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고 신해철. ⓒ 신해철닷컴


내 인생의 철학적 영도자(領導者)였던 신해철이 영면한 지 4년이 다 되어간다. 2014년 10월 27일, 천재 싱어송라이터였던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다.

나는 개인 블로그나 SNS에 매년 10월 27일에 신해철을 기억하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 올해도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팬들과 함께 그를 기억하고 싶다.
       
내가 신해철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들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13살때 들었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이다. 1989년에 발매된 무한궤도 첫 앨범의 A면 첫 번째 곡이다. CD도 거의 사라진 요즘 카세트 테이프를 본 적도 없는 젊은 세대들은 A면 첫 번째 곡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것이다. 요즘처럼 디지털 음원으로 싱글 곡이 수시로 나오는 게 아닌, 길면 몇 년의 작업 끝에 8개 혹은 10개 정도가 한 앨범으로 발매되던 시절에는 A면의 첫번째 곡이 그 앨범의 대표곡이다. 이 노래의 작품성에 따라서 그 앨범의 성공이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무한궤도

무한궤도 ⓒ 대영에이브이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기 위해 레코드 판매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 기분은 아마 해본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용돈이 부족하니 CD는 못 사고 테이프를 사서, 설레는 마음으로 비닐을 뜯고 휴대용 카세트에서 PLAY 했을 때 그때의 기억이란... 그땐 그랬다.
 
1988년 MBC 대학가요제 신해철은 1988년 MBC 대학가요에서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 1988년 MBC 대학가요제 신해철은 1988년 MBC 대학가요에서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 MBC

 
무한궤도 음반은 1989년에 발매된 앨범이니,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사실, 그 당시 나의 삶의 경험이나 지적 수준으로는 그 가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곡을 작사작곡한 신해철은 그 당시 22살이었는데, 그는 그 당시에 이미 인간이 세상에 온 이유에 대한 의문과 인간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사라지는 존재란 것에 대한 개념(槪念)을 가지고 있었다. 무한궤도 1집의 전곡을 들으면, 동화 같은 사랑이야기인 '여름이야기'와 '비를 맞은 천사처럼' 정도를 제외하곤 다 묵직한 울림을 주는 철학적인 가사의 노래들이다.

무한궤도 이후 1990년, 지금 들어도 명곡인 1집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2집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로 대표되는 신해철의 솔로 시절이 펼쳐진다. 그 유명한 구두 CF가 나왔던 시절이 이 때다.

신해철의 팬들은 알겠지만, 신해철은 한 주제로만 곡을 만들지 않았다. 사랑이 담긴 발라드 곡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1집에는 '연극속에서' 같은 심리학에서나 다룰 법한 내용으로 노래를 창작했으며, 2집에서는 '나에게 쓰는 편지' 그리고 '50년 후의 내 모습', '길 위에서' 같은 인생에 대한 내면의 고심이 묻어나는 곡들을 만들었다.
 
 신해철 2집

신해철 2집 ⓒ 대영에이브이

  
2집을 발매했을 때 그는 24살이었지만 이미 철학자였다. 필자의 24살을 돌이켜보면, 한창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에 빠져있을 때였다. 인생에 대한 고민은 고사하고, 어떻게 하면 초반에 안 털릴까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솔로 2집 앨범이 나온 지 2년 뒤 1993년, 신해철은 기타리스트 정기송과 드러머 이동규와 함께 'N.EX.T (New Experiment Team)' 밴드를 결성한다. 말 그대로 음악적으로 새로운 실험을 하는 팀이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솔로 앨범 이전의 신해철이 한 개인의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상념을 가사로 써냈다면, '넥스트'부터는 사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집 < HOME >의 대표작인 '도시인'에서 그는 외로운 도시의 사람들을 노래했다. 그리고 넥스트의 명반이라고 할 수 있는 2집 <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 >이 출반됐다. 이 앨범에는 '사랑'에 대한 노래 없이, 오로지 철학적인 노래만 수록되었다. 굳이 '사랑'이라고 분류한다면, 병아리 '얄리'에 대한 추억과 환생을 노래하는 '날아라 병아리' 정도라고 할까. 지금 내가 신해철을 추억하듯이 말이다.
 
 넥스트 2집

넥스트 2집 ⓒ 대영에이브이

  
신해철은 이 넥스트 2집에서 넥스트의 상징으로 '불사조(不死鳥)'를 등장시켰다. 그리고, <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 껍질의 파괴 >에서 '영원(永遠)'을 노래한다. 이 곡의 마지막 가사는 너무도 웅장한 기타와 드럼 연주 속에서 흘러나온다. 

'언젠가 내 마음은 빛을 가득 안고 영원을 날리라'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넥스트 2집이 넥스트의 최고 명반이라고 말했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겐 3집이 조금 더 애정이 간다. 무려 14곡이 수록된 이 앨범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HOPE'와 'MAMA'란 노래가 있다.

'HOPE'는 신해철의 노래들 중 타인(他人)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첫 노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곡 이후로 희망을 노래하는 후속작으로 넥스트 4집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5집의 '힘을 내!'가 있다.

나에게 'MAMA'는 청취 금지곡이다. 이 노래는 '어머니'에 대한 노래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주말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던 기억이 난다. 하라는 공부를 안 해서 미안한 건지, 아들 키운다고 고생하는 엄마를 떠올렸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버스 안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머니'에 대한 감성에 젖고 싶은 분들이라면 넥스트의 'MAMA'를 들어보시라. 단, 감성 코드를 잘못 건드리면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드린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는 웬만해서는 일부러 듣지 않는다. 연로해져 가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넥스트 4집

넥스트 4집 ⓒ 대영에이브이

  
넥스트 4집엔 유명한 곡들이 많이 수록되어있다. 국카스텐의 하현우가 복면가왕에서 열창한 'Lazenca, Save Us'와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대표곡이다. 그런데, 나는 이 곡들보다 '먼 훗날 언젠가'와 'The Hero'를 추천한다. '먼 훗날 언젠가'는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노래이고, 'The Hero'는 우리들의 유년시절을 회상하게 해줄 노래다. 슈퍼맨처럼 보자기 망토를 둘러메고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규앨범 3집과 4집 사이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명곡이 숨어있다. 바로, 영화 <정글스토리>의 OST 앨범이다. 가수 윤도현과 김창완이 출연한 이 영화를 나는 솔직히 못봤다. 이 영화는 1996년작인데 이때 나는 갓 20살, 대학교 1학년생이었다. 그 당시 나의 생각 수준으로는 록커를 꿈꾸며 서울로 상경하는 설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신해철의 앨범이니 무조건 사서 들은 것이다. 이 앨범에서 지금도 종종 듣는 노래는 '그저 걷고 있는 거지'다. Main Theme 음악에 철학적인 가사를 입힌 신해철의 명곡이다.
 
 정글스토리 OST

정글스토리 OST ⓒ 윈드밀 이엔티

  
그리고,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폐막식 음악인 'Arirang'이 수록된 싱글 앨범이 있는데, 이 앨범에는 짝사랑하는 여성에게 말은 못하고 속앓이 하는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참 많이도 불렀을 노래 'Here I Stand For You'가 있다. 이 노래를 들어보면 신해철의 사랑 노래는 여느 사랑 노래와는 결이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는 운명을 믿었다. 그냥 우연히 지나치면서 만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운명적인 사랑 말이다.
 
 넥스트 5집

넥스트 5집 ⓒ 소니

  
5집은 Two CD인데 CD1은 내 취향과 다소 동떨어진 것 같아서 자주 들어지지가 않았고, CD2는 상대적으로 소프트한 노래들이 수록돼서 자주 들었다. 개인적으로 다소 어두운 느낌을 주지만 곡의 수준이 매우 높은 'Laura'를 추천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직도 종종 즐겨 듣는 신해철의 명곡들이다. 6집부터는 앨범은 소장하고 있어도, 자주 듣게 되지는 않는다. 아마,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위에서 소개한 노래 이외의 다른 노래들이 더 좋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긴, 어떤 곡이면 어떻겠는가. 우리 생애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이자 대음악가의 명곡들을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은가.
      
벌써 폭염이 언제였는지 잊을 정도로 추위가 오고 있고, 올해도 막바지로 향해가고 있다. 여러 인기 가수들이 연말에 콘서트를 개최한다. 나도 과거에는 12월에 한 해를 마감하는 넥스트의 라이브 콘서트에 가서 신해철의 영원한 엔딩곡 '그대에게'를 떼창했다. 그때 당시 신해철은 정말 '교주'와 같았다. 넥스트 밴드가 연주하는 강렬한 록 음악과 그의 샤우팅을 들으며 그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가 됐으며, 숨을 헐떡이며 걸쭉한 저음으로 관객에게 전하는 그의 입담을 듣고 모두가 웃고 환호했다. 행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바로 나에겐 '소확행'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콘서트장에서 그의 노래와 입담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슬프다. 내 인생의 작은 낙(樂) 중의 하나가 신해철의 새로운 앨범을 기다리고, 새로운 노래를 듣는 것이었다면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만큼 그와 그의 음악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가수 신해철

가수 신해철 ⓒ KCA엔터테인먼트

  
고 신해철, 가왕의 영면 고 신해철의 장례식이 열린 5일 오후 고인이 영면할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 고인을 추모하는 장식물이 전시되어 있다.

▲ 고 신해철, 가왕의 영면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 고인을 추모하는 장식물이 전시되어 있다. ⓒ 이정민

 
나는 신해철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육신(肉身)은 사라졌지만, 그의 정신과 그의 철학과 그의 음악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가 불사조를 넥스트의 상징으로 삼은 건 영원히 살고자 했음이리라.

우리가 그를 기억한다면, 그는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쉴 것이다.

"우린 꿈꾸어 왔지. 노래여 영원히... Dreams Forever!"
신해철 신해철 4주기 넥스트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