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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해외입양으로 행복해진 사람들에 대해선 기사를 쓰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나는 종종 받는다. 물론 해외입양이 개인적으로 좋은 계기가 된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 원조국이자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우리나라에서 지금도 해외입양을 보내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을뿐더러 반인륜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사회와 정부는 더 이상 친부모와 그 사랑하는 자녀가 생활고 때문에 또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 때문에 이별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확신한다.

최근 싱글맘의 가정을 가리키며 '결손가정'이라고 거침없이 손가락질 하는 사람을 보고 충격받은 적이 있다. 미혼모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사회적 주홍글씨를 우리나라는 언제쯤 지울 수 있을까? 해외입양은 결코 해외유학이 아니고 한 아동의 행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친부모로부터 격리돼 인종이 다른 나라에서 한 아동이 자라며 평생 겪는 '원초적 상처'와 근원적 고통을 우리 한국의 어른들은 이제 더 이상 외면하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국가이지만 여전히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시키는 국가다. 우리는 인구감소를 걱정하지만 동시에 아동의 생명에 대해선 소홀히 여긴다.

주영옥씨는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의사로 생활하고 있는 한국계 스웨덴 입양인이다. 그는 지난 2013년부터 친부모를 찾기 위해 매년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세속적 눈으로 보면 그는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 같다. 그러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이 한 사람의 성공과 행복은 단순이 돈이나 직업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어류인 연어나 조류인 비둘기도 '귀소본능'이 있는데, 나를 이 세상에 낳아 준 친부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만날 수 없는 인간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스웨덴에서 한국친부모를 애타게 찾고 있는 해외입양인 주영옥씨와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1981년 해외입양보내지기전 주영옥씨
 1981년 해외입양보내지기전 주영옥씨
ⓒ 주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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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7월 29일 아침 6시 15분 권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주영옥씨
 

주영옥씨는 1981년 7월 29일 아침 6시 15분 서울 구로구 시흥1동 130번지에 있는 권산부인과에서 출생했고 혈액형은 O형이다. 출생 직후 그는 권산부인과의 요청에 의해 대한사회복지회의 서울영아일시보호소로 보내졌다.

대한사회복지회는 그에게 주영옥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또 그가 '혼외자녀인 듯'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출생 당시 그는 친부는 43세 친모는 35세였지만 불행하게도 친부모의 이름은 어느 서류에도 남아있지 않다. 출생당시 그 체중은 3.4kg이었고 친모가 순산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그의 출생 당시 친부는 이미 딸 둘이 있었고 생활고 때문에 그의 입양을 원한다고 되어있다. 그래서 그는 출생 직후인 1981년 7월 29일부터 그해 12월 16일까지 약 5개월간 대한사회복지희의 서울영아일시보호소에 있은 후 곧 스웨덴 스톡홀롬으로 해외입양 보내졌다.

지난 2013년 8월 그는 한국에 들어와 KBS <사람을 찾습니다>에 출연하여 자신의 DNA기록을 남기고 친부모를 수소문했지만 아직까지 친부모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지난 1981년 해외입양 보내진 친부모를 찾기 위해 그동안 수차례 모국을 방문하여 구로구 시흥1동 130번지에 있는 권산부인과를 찾았지만 그 주소에 권산부인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권산부인과를 찾으면 산부인과 의료기록을 통해 혹시 친부모에 대한 정보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모국을 찾아왔지만 안타깝게도 매번 권산부인과의 소재조차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에도 그는 모국을 방문하여 경찰청 실종자 명단에 자신의 DNA를 등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친부모에 대한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지난달에도 그는 한국을 방문하여 '뿌리의집' 등의 도움으로 친부모를 수소문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1981년 스웨덴으로 입양 보내진 후 그는 어려서부터 항상 양부모님이 "너는 한국으로부터 우리가 해외입양한 아이란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다. 그의 입양모는 스웨덴 여성이었고 입양부는 핀란드 남성이어서, 어려서부터 입양부모와 핀란드를 자주 방문하여 양부의 친척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양부모는 맞벌이 부부라 그는 어린 시절 입양부모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낮에는 유치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입양모는 입양부와 결혼하기 이전의 남편과 사이에서 1녀를 두고 있었고 양모의 전남편이 양모의 딸을 키우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는 양모보다는 양부와 늘 더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양부가 안타깝게도 악성뇌종양으로 돌아가셨고 그 후부터 그는 더욱 모국을 그리워하며 자주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스웨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프랑스로 유학가 불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스웨덴으로 돌아온 그는 스웨덴 카로린스카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은 스톡홀롬에 거주한다. 카로린스카 대학병원에서 혈액학 전문의로 일하며 림프(임파)종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조만간 한국의 대학병원에서도 일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최근 주영옥씨
 최근 주영옥씨
ⓒ 주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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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모국 방문에 대해 많은 두려움 느껴

그가 어린 시절에는 모국인 한국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2013년부터는 매년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꼬박꼬박 방문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그는 자기와 외모가 너무 닮은 한국인들을 보며 깊은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많은 문화적 차이와 더불어 "서울 거리에서 만나는 수많은 한국인들 중에 나를 기다리거나 그리워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극한 외로움과 절망감마저 든다고 한다.

어린 시절과 10대 시절 그는 자신의 외모가 스웨덴 친구들 그리고 양부모를 비롯한 친척들과 너무나 다르게 생긴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스웨덴 친구들은 종종 그의 외모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그를 놀리고는 했다.

그러나 당시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스웨덴에 진정한 가족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런 생각이 수시로 들었기 때문인지 소속감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모국인 한국인들이 그리웠고 한국인들과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한국말도 모르고 한국음식과 문화도 모르던 터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방황의 10대 시기를 보냈다.

유전적, 혈연적 공통점은 전혀 없었지만 그는 이방인인 스웨덴 가족을 받아들이고자 홀로 노력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10대를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는 "남과 다른 것이 항상 나쁜 것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과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주변에서도 인종간의 국제결혼을 하는 부부들이 늘어나서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문제에 대해 그는 점점 덜 고민하게 되었다.

그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었으며 그러면서 삶의 진정 중요한 것은 외모 보다는 내용과 본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삶을 뒤돌아보며 '이국땅'에서 그는 그나마 보람을 많이 느끼는 의사라는 전문직으로 일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자신을 교육시켜 주고 사랑과 정성으로 양육시켜준 입양부모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는 좋은 직업이 곧 한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주영옥씨
 최근 주영옥씨
ⓒ 주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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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보낸 나라
 

그는 한국인들과 정부가 아동들을 친부모로부터 격리시켜서 해외로 입양 보내는 일을 이제는 더 이상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은 지금까지 세계에서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보낸 나라이며, 수많은 해외입양인들이 인종이 다른 타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지금도 끊임없이 분투하고 있다고 그는 기자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주영옥씨는 한국의 친부모들에게 전해달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만약 어느 날 친부모님을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제 인생의 매순간에 친부모님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의 외모가 친부모님을 얼마나 닮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또 제 성격이 부모님 두 분 중 어느 분을 더 닮았는지도 너무 궁금합니다. 특별히 친엄마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가 출생한 후 부득이 저의 양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세월을 사셨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제발 행복하시고 제가 지금 좋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엄마가 행복하시고 좋은 인생을 살고 계시길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엄마, 결코 과거를 부끄러워 하지 마세요. 지금의 저를 보고 엄마의 마음이 뿌듯하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난세월 동안 건강하고 건실하게 자란 저를 보고 엄마가 자랑스러워하신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주영옥씨를 알아보시는 분은 '뿌리의집'(02-3210-2451)으로 연락바랍니다.


태그:#주영옥, #입양,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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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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