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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러웠다. 원래 지도만 있으면 목적지를 찾는데 문제가 없던 내가 도저히 목적지를 찾을 수 없었다. 영화 <중경삼림>으로 유명해진 그곳,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찾기 위해 IFC 2를 오가기를 여러 차례. 이쪽이 맞는 건지 저쪽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다시 한 번 지도를 봐도 감이 오질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지도에서 내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도를 볼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니 누구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목적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야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지도를 본다는 것은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과 꽤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야 할 길, 이루고 싶은 것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현재 나의 위치와 상태를 확인한 후 부족한 것을 채우고 보충해 나가는 것이니까.
 
지도들
 지도들
ⓒ 김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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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IFC 몰을 벗어나기로 하고 도로로 나온 뒤 무작정 길을 건넜다. 지도를 다시 한 번 봤지만 아직도 내가 어디쯤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길을 건너야 할 것 같다는 '감'이 왔다. 때로는 정확한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리 정한 대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감 (感)'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우리가 언제나 미리 정한 대로만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 문득 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 이 길 보다는 저 길이 더 적합하다는 감이 온다면 그 감을 따라 가 보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다. 어차피 우리의 내일은 아무도 알지 못하니까.

세계에서 가장 긴 800m의 야외 에스컬레이터로 기네스 북에 등재된 곳. 하지만 나에게는 <중경삼림>에서 웡페이가 짝사랑하는 양조위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이용했던, 그래서 사랑이 가득한 눈길로 그 집을 올려다 보던 그 장소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
ⓒ 김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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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길을 찾지 않고 이리저리 헤매다 찾아서였을까. 반갑고 또 반가웠다. 그리고 사랑스러웠다. 이런 철 구조물이 영화라는 콘텐츠를 만나서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지도 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어 막막함으로 가득한 상황의 연속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을 잃었다고, 길을 찾기 어렵다고 불평하거나 서운해하지 말자. 조금 돌아가면 어떻고 조금 힘들게 가면 어떤가. 때로는 감 (感)이 그리고 삶이 이끄는 대로 그렇게 한 걸음씩 가다 보면 결국엔 반드시 목표한 곳이 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홍콩에서 길을 잃어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 저서로는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가 하는 말: 영화에서 찾은 인문학 키워드]가 있습니다.


태그:#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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