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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올해도 여전히 노벨상 타령이다. 일본은 이번에 또 받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묘연하다는 대목에서 그 타령이 더 구슬퍼진다.

일단 개인적으로 "노벨상 그깟 게 뭐 그리 대수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노벨상을 굳이 운운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학계와 대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문제는 극명해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전집이 나오고도 모자랄 일이지만 근본적인 문제 중 한 가지만 지적해 보자.

학문이 좋아 학자의 삶을 살거나 대학교수 하는 사람이 적은 게 문제다. 사회 전반과 대학이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좋아 초등학교 교사 하는 사람보다 경제·사회적 이유로 교육대학에 진학하는 사람이 더욱 많다고 한다.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고 법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것으로 법관이 되려는 사람보다 명예와 경제적 안정을 위해 법조인이 되려는 사람이 더욱 많은 게 현실 아닌가. 공무원도 그렇고 의사도 그렇고, 심지어는 음악가도 스포츠맨도 그렇다.

축구하는 고등학생에게 주변사람들이 시종일관 묻는 말이 있다.

"너 축구해서 대학 갈 수 있냐?", "축구해서 밥 먹고 살 수 있겠냐?"

모든 게 돈, 돈, 돈

모든 게 돈이고, 모든 게 경제다. 대학도, 학자도, 교수도 대부분 그렇다. 그러니 노벨상이 나올만한 영혼과 창의가 있기 힘들다. 이래서는 즐거워서 공부하는 사람들과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와 결과가 만들어지기 힘들다.

돈이나 명예가 더 중요한 사람들끼리 모여 그런 사람들이 주가 되는 학회지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논문심사가 이루어진다. 학회장은 그 바닥에서 가장 정치적 수완이 좋은 사람이 한다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다.

외국의 학회지에 어찌어찌 논문을 싣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런 논문이 국내학회지에 내는 논문보다 몇 배의 점수를 더 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승진심사에 도움이 되고, 정교수 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게 되고, 연봉 인상으로 연결이 된다. 그런 배경으로는 노벨상을 받는 이들과 비교 자체가 힘들어진다.

이러한 분위기는 인재의 양성과정에서부터 나타난다. 애당초 유학을 갈 때부터 내가 하는 공부를 즐겁고 깊이 있게 할 수 있는 곳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디를 가야 주류가 되고 어느 대학을 나오는 것이 더욱 인정받을 수 있냐가 중요하다. 어떤 것이 교수 임용되는 데에 도움이 될까? 인맥과 학맥을 쌓고 그렇게 나의 경력에 도움이 되는 최고의 선택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떡고물에 관심이 더 많은 대다수의 인재(?)들이 탄생한다.

내 주변의 학생 중에도 외국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이 있다. 물론 이들 중에 학문의 재미와 지적 호기심이 근간이 되어 유학을 결심하는 경우가 왜 없겠는가. 그러나 결국은 한국에서 교수로 임용되는 데 도움이 되는 유학처가 어디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칠레의 문학이나 멕시코의 역사를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성골이 된다.

나도 이들에게 직설적으로 말한다.

"네가 잘 먹고 잘 살 문제 생각을 안 하고 그저 공부를 하고 싶다면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그러나 네가 한국에 와서 교수가 되고자 한다면 미국에서 유학하는 게 도움이 될 거다".

한국어도 미국서 공부해야 '성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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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인정해주는 주류 학술지의 분위기를 익히고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학문적인 방법론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미국이 중심이 된 논문과 학술지 평가의 환경 속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다. 한국에서 교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일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결국 라틴아메리카 공부뿐만 아니라 한국어 공부도 미국에서 하는 추세가 된다. 나는 미국의 학문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공부한 많은 훌륭한 학자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그 훌륭함이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스페인어과건 불어과건 한국어과건 아니면 공학이건 사회학이건 인문학이건 혹은 그 무엇이 되었건 미국만 바라본다. 돈과 명예를 위해 미국만 바라본다. 다양성과 독창성은 설 자리가 없고 그런 흉내내기와 따라가기는 창조적인 생각과 지식의 토대를 열악하게 한다.

학자의 반열에 올라 철밥그릇을 찬 사람들의 이후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연봉이나 승진이나 등등의 것에 가장 민감하다. 순수한 학구심의 선순환적인 풍토가 뿌리내리기 힘들다.

현실이 이런데... 노벨상을 기대한다고요?

즉 학자들의 양성과정과 그 이후의 학문 활동이 모두 돈이 중심이 된 개인적 성공과 경제적 발전으로 귀결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돈과 명예가 주가 된 학문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훌륭한 학문적 성과를 기대하는 건 빵꾸똥꾸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뚱딴지같다고 하겠지만 극히 현실적인 말을 해 보겠다. 노벨상을 받을 학자를 키우려거든 대학교수의 월급을 반으로 깍아라. 최소한 그렇게 되면 돈과 명예 때문에 학문하는 사람들은 현격히 줄어들 것이고 월급이 적어도 내가 진정 재미있어하는 그런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학문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나 학문을 붙잡고 평생 살아가는 사람들을 돈으로부터 해방시킬 때 진짜 공부가 좋아 이것을 하겠노라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할 것이고, 그 결과가 순수한 학문적 성과물로 나타날 것이다. 다양한 논란거리와 문제가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 발상의 전환 없이는 바뀔 게 없다.

사실 교수 월급을 반으로 깎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만은 아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면서, 또한 경제 정의와 사회의 민주화를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강사의 몇 배에 달하는 월급을 당연하게 받는 현실도 결코 묵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태그:#교수, #대학, #강사, #월급,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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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가 역사고 문화다 그리고 학문이고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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