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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큰아이와 중학교 1학년인 작은 아이는 어려서부터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높았다. 큰아이는 주로 동식물을 중심으로한 생명체와 생태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고, 둘째 아이는 다양한 물리적 현상이나 문명적 도구로서의 과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특히, 작은 아이는 수 체계에도 관심이 많았다. 블록을 가지고 놀더라도 기하학적인 배열이나 균형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수학적인 사고를 유난히 좋아한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두 아이가 특별한 지적 특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지능이 보통수준인데다 조기교육을 멀리하는 가정교육 방침에 의해 학습 면에서는 대부분 적기에 습득하거나 좀 더디게 습득하는 편이다.

큰아이의 과학적 호기심 좌절기
 

다만 큰아이의 경우, 음악성과 한글 해득이 남 달리 빨랐다. 그러나 탁월한 지적 능력을 가졌다기 보다 음악교사인 내가 주로 노래와 책으로 놀아준 때문일 것이다. 큰아이 만 세 살 쯤에 둘째 아이를 가져 몸도 무거운데다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하다보니 체력이 딸려 역동적으로 놀아주기가 힘들었다. 남편도 직장생활 초기라 밤낮 없이 회사에서 놓여나질 못했다. 

주로 노래를 불러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아이의 놀이 욕구를 채우게 되었고, 만 5세 즈음 스스로 한글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보니 운동감각의 발달이 비교적 부진하여 사회적 관계 맺기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되기도 했다. 큰 아이에게 늘 미안한 부분이다. 다만 학교 수업이나 방과후학교 외 다른 교육활동이 없는 가정교육 방침으로 인해 생긴 많은 여가 시간에 책과 각종 놀이를 벗하며 성장과정에 따른 다양한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키워나갈 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참여한 생명과학 방과후 수업 선생님은 때때로 아이에게 세부적인 지식이나 용어를 물어야 할 만큼 과학적 상식이 풍부한 아이라고 칭찬하셨다. 중학교 진학 이후에도 아이가 지닌 각별한 호기심과 탐구욕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영재교육 기회를 주라고 조언하셨다. 그리고 몇 가지 학교 밖 영재교육 코스도 추천해주셨다.

그러나 아이의 특기적성 교육에 대해서도 가급적 공교육 속에서 해결하고 싶었다. 단기적인 만족도가 다소 낮을지라도 공교육의 활성화는 보다 많은 아이들과 기회를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학교 입학 직후 학교에서 모집하는 영재교육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담임교사로부터 '공부도 부진한 편이고 생활면에서 빠릿빠릿하지 못한 둔한 아이가 영재교육을 신청하다니'하는 조소 어린 비난을 들어야 했다.

학교차원에서 추천이 이루어지지 않아 영재교육 기회는 좌절되었다. 게다가 암기 폭탄 과학 수업을 듣는 과정에서 과학에 대한 열의는 대폭 줄어 들었다. 과학을 소재로한 소설이나 웹툰 작가가 되어 어린이나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는 과학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던 아이의 꿈도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어 갔다. 지금은 아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일상을 통해 자연적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도록 여행 기회를 자주 갖는 지원을 하고 있다.

느림보, 작은 아이

둘째 아이는 생각이 많고 조용한 아이였다. 생일도 늦어(12월생) 또래보다 신체발달도 상대적으로 느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6세(만 4세)에 처음 시작한 유치원 생활에도 적응을 잘 못해 하루 1시간으로 시작하여 서서히 참여를 늘려가도록 배려받기도 했다. 7세가 되자 알림장쓰기와 받아쓰기 교육을 미리 하지 않으면 초등학교 적응이 어렵다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있어 유치원의 한글 교육이 시작됐다.

아이는 그것에도 적응하지 못해 유치원 등원을 거부했다. 그 바람에 우리 아이만이라도 한글 교육에서 제외시켜달라고 부탁을 드려야하기도 했다. 그런 내 처사를 보며 주위 사람들이 적잖이 걱정해 주었다. 차라리 1년 더 유치원을 보내다가 9세에 입학을 시키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글은 명확한 논리체계가 있는 문자인 만큼 만 7세가 되면 쉽게 익힐 거야'라고 생각하여 사전 한글 교육 없이 입학시켰다.

예상대로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몇 달 안에 한글을 쓰고 읽는 능력은 급격히 향상되었다. 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익힌 덕에 받아쓰기나 국어시험에서 오히려 꽤 괜찮은 성적을 받아오곤 했다.

아이는 음식을 먹을 때도 놀이를 할 때도 무언가를 학습할 때도 느렸다. 그래서 미술 시간이나 노작활동을 할 때 '꼭 만들고 싶은게 있는데 완성하지 못했다'고 속상해하는 일이 많았다. 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 선생님은 정년을 1~2년 앞둔 할아버지 같은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께서 나를 위로하듯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어머니, 느리다고 속 터져하지 마세요. 기다려주세요. 느리다고 해서 아이가 멈춰 있는게 아니에요.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네, 선생님, 생일도 느린데다가 생각이 많은 아이니 저에겐 익숙해요. 걱정 안하고 있어요" 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참 다행이네요! 전 사실 종종 속이 터져 죽겠거든요. 하하하! 그래도 어쩌겠어요? 아이의 특성인 것을요. 기다려주면 언젠가는 다 큰답니다. 젊어서는 몰랐는데, 나이든 선생이 되고 보니 그런게 다 보이네요. 하하하!"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아이의 특성 알아보기

학교에 다녀오면 주로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의 주된 방과후 놀이는 학교 방과후 수업이었다. 아이는 방과후 수업 모집 가정통신문만 나오면 대형 푸드코트에서 음식을 고르듯 설레여하며 거의 매일 방과후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선택했다. 같은 날 두 가지를 하기 어려운 시간표 구성 때문에 매번 고심고심 하다가 고르고 보면 어김없이 요리와 과학관련 활동이 3~4가지를 차지했다.

고학년이 되자 주로 과학수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저학년 때부터 거의 매학기 과학실험, 융합과학, 생명과학, 로봇 등에 관련된 수업을 계속 듣다보니 같은 과정이 반복되는 상황을 겪게 되었다. 학교에서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기 위해 노력하긴 했지만 방과후엔 학원교육에 많은 학생들이 몰리는 바람에 개설이 가능한 과목도 점차 축소되어 갔다. 학교내 교육활동을 기반으로한 아이의 특기적성 교육에 조금씩 어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편, 곧잘 학교 공부를 따라가던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에 진급하고 나서부터는 "엄마, 나는 수학을 잘 못해"라고 말하곤 했다. 수학 단원평가나 정기고사에서 대체로 90점 이상을 받아오는 아이가 수학을 잘 못한다고 느끼니 의아하여 담임 선생님께 학습 상황을 여쭤보았더니 이런 조언이 돌아왔다.

"아, 왜 스스로 수학을 못한다고 느끼는지 알겠어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대체로 선행학습을 하잖아요? 제가 풀이과정을 설명할 때 많은 아이들이 1초도 안되어 답을 말하곤 해요. 자기 생각으로 푸는 아이는 대답할 겨를이 없을 수 있죠. 자기 생각보다는 기계적으로 훈련된 아이들이 더 빨리 푸는 게 사실이에요. 안그래도 가끔 아이의 얼굴에서 그런 짜증을 읽었어요.

문제를 풀 때도 시간에 맞춰 많은 문제를 푸는데 익숙한 아이들이 많은데, 이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며 푸는 모습을 보여요. 시간에 쫓긴다고 생각하니 자신감이 부족해진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굳이 염려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만일 그로 인해 아이가 심리적으로 위축된다면 반복해서 여러 문제를 풀어보는 정도의 복습이 도움될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수학 수업시간에 소외감을 느끼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했다. 많이 위축된다면 보충학습을 해보자고 권했다. 학교수업 중에 다룬 수학책과 익힘책은 비교적 꼼꼼히 풀고 확인학습까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보충학습을 위해 문제지를 한 권 사주었다.

방과 후에 하루 몇 쪽씩 문제지를 풀던 아이는 얼마 후 '이미 이해한 개념을 많은 문제로 반복해서 풀다보니 수학이 오히려 싫어진다며, 문제지 풀기는 중단하는 대신 학교 수업에 대해 더 집중해 보겠다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늦게 답하는 것이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고 침착하게 끝까지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공부하라고 조언하고 보충학습은 중단했다.

아이들의 장기적인 발달과 성장과정을 중요시 여기는 나로서는 수치화된 점수보다는 한 학기에 한 번 통지표를 통해 기록된 행동발달종합의견에 더 관심이 많다. 아이가 적기에 지녀야할 행동적 특성을 잘 발달시켜가고 있는지에 대해 담임 선생님의 객관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행동발달종합의견은 담임교사의 성향에 따라 간결하게 또는 세심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공히 '한 학기를 지켜보면서 아이를 통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중심키'를 반영할 수 밖에 없다. 둘째 아이의 학습 면에서 거의 모든 학기에 걸쳐 빠짐없이 일관된 공통의견은 '호기심, 탐구욕, 창의성'이었다. 가정생활에서 지켜본 내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로서 알고 있는 아이에 대한 인식에 좀 더 객관성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아이들의 진로희망은 어른들의 구직활동과 달라

아이는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 고학년에 이르기까지 요리사를 꿈꿨다. 요리하는 일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체구도 작고 먹는 것도 특별히 즐기지 않는 아이가 요리사가 되겠다고 하니 썩 달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단지 나의 특성일 뿐이지 아이의 특성은 아니다.

아이가 꿈을 품는다는 것은 어른들의 구직활동과는 다르다. 그것은 성장이라는 기나긴 여정에서 단기적으로, 또는 장기적으로 동력을 유지하거나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꿈이 '자기 자신과 맞는지', '안맞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른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충분히 탐색함으로써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만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의 꿈을 지지하는 방법으로 요리에 참여할 기회를 많이 주었다. 아이는 스스로 요리책을 사고 인터넷을 통해 조리 도구도 검색하여 구입을 부탁해 오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혼자서 요리를 하면 안전사고가 있을 수 있으니 종종 함께 해야 했다. 요리를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사실 좀 괴로웠다.

아이는 철저하게 정량을 지키고 시간과 절차를 지키려했다. 음식을 만든다기 보다는 마치 실험을 통해 재료들의 변화를 관찰하려하는 듯한 진지한 연구자의 태도였다. 몸집이 조금씩 커지고 요리에 요구되는 여러 가지 노하우를 익혀가게 되자 스스로 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권유했다. 요리는 재료구입부터 뒷정리까지를 포함하는 일이니 그 모든 걸 차차 익혀가도록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은 아이가 성공했던 요리 중 가족들이 원하는 요리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는 한 번 성공하여 성취감을 충분히 맛본 요리를 두 번 이상 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독립적으로 요리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체력이 요구된다는 사실도 깨달아 갔다. 이때쯤 아이는 스스로 느꼈다. '같은 요리를 매일 수없이 반복해서 식사를 제공해야하는 요리사는 새로움에 대한 욕구가 많은 자기 자신에게 썩 어울리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과학 영재교육 체험기
 
작은 아이가 재학중인 경기도 한 중학교에서 보내온 2019학년도 영재교육기관 교육대상자 선발 안내 가정통신문
▲ 2019학년도 영재교육기관 교육대상자 선발 안내 가정통신문 작은 아이가 재학중인 경기도 한 중학교에서 보내온 2019학년도 영재교육기관 교육대상자 선발 안내 가정통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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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이의 선택활동은 본격적으로 과학 활동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5학년 즈음에 이르자 이미 거의 교내 모든 방과후 수업을 섭렵하였기에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아이도 매학기 반복되는 방과후 활동에 조금은 실망하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Y사로 대표되는 학원교육을 시키자니 상업적 목적성에 의해 과한 선행교육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진행하는 과학 분야 영재 선발 공고를 보게 되었다. 아이에게 참여 의사를 물었더니 펄쩍 뛰었다. "내가 영재라고? 말도 안돼!"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영재교육은 완성된 영재를 찾는 교육이 아니야, 영재적인 잠재성을 찾아 키워주겠다는 거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난 뽑힐 자신이 없어. 지난번에 경기도교육청 영재교육 시험 본다고 학원교재 가져와서 짬짬이 푸는 아이가 있길래 한 번 봤는데, 하나도 모르겠더라"라고 말했다.

그래서 "학교 교육은 달라. 수학, 과학 잘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고 싶어 하는 추세야. 교육청 영재는 상급학교 입시에서 꽤 괜찮은 스펙이 되기 때문에 일부 학부형이나 아이들이 선호하고 있어. 그런데, 학교 단위 영재교육은 인기가 덜해. 일단 학원 다니는 아이들이 참여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부담되는데다가 교육청 단위 영재가 교내 영재교육을 겸해서 받을 수 없다보니 오히려 너처럼 순수하게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학교 정규수업과는 다르게 체험위주의 학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야."라고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흔쾌히 수락했고 16명 모집에 16명이 지원하면서 영재학급에 무사히 선발(?) 되었다.

아이는 학교 영재학급 수업을 정말 좋아했다. 영재학급 활동에서 다뤄진 내용을 종종 이야기 해주며 실험을 되풀이해 보여주기도 했다. 영재수업이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영재수업 덕분에 학교 가는 길이 더 즐거워진 것이다. 그렇게 한 학기를 잘 보내더니 여름 방학을 앞두고 조금씩 영재 수업에 대한 부담을 토로했다.

이유를 물으니 '2학기에 있을 연구 보고서 대회가 걱정이라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없냐'고 물었더니 '아이디어는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대회라서 부담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대회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디어를 공유한다고 생각하라'며 토닥여주었다.
 
필자의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학교 영재학급 교육활동 중 산출물 보고서 발표를 위해 촬영한 실험 장면과 비교실험을 위해 만든 단풍나무 씨앗 모형들
▲ 과학영재학급 산출물 보고를 위한 실험 필자의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학교 영재학급 교육활동 중 산출물 보고서 발표를 위해 촬영한 실험 장면과 비교실험을 위해 만든 단풍나무 씨앗 모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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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방학 내내 짬짬이 보고서에 대한 생각을 만들어가는 듯 보였다. 관심 주제는 "단풍나무 씨앗이 떨어질 때의 회전원리"였다. 아이는 아파트 정원에서 씨앗이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한 뒤로 회전의 원리가 궁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풍나무 씨앗의 모양을 관찰하며 회전의 원리가 되는 요소들을 추론했다. 그리고 여러 재료로 씨앗의 모양을 이루는 일부 요소들을 따로 반영하며 만들어 보는 등의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연구하더니 결국은 성공적인 실험결과를 얻어 즐겁게 발표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다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의 보고서가 학교 대표로 뽑혀서 지역교육지원청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토닥여주었다. "학교에서 한 것과 똑같이 하면 돼. 어차피 너처럼 과학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행사야. 즐겁게 정보를 공유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투박했던 실험보고서를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혼자서는 이해하기 힘든 보고서 양식에 다시 정리해야했다. 게다가 아이들끼리 서로의 발표를 즐길 기회도 없이 평가자 2명 앞에서 '누가누가 잘 하는지를 가려내는 엄격한 경연장'이었다고 한다. 아이는 대회 참석 이후 대회성과를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그 이후 영재학급 수업에 대한 열정도 눈에 띄게 줄었다. 6학년 초까지 꾸준히 참여는 했지만 이미 탄력을 잃은 공처럼 의욕이 반감하고 있었다. 중학교 진학 이후 호기심을 기다려주지 않는 밀도 있는 과학 정규 교과수업으로 이어지고 난 뒤로는 더 빠른 속도록 관심을 잃어갔다.

새로운 영재교육 시스템 소개하기

최근 아이의 관심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코딩이다. 우연히 1회성 무료 코딩교육에 참여해 봄으로써 호기심을 품게 된 것이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는 학교 수업에서 코딩을 배울 수 있어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데 아이는 갈증을 느꼈다. 코딩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도가 높다보니 맛보기 체험 같은 수업에 만족할 수 없는 모양이다.

상업화된 코딩교육은 단기적 성과를 중시하게 될 테니 아이의 호기심을 키워 가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기도에서 이뤄지고 있는 지역사회 연계 교육, '꿈의 학교'를 통해 경험하도록 권유해 보았다. 현재 열심히 참석하고 있지만 코딩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해소될 만큼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수업은 아니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작은 아이가 재학중인 경기도 한 중학교에서 보내온 2019학년도 경기도융합과학교육원부설영재교육원 교육대상자 선발 안내 가정통신문
▲ 2019학년도 경기도융합과학교육원부설영재교육원 교육대상자 선발 안내 가정통신문 작은 아이가 재학중인 경기도 한 중학교에서 보내온 2019학년도 경기도융합과학교육원부설영재교육원 교육대상자 선발 안내 가정통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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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이의 학교를 통해 경기도 융합과학교육원부설영재교육원 교육대상자 선발 안내문을 받아 보았다. 아이가 관심을 보일만한 소프트웨어 부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사이 선발과정이 시험을 통한 결과평가가 아니라 학교내 수업 활동을 교사가 자연스럽게 관찰하여 추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영재 보다는 학습 과정에서 드러나는 심동적, 역량적 특성을 관찰하여 잠재된 영재성을 발굴하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나: "어! 소프트웨어부문도 있네. 너 프로그래밍이나 코딩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했잖아?"

작은아이: "응, 맞아. 그렇지만 '영재교육'이라니! 내가 무슨 영재야. 아직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데 '내가 잘 할지, 못할지' 어떻게 알아?"

나: "영재라는 단어에 너무 크게 의미 두진 마. 영재교육이라는 게 크게 보면 특기적성 교육 방법 중 하나야. 지금 현재 잘하는 아이를 뽑겠다면 시험을 보겠지……. 교사들이 직접 학교 생활을 자연스럽게 관찰하는 평가이니 이미 잘 하는 학생을 뽑겠다는 것은 아닌 듯 보여. 부담 없이 평소대로 수업에 참여하면 돼. 평가 방식을 보니 영재교육의 목표가 좀 더 바람직해진 것 같아.

영재가 되려고 공부한다기 보다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의 기회를 받아들여서 내가 알고 싶던 것들을 배워나간다고 생각하면 좋겠어. 영재는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어떤 분야에 대해 호기심과 탐구욕이 높다면 같은 학습 조건일지라도 더 빠르게 성장하겠지? 그러니 영재라는 단어에 너무 매이지 말고 네가 지닌 특기나 적성에 대해 탄력을 받아 열정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해."

작은아이: "'짧은 시간 안에 수학문제 많이 풀기' 같은 식의 훈련은 안하겠지? 그런 거 하면 재미가 하나도 없어져. 수학 문제 풀이도 '한 두 가지 문제를 주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깊이 생각하면서 풀이과정을 차근차근 적어나갈 때'는 좋은데, '45분 안에 40문제 풀기' 같은 식의 시험을 볼 때는 수학 공부가 정말 싫어지거든."

나: "그래, 그럴 일 없을 거야. 선발 방법을 보면 수업의 내용과 방법이 보이는 법이야. 과정을 중요시하는 선발 방법인 것으로 보아 공부 과정도 분명 과거의 성과 위주와는 달라졌을 거야. 만일 또 훈련하듯, 경주하듯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판단된다면 언제든 그만 두어도 괜찮아. 네가 프로그래밍이나 코딩을 배울 기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많아. 지금 시점에서는 '얼마 만큼 잘 하느냐' 보다는 '하고 싶다는 마음의 크기'가 더 중요한 거야. 그것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면 당연히 중단해야지."

작은아이: "그렇다면 신청 해보고 싶어."

나: "그래, 신청서 제출해봐."


나는 이렇게  또 다시 '남 다른 호기심'이라는 영재성의 일부 요소가 다시 공교육 체제에 닿아 볼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었다.

'영재교육'이라는 명칭, 과연 그 목적에 부합하는가?

몇 년 전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의 의뢰를 받아 '국악 영재 발굴을 위한 영재성 평가 방안'에 대해 연구한 일이 있었다. 그때 국내 대개의 음악영재교육기관에서 상당 수준의 명곡을 연주하여 경연하는 형태의 선발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조기교육을 통해 상당기간 전문 과정을 밟은 아이들만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이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이미 만들어진 음악영재를 찾는 일이었다. 그에 대해 비판하며 학교현장에서의 일반적인 음악수업과 특기적성 활동을 통한 관찰 평가 방식을 제안한 바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영재를 발굴한다는 것은 결국 자본의 경쟁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특히 다양한 사교육시장이 발달 되어있는 우리나라의 교육환경 속에서 부모의 정보력이나 경제 수준이 높은 가정에서는 얼마든지 개별화된 특기 적성 교육이 가능하다. 오히려 너무 조기교육으로 흘러 흥미와 적성의 발달이 변화무쌍한 아이들의 다양한 가능성이 제한될 우려조차 있다.

국가적으로 영재를 육성한다는 것은 모든 아이들에게 동등하게 각 분야에 대한 특기 적성을 한껏 드러내고 심화시킬 기회를 주겠다는 의지라고 본다. 만일 아이들이 처한 여건에 의해 잠재된 특기 적성이 그대로 묻히는 것을 방지 하고자 영재교육을 하는 것이라면 학교내 다양한 학습 활동의 관찰을 통해 영재를 선발하겠다는 새로운 방향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과연 취지가 그러하다면 이제는 '영재'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차례라고 생각한다.

'영재'라는 표현은 이미 우월성을 내포하고 있다. 보다 많이, 보다 높은 수준의 것을 해내는 능력을 우월함으로 해석하는 우리네의 관습상 영재교육의 벽은 불필요할 만큼 높기만 하다. 우월함은 결과를 통해 보는 것이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우월함을 목표치로 놓고 본다면 수많은 잠재력이 배제될 우려가 있다.

더욱이 지적 분야라면 '아이들의 능력이 언제 물 오를지'를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어느 한 순간에 획을 그어 우월성을 판단하려 한다면 수많은 잠재능력이 빛을 발하기 힘들 수 있다. 영재교육의 목표가 보다 더 많은 아이들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 역량을 꾸준히 키워내어 해당분야 혹은 또 다른 분야에 대해 탁월하게 역량 있는 인재로 기르는데 있다면 단기적인 평가와 성과에 연연하지 않기를 바란다.

탄력교육으로 공교육에 폭넓은 탄력을!

그래서 며칠 간 '결과에 초점을 맞춘 영재교육이라는 명칭을 대신 할 좋은 명칭'이 없을까 고민해 보았다. '해당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욕을 지속시키며 열정을 더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호기심, 특기, 적성 탄력교육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과학 호기심 탄력교육, 음악, 미술, 체육 특기 탄력교육, 인문학 적성 탄력교육, 융합 적성 탄력교육 등으로 불리운다면 어떨까? 적어도 영재교육이라는 명칭으로 쳐 놓은 높고 완고한 벽이 조금은 허물어져 보다 많은 가능성에 탄력을 가할 수 있으리라.

태그:#영재교육, #과학영재, #특기적성교육, #탄력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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