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개봉에 맞춰 <퍼스트맨>을 보고 잔향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전작 <라라랜드>와 <위플래쉬>도 그랬다. 앞서 두 장편작과 달리, <퍼스트맨>은 음악이 소재가 아니라 미국의 달 탐사가 배경이다. 그러나 세 작품은 개별로 분리된 것 같지 않다.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연주라는 범위에서 <라라랜드>는 <위플래쉬>와 관련성이 있고, 좀 더 큰 틀에서 내면의 확신이라는 범주로 보면 세 작품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속을 끌어 올리는 뜨거움, 열의에 관한 것이다.

<퍼스트맨>은 달 탐사를 앞둔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 역)을 그린다. 어떤 영웅적 서사로 포장을 하기보다는 내면의 날 것을 추구한다. 테스트 과정에서 일어난 동료의 죽음과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나사의 탐사 실험은 닐을 요동치게 한다. 염려 섞인 불안, 성공에 대한 의구심이 빚어낸 결과다. 그럼에도 닐은 달에 가는 걸 두고서 확신을 얘기한다. 그 확신은 순도 100%의 믿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과반도, 10%도 안 되는 확률의 희망으로 자기 최면을 건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확신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는 무를 수 없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확신이 있기에, 커다란 굉음과 여태껏 느껴보기 어려웠던 진동을 견뎌가면서도 우주로 나아가려는 것 아닐까. 이를 주목하려는 듯 <퍼스트맨>은 원경에서 아폴로 11호의 출발을 집중하기보다 점화에서 발생하는 화염과 연기를 관찰한다. 이 과정은 닐의 시선과 교차 편집되고, 아폴로 11호는 대기권을 벗어나 궤도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확신을 통한 관객의 마음 끌어내기
 
 <퍼스트맨> 스틸컷

<퍼스트맨> 스틸컷 ⓒ 유니버설 픽처스

 
다들 아는 것처럼 닐이 가졌던 확신은 그의 전유물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느꼈던 것이다. 닐이 바라봤던 대상은 달이었지만 우리는 각기 상정해둔 꿈을 두고 확신을 가지며 살아간다. <퍼스트맨>은 닐의 확신과 관객의 확신을 이으며 내면의 자극을 부른다. 이런 점에서 셔젤은 관객의 마음을 끌어내는 데 능력이 있는 감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작 <라라랜드>와 <위플래쉬>도 따지고 보면 확신이 있는 꿈에 대한 얘기였다. 엔딩이 마냥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물론 셔젤은 꿈에 이르는 확신을 찬양하지는 않았다. 결국 확신도 확신 나름이라는 전개에 이른다. <라라랜드>의 엔딩은 달콤하기보다 씁쓸했고, <위플래쉬> 앤드류(마일즈 텔러 역)는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다만 관객은 두 영화의 주인공 행로에 대해 공감을 하고, 때로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공감이 들어가지 않은 인물은 생명력을 갖기 어렵다는 점을 비춰볼 때, 확신과 꿈의 상관관계는 관객이 보기에도 매력적인 요소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는 인간의 자책 심리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확신을 무르고, 꿈을 포기하면 평생 자책할 것 같은 느낌은 누구나 가져볼 법하다. <퍼스트맨>의 닐도, <라라랜드>의 미아와 세바스찬도, 그래서 자기 앞에 놓인 길을 쉽사리 우회하지 않으려 했던 게 아닐까. 이를 버무린 셔젤의 세 작품은 따라서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마치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처럼 확신과 꿈이라는 공통성을 가지고 이어져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영화를 떠받친 '뒷심'과 허위츠의 음악
 
 <퍼스트맨> 스틸컷.

<퍼스트맨> 스틸컷. ⓒ 유니버설 픽처스

 
이른바 '뒷심 전략'도 세 작품의 유사점이라고 할 수 있다. <퍼스트맨>의 백미는 뭐라 해도 후반부에 나오는 달 착륙이다. 관객은 이 절정의 순간을 느끼기 위해 2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지켜봐야 한다. 물론 그 절정은 앞서 증폭되어 가는 전조를 충분히 기다리기에 나쁘지 않다. <라라랜드>도 두 인물의 관계에 대한 밑밥을 차근차근 깔다가 결말에 이르러서 상상의 회상을 통해 영화만이 구현해낼 절정을 관객에 선사했다. 결말의 순간까지 광기의 연주가 이어졌던 <위플래쉬>는 또 어떤가.

여기에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의 공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작들의 음악 제작을 총괄했던 허위츠는 <퍼스트맨>에서도 음악적 능력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혹자는 <퍼스트맨>이 전작들에 견줘 음악성이 얕아진 것 아니냐고 하지만, 달 착륙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The Landing'와 OST의 베이스가 되는 'Quarantine'을 듣고 있노라면 <라라랜드>에서 느꼈던 음악의 감동이 재현된다는 걸 체감한다. 웅대함과 달빛의 분위기가 교차하는 음악은 허위츠만의 특색이 녹아든 결과이며, 허위츠와 셔젤의 합작이 아니고선 느끼기 어려운 전율이다. 

광활한 우주 체험을 염두에 둔 관객이라면 <퍼스트맨>은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에 비해 그 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으나 닐이 바라보는 1인칭의 시선과 3인칭 시점의 교차는 나름 차별화의 흔적이다. 1인칭의 도입은 관객의 불안을 자극하면서 닐을 둘러싼 환경이 녹록치 않음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확신의 의미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불러온다. 이는 관객의 시선에서 다중카메라로 원테이크를 지향하려 했던 <라라랜드> 오프닝 시퀀스처럼 셔젤의 차별화 노력일 것이다.

다음 작품에서도 '세 박자 조율'을 전승할까
 
 <퍼스트맨> 스틸컷

<퍼스트맨> 스틸컷 ⓒ 유니버설 픽처스

 
흐름상 영화적 구성만 놓고 보면 단조로울 수도 있다. 딸의 죽음에 따른 '내면의 위기', '극복과 확신', '달 탐험 성공'이라는 전개는 자칫 도식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전개도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퍼스트맨>은 우주를 다루는 데 있어, 결말 부분을 제외하면 고요함이 아닌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벌어지는 사투를 택했다. 극적 효과의 발생은 확신의 주제가 유도하는 관객의 감정과 음악의 선율과 맞물려 구성의 단순함을 보완한다.

<퍼스트맨>은 <라라랜드>와 <위플래쉬>의 계보를 이을 작품임에 손색이 없다. 셔젤은 배경이 판이한 영화를 다루면서도 전작과 단절하지 않는 전략을 취했고,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됐다. 확신이라는 시나리오의 뼈대와 뒷심이라는 굳히기, 서사의 동력이 되어주는 음악의 조율은 잔향을 길게 남겼고, 다음 작품에서도 이를 전승할 것인지가 관심이다. 지금까지 보면 세 박자의 조율이 셔젤만의 성공방정식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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