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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윤 일병 사망사고후 국방부 앞에서 군 의문사 피해 유족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4년 8월, 윤 일병 사망사고후 국방부 앞에서 군 의문사 피해 유족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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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철책선 근무 중 의문사한 학군장교 출신 소대장이 숨진 지 36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았다.

23일 국방부는 지난달 전공사상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단순 자살자'로 분류됐던 고 김영민 소위를 '경계 등 직무수행 중 사망한 사람'으로 판단해 순직자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김 소위에 대한 순직통보는 내부 행정절차를 거쳐 이번 주 중 유족에게 통지된다.

고인은 서강대학교 학군단(ROTC 20기)를 거쳐 1982년 3월 소위로 임관한 뒤 육군 21사단 일반전초기지(GOP)의 중화기중대 소대장으로 배치됐다. 하지만 3개월 만인 9월 22일 새벽 초소에서 이마에 M16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소위의 형은 사고 직후 가족과 함께 21사단을 방문해 동생의 시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왼쪽다리 정강이에 군화로 차여 움푹 파인 자국과 얼굴에 난 상처 등을 발견하고 이를 군에 알렸다.

하지만 군은 김 소위의 사망을 '단순 자살'로 결론 내린 뒤 사건을 종결했다. 이에 김 소위의 형은 동생의 죽음을 재조사하고 순직으로 인정해 달라는 탄원서를 2017년 7월 국민권익위원회(아래 권익위)에 냈다.

1년간 조사를 벌인 권익위는 김 소위의 죽음이 병영 내 군 생활과 깊게 연관돼 있다고 판단했다.

권익위는 김 소위가 ▲최전방 부대 소대장으로 초소근무 중 사망한 점 ▲서신이나 일기, 증언에 따르면 책임감이 강하고 평소 부하를 아끼는 소대장이었다는 점 ▲당시 시신에 난 여러 상처나 현장에 대한 초동조사가 미흡했던 점 ▲김 소위의 사망 전 부대 상관과 갈등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단순 자살'로 특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김 소위가 사망하기 이틀 전에 쓴 마지막 일기에는 '나도 침묵을 지키면 동조자가 된다. 말해야 한다. 그에게 말했다. 최후통첩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도 '정의와 양심은 자살신청서나 다름없고 서로를 경계하는 눈빛에는 두려움과 벽이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권익위는 군부대 등이 작성한 사건조사보고서와 김 소위가 남긴 서신·일기 등을 분석하고 지인들의 증언을 청취한 뒤 올해 7월 국방부에 "순직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전달했고 이를 국방부가 수용했다.

김 소위의 모교였던 서강대학교 합창반 '에밀레'가 불러 1983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았던 노래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는 의문사한 김 소위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는 곡으로 알려졌다.

태그:#군 의문사, #고 김영민 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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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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