서구가 구로사와를 통해 접한 '일본 영화'란 서구적인 것에 동양의 미학을 합한 것이었다. 구로사와는 성공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수행한 감독이었고, 자연스레 일본 국내에서는 구로사와가 일본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그럼에도 확실한 점은 '일본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구로사와를 통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구로사와가 일본 영화를 국제 무대에 올려두고 나서야 비로소 오즈와 나루세가 등장했다. 말하자면 일본 영화는 나루세와 오즈라는 '일본적인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 구로사와라는 '서구적 풍경'이 필요했다.
 
 영화 <스가타 산시로>의 한 장면

영화 <스가타 산시로>의 한 장면 ⓒ 구로사와 아키라

 
서구적인 풍경을 담은 구로사와의 영화

서구인들이 보기에 구로사와의 영화는 입맛에 꽤 맞았다. 구로사와는 당대의 할리우드 문법을 대거 차용하면서도 일본적인 소재를 잘 녹여냈다. 이를테면 <라쇼몽>에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을 차용했다는 사실과 플래시백과 디졸브의 적절한 활용이 있다. 이 두 가지 사실들, 어느 일본인 커플에게 닥친 진실의 퇴락과 삼원색을 보여주는 방식은 그야말로 '일본'이기에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재를 차용한 <시민케인>이 있었고, 오손 웰즈가 사용한 로우키(Low-Key)는 <라쇼몽>에서 정반대가 되었다. 오손 웰즈가 누군가의 모습을 조명한다면 구로사와는 인물을 제외한 '세계'를 조명했다. 그리고 그런 대비가 서양과 동양을 판가름하는 것에 일조했다.

<라쇼몽>이 그리는 세계는 거짓이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하게 거짓이 있는 세계다. 인물들의 발언은 각자 모두에게는 진실이기에, 그 세계에서 사실에 대한 교집합은 없다. 말하자면 네 인물의 세계는 하나의 팔레트가 아니라 네 개의 층계로 되어있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도형 같아도 사실은 일직선의 모음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인물의 시선은 <시민케인>에서 오손 웰즈가 '로즈버드'라는 소재를 숨겨둔 채 그 주변만을 보여주던 것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오손 웰즈가 진실에 대한 시선의 교차를 보여주던 것이었다면 구로사와는 서로 다른 세계의 법칙을 두고 헤매는 이들의 근본적인 오류를 지적했다.  

오손 웰즈의 세계는 로즈버드에 스포트라이트를 내리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이고, 반면 구로사와의 세계는 암흑천지인 세상에서 자신만이 스포트라이트라 생각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차이, 비슷한 소재에 대해서 음과 양의 대비를 이루는 모습이 동서양의 대비 더 나아가서는 일본의 오리엔탈리즘인 '개인'이라고 오인할 여지는 충분했다. 사실 무엇이 일본적이냐고 물었을 때 누구도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은 익숙하게 보아왔던 거장의 손길이 지구 반대편에서도 '등장'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아마도 서구는 딱히 구로사와라서 열광한 것이 아니라 단지 구로사와가 자신들의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났었더라면…이라는 만약을 가정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영화 <스가타 산시로>의 한 장면

영화 <스가타 산시로>의 한 장면 ⓒ 구로사와 아키라

 
무엇이 일본적인가

재밌게도 구로사와에 뒤이어 조명된 오즈와 나루세 또한 '일본적'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이는 구로사와의 후광에 힘입은 바가 크다. (애초에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시선이기에 서구가 아니라면 성립되지 않는다) 이들은 살아생전에 일본 영화계에서 구로사와보다 더 낫다고 평가받았고 더 먼저 조명되었으나 국제무대에서는 정반대였다. 어쩌면 오즈와 나루세가 지극히 일본적인 모습을 담은 것은 구로사와의 반대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구로사와는 두 감독의 후배로서 많은 조언과 영향을 받았기에 이러한 발언은 우스갯소리로 넘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만은 확실하다. 서구에서는 오즈와 나루세의 홈드라마가 구로사와의 '반대항'으로 여겨졌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일본 영화계에서는 무엇이 일본적인가를 두고 논란이 분분했다. 누군가는 구로사와가 세계에 널리 알려졌으니 그가 일본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오즈와 나루세만이 일본 전통의 계승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오즈와 나루세의 초기 영화도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내러티브를 모방했으니 처음부터 계승자는 아니었다. 애초에 세계 영화의 발원지가 할리우드로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무엇이 일본적인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후발주자라는 점에서 할리우드의 문법을 변형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두 사람은 필모그래피의 중반에 들어서 홈드라마를 찍기 시작했고 그 시기가 대략 구로사와의 첫 영화와 얼추 비슷하므로, 구로사와의 등장과 동시에 홈드라마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말할 수는 있다. 결국 이러한 시기적인 미묘함은 일종의 세대교체에 해당하는 것이지 그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구로사와의 영화도, 오즈의 영화도 일본의 방식으로 최적화한 '일본 영화'인 것이다. 
 
 영화 <이키루>의 한 장면

영화 <이키루>의 한 장면 ⓒ 구로사와 아키라

 
할리우드 문법과 달랐다

오즈와 나루세와 미조구치와 구로사와를 포함한 일본 영화의 공통점은 영화의 세계가 인물의 내면을 이룬다는 것이다. 일본의 문화에서 촉발된 일본인의 개인성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이었고, 그들이 보기에 영화 속의 세계는 인물의 본심이 드러나지 않는 장소였다. 따라서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인물이 아니라 세계를 통할 필요가 있었다. 즉 그들은, 인물이 짓는 표정은 단지 허와 실에 불과하다고 보았으며 반대로 인물을 제외한 세계를 통해 마음을 보여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서, 그들이 인물을 조명하는 방식도 전통적인 할리우드 문법에서 특정인의 마음을 보여주려 스포트라이트를 쬐던 것과는 반대가 되었다. 스포트라이트가 향하는 곳은 오히려 인물이 아니라 배경이었고, 어쩌면 인물을 등외시한 채 배경에만 집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진정한 속마음이 배경에 담겨있다는 일본 영화의 문법은 아무쪼록 오리엔탈리즘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서구가 공업과 발전의 상징이라면 동양의 자연과 청결한 이미지가 있었고, 인본주의라는 서구 철학의 흐름과는 반대로 자연주의의 테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인물이 중심이 되는 것은 다른 일본 영화를 뒷받침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구로사와 영화 전반에 걸쳐 강조되는 인물의 얼굴, 다른 맥락으로는 시대적 현실을 내포하고 있는 그 인물의 얼굴이 있기에, 우리는 오즈와 나루세에게서 얼굴이 아닌 배경에 중점을 둘 수 있었다. 오즈와 나루세의 영화가 프레임 안으로 인물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던 것과는 다르게, 구로사와의 영화는 시대적 맥락 혹은 외부 텍스트를 자주 빌려왔다는 점에서 단지 프레임 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요컨대 <천국과 지옥>이나 <들개> 그리고 <어느 멋진 일요일>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반면 오즈와 나루세의 영화에는 늘 비슷한 순간과 시선만이 있다. 작품 속의 집은 마치 시대와 분리된, 어느 외딴 공간인 듯 보인다. 비록 당시의 현실이 다른 감독들의 작품에도 숱한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하더라도 구로사와의 영화는 늘 진취적인 얼굴 상이 있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었다. 
 
 영화 <이키루>의 한 장면

영화 <이키루>의 한 장면 ⓒ 구로사와 아키라

 
할리우드와 일본 사이에 자리 잡다

구로사와의 영화는 할리우드와 일본의 사이에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중재자이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박쥐 같은 것이기도 하다. 구로사와는 진취적인 인물을 내세우면서도 그들을 둘러싼 배경, 인물의 속마음과 세계의 역전이라는 일본 고유의 테마를 놓치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의 영화에는 딱히 인물이라 할 것도 없었으며 세계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 오히려 세상을 대변하는 인물과 인물을 대변하는 세상이라는, 일본 고유의 개인성을 거꾸로 뒤집는 재치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구로사와의 영화는 프레임 안의 요소들이 각기 개별적으로 존립하기에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밑바닥>과 <도데스카덴>에서 펼쳐지는 가난의 군상극에서, 여러 인물의 모습과 그들이 이곳까지 흘러오게 된 배경을 한 자리에 보게 된다. 이들은 한 공간에 있으니 일종의 공동 주거, 즉 한지붕 아래에 사는 셈이다. 이때 만약 오즈와 나루세라면 인물들이 사용할 단어를 나열해 놓고서, 그 단어를 배경 속에 배치한 후 인물의 대사를 집 안에서만 맴돌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할리우드였다면 이들 개인의 이야기를 플래시백 혹은 대사를 통해 보여주었을 것이다. 반면 구로사와는 오즈와 나루세처럼 인물의 단어를 배경 속에 나열한 후에, 할리우드처럼 그 배경 속의 단어를 인물 스스로가 꺼내오는 방식을 택한다. 즉 구로사와는 인물 스스로가 자신의 속내를 영화 내부에서 드러내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때, 외부적 텍스트가 그 속으로 들어가므로 구로사와의 본의는 따로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영화 속에 반영된 그 시대가 자신의 문제를 먼저 말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했다. 
 
 영화 <데루스 우잘라>의 한 장면

영화 <데루스 우잘라>의 한 장면 ⓒ 구로사와 아키라

 
무표정 무감정의 스크린

이와 같은 화법은 꽤 간접적인데, 일본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대담한 것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말해, 무언가를 직설적으로 말한다는 게 금기시되는 일본 영화 속 세계에서 그의 인물들이 진취적으로 보이는 것은 오즈와 나루세와 비교해볼 때 더욱 명확해진다.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작품 속에 벌어지는 문제와 현상에 대해서 늘 신랄한 비판을 가했고 눈을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멋진 일요일>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난한 커플은 갑작스레 관중석을 바라본다. 그들은 단지 정면을 바라본다는 행위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박수를 쳐 달라고 요구한다. 이윽고 관객의 박수를 받아들인 영화는 자신들의 세계가 창조된 것이라는 점을 깨우치듯이, 지휘자뿐인 무대에서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창조해낸다. 

당연하게도, 이와 같은 호응 요구는 스크린을 죽은 공간으로 여겼던 일본의 관객들에 의해 묵살되었다. 영화 속의 인물들이 자문자답하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의 관객들이 영화의 호응 요구에 응답하지 않은 반면, 해외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화는 서구와 일본의 상반된 문화, 일본에서는 스크린이라는 프레임이 현실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일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즉 개인의 세계가 무표정 혹은 무감정으로 표출되는 것처럼, 영화 속의 세계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묘사되어야 했던 것이다. 요컨대 일본 영화에서 인물 대신 풍경을 찍는 카메라의 모습은 자연이 무표정과 무감정의 성격을 띤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이나 풍경은 내면을 알 수 없고, 혹은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예의인 셈이다. 오즈는 그런 맥락을 발전시켜 죽은 시간 속에 숨겨진 '죽은 감정들', 필로우 쇼트를 자주 활용하고는 했다. 
 
 영화 <데루스 우잘라>의 한 장면

영화 <데루스 우잘라>의 한 장면 ⓒ 구로사와 아키라


집으로의 귀환 언어의 귀환

다른 영화들이 배경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것과는 다르게, 구로사와는 딱히 배경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다만 강조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다른 영화에서 배경이 하나의 독립된 세계 이를테면 인물이 못다 한 말이 담겨있고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그 봉인이 풀리지 않았다면, 구로사와의 영화는 배경 속에 언어가 있고 인격이 있었으며 인물들이 마침내 그곳에 버려진 자신의 언어를 뒤늦게 돌아와 획득하고는 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다는 고전적인 서사가 일본에서 '홈드라마'로 변형되었을 때도, 구로사와의 인물들은 집을 떠날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집에서 그 해법을 찾고 마침내 집을 떠나게 되는 것이었다. 

가장 첫 번째 작품인 <스가타 산시로>는 구로사와의 그런 작품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젊은 산시로(후지타 스스무)는 우연한 기회에 도장에 입문하게 되는데, 스승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스승은 망나니인 산시로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에 화가 난 산시로는 스승이 자신을 인정해줄 때까지 연못 속에 서 있기로 한다. 그렇게 연못 속에서 수일을 보내던 산시로는 연꽃이 개화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연꽃에서 무언가 깊은 깨달음을 얻고 그동안의 행실을 반성하게 된다.

이때 연꽃을 막연히 들여다보는 산시로의 얼굴이 조명된 후 리버스 쇼트로 연꽃의 이미지가 제시되는데, 산시로와 연꽃의 '얼굴'이 교차하게 됨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산시로가 이 연꽃에서 얻은 깨달음이 무엇인지는 영화 속에서 미지로 남겨진다는 것이다. 산시로는 그저 깨달음을 얻었다고만 말할 뿐 무엇을 보았는지는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결국 산시로의 깨달음, 그 속마음이 영화의 배경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점에서 일본 영화의 고전적인 화법을 우리는 확인한다. 

집이 없는 상황에서 도장을 집으로 삼게 된, 진심으로 스승의 뒤를 따르게 된 산시로에게 집을 지켜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집이 생긴 자, 그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므로 말이다. 말하자면 이 떠돌이에게 집을 부여한 것은 연꽃이었다.

산시로는 연꽃을 통해 영화 속 세계 전반에 흩어져 있던 표면화되지 않았던 자신의 속마음, 언어를 '개화'한다. 그리고 이 연꽃은 고난이라는 이름의 물속에서 피어난다는 점에서, 마땅한 마음가짐이 없던 산시로의 상황과 그의 마음이 열렸다는 점을 은유한다. 즉 이 연꽃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이 없는 것은, 영화 내러티브 상으로 존재하는 이야기 전개의 도구가 아니라 일본영화라는 배경을 응용한 영화적 장치였던 것이다. 식물이 뿌리에서부터 물을 끌어올리듯이 이 연꽃은 수면 아래에 있는 언어를 끌어와 인물에게 직접 '부여'한다. 그리고 이 부여는 꽃의 '얼굴'과 인물의 '얼굴'의 직접적인 시선 응시를 통해 이루어진다. 결국 구로사와 영화에서 집으로의 귀환은 영화 속 세계에 흩어진 '언어'를 다시금 획득한다는 것이며, 그 획득은 시선의 마주침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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