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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에서 열린 국제 관함식에 참석했다. 이날 제주가 평화를 위한 협력의 장이 되길 바란다는 연설과 함께 문 대통령은 강정마을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문 대통령은 마을 주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공동체 복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지난 11년 동안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빚어진 구럼비(바위) 파괴 등 환경 파괴와 주민 갈등 때문으로 강정마을 주민들에겐 깊은 생채기가 생겼다. 그 기간 동안 수십 명이 연행되고 잡혀갔다. 오래되고 깊어진 갈등의 골을 어떻게 치유하고 극복해나갈지, 문재인 정부는 시험대에 올랐다.

소통을 강조하는 정부답게 형식적으론 간담회 등을 진행했다. 하지만 간담회에 일부 강정마을회 사람들이 배제되었다는 점, 왜 꼭 국제 관함식을 강행했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선 주민들의 날선 비판이 여전하다. 그 가운데 외국 함정 2곳에서 기름까지 유출됐다.

필자 역시 지난 9월 중순, 강정마을을 다녀간 바 있다. 남북한 관계가 무르익고 평화에 대한 갈망이 한창이던 그때, 제주 해군기지의 국제 관함식이 예정돼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쪽에선 평화가, 한쪽에선 군사 전략이 실행되고 있었다. 과연 무엇이 평화이고, 평화를 위한 길인지 알 길이 없다. 주민들이 불행하다면 누구를 위한 평화이어야 할까.
 
건전한 논쟁은 언제나 환영이나, 상대방을 비방하는 논쟁은 사양한다.
▲ 페이스북에서 제주 해군기지에 대한 성격 규정으로 논쟁하고 있는 모습. 건전한 논쟁은 언제나 환영이나, 상대방을 비방하는 논쟁은 사양한다.
ⓒ 페이스북(S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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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국제 관함식, 갈 길 먼 평화의 길

최근 오랜 동안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벌여온 외국인 뮤지션(Martin Seth. 한글명 이 산)이 페이스북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왔다. 이번 제주 국제 관함식에 대한 글을 퍼오며, 제주 해군기지가 '미국-한국 해군기지(US-ROK naval base)'라고 표현한 것에 대한 논박이다. 이에 대해 저널리스트인 미국인 2명이 왜 제주 해군기지가 미국의 영향에 있느냐고 비판했다. 강정마을에서 오래 활동해 와서, 그쪽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하는 말 아니냐는 것이다. 과연 제주 해군기지는 한국 것인가 미국-한국 것인가.

겉으로 보자면, 제주 해군기지는 분명 한국의 것이다. 한국의 돈이 투입됐고, 한국 해군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제주 해군기지는 한국에 있다. 그런데 군사시설이라는 것은 단순히 시설과 지리적 위치, 투입 예산만으로 그 성격을 규정하기가 힘들다. 가장 중요한 건 제주 해군기지가 무엇을 위해 사용되느냐이다. 제주 해군기지는 군사적 목적, 즉 자주 국방과 안보, 전쟁 시 필요한 전략적 거점으로 활용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절대 안 되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한 가정이 집 한 채 짓는다고 해보자. 그 가정에선 거주의 목적 이외에, 집이 있는 마을의 공동회관으로 쓰고자 한다. 이 집엔 누구나 수시로 드나들 수 있다. 특히 이 집은 재난이 일어났을 경우, 재난특별 보호소로 쓰는 것으로 약속돼 있다. 심지어 이 집을 지을 때, 공동회관과 재난특별 보호소로 활용하기 위해 국가에서 설계에 들어가야 할 항목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집 짓는 비용은 이 가정에서 투입했다. 집의 위치는 물론 이 가정이 소유하고 있는 땅이다. 이 집에서 자주 마을 회의와 재난특별 대비 훈련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이 집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적어도 국가-가정 공동소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2012년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기사 '제주해군기지가 미군기지라고 보는 이유'에선 제주 해군기지의 설계 과정에서 주한미군 해군사령관의 요구 사항이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 설계 과정에 관여한 것이다. 또한 제주 해군기지엔 미군 함정들과 각 나라 함정들이 국제 관함식 이외에 군사적 목적으로 자주 기항할 것이다. 한미 군사훈련이 실시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전쟁 시엔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 해군기지는 우리나라의 것인가, 아니면 미국-한국 공동소유라고 봐야 할까?

한미 공동으로 사용하면, 공동 소유 아닌가

제주 해군기지가 한국의 것이냐, 미국-한국 것이냐는 논쟁은 어찌 보면 굉장히 관념적일 수 있다. 하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상대방의 의중을 왜곡하는 식으로 논쟁이 이뤄져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논쟁의 대상이 한국인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제주 해군기지가 한미 공동소유라고 주장하는 건, 한반도에 있었던 전쟁의 비극,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자주적 국방과 안보, 앞으로 펼쳐질 통일 한국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모든 주장은 의도를 담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를 한미 공동의 것이라고 언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좀 더 거시적이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사안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거짓이네, 일부 과격 활동가들의 선전 행위라고 주장하는 건 트집을 잡아 깎아내리려는 억지에 가깝다. 그것도 저널리스트라는 이들의 행태라면 더더욱 용납하기가 어렵다.

태그:#제주해군기지, #강정마을, #전시작전권,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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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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