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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이는 힘은 성취감도, 즐거움도 아니다. 아무래도 팔할은 죄책감인 듯하다. 얼굴도 모르는 옆 반 아이가 목숨을 끊은 것도, 거리의 구걸하는 아이도, 아빠의 병환도, 잘못된 모든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살아가는 것은 죄의식을 견뎌내는 일이었다. 순수한 기쁨이란 없었다. 

착하고 순한 천사표를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죄책감은 고통스러웠고 나는 살아야 했기에, 매순간 나를 합리화하기에 급급했다. 누군가 나에게 죄책감을 더할 기미라도 보이면 부르르 떨며 격분하고 이를 갈았다. 나는 내 도리를 다했으니 털끝 만큼도 나를 건들지 마시라. 내겐 가시가 가득했다.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 <그의 옛 연인>을 보며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죄책감과 마주해야 했다. 12편의 단편 모두 한결같이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 읽은 뒤에도 며칠을 마음으로 앓아야 했다. 그러나 자발적 고통이다. 고통 끝에 낙이, 왔다.
 
<그의 옛 연인> 책표지
 <그의 옛 연인> 책표지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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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그의 옛 연인>엔 노년의 부부가 등장한다. 일흔넷의 조이는 남편에게 오는 편지를 몰래 읽고, 전화를 엿듣는다. 39년 전, 그의 불륜을 알게 된 이후로 줄곧. 조이가 아들 둘을 낳고 그들이 행복한 가정을 영위하고 있다고 믿던 결혼 5년 차에, 남편은 연인 오드리와의 사랑을 통보했다. 

이별을 선언했던 남편은 결국 떠나지 않았다. 조이에게는 아내와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에 떠날 수 없다 했고, 오드리에게는 경제적으로 두 가정을 부양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조이는 생각한다. 그가 자신 곁에 남은 것은 단지 모든 것이 피로해졌을 뿐이라고. 

남편은 조이 곁을 떠나지 않았지만, 오드리와의 관계를 정리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드리를 놓아주는 것이 그녀에게도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신의를 지키는 것이 신의 없음을 고백하는 것만큼이나 잔인할 수 있다"(p247)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의 연인 오드리에겐 반 백년을 함께 한 친구 그레이스가 있다. 정작 남편은 알지 못하지만, 조이는 그레이스 역시 남편을 사랑하고 있음을 눈치챈다. 그레이스는 오드리와 남편의 인연이 끝나지 않도록 부추기는 중간자이자, 오드리의 둘도 없는 친구이고 동거인이다. 그런 그레이스가 세상을 떠난다. 

그 기묘한 여인들의 등장으로, 조이의 삶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부부는 태연하게 살아왔지만, 조이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조이는 그레이스의 죽음과 혼자 남은 오드리를 생각하고 슬픔에 잠긴다. 겨울이 얼마나 사별을 견뎌내기 힘든 계절인지 알기 때문에.
 
"그레이스가 죽었다. 달라진 것은 그뿐이다. 조이는 속으로 말한다, 왜 용서를 해야 하나? "왜 그래야 하지?" 그녀가 중얼거린다. "왜 그래야 해?" 하지만 <맨발로 공원을>이 시작되기 전,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늙은이의 주책이야,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눈물 따위는 사라지라고 명한다."(p250)

<감응성 광기>의 윌비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옛 친구 앤서니를 만나고 수십 년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아홉살이었던 어느 여름, 그들은 바닷가에서 물 위에 뜨는 매트리스를 발견했다. 이들은 어린 호기심으로 그 매트리스 위에 늙은 개 제리코를 태워 바다로 띄워보냈고, 제리코는 익사했다. 

그 후 앤서니는 달라졌다. 사람들을 피하며 폐쇄적으로 변했다. 급기야 그는 종적도 없이 사라졌고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추측했다. 윌비가 만난 앤서니는 아일랜드를 떠나 파리의 작은 식당에서 주방 허드렛일을 하며 살고 있다. 두 사람 분의 일을 하면서도 급료조차 잘 챙기지 않는 것이 그가 택한 삶이다. 

윌비는 자신과 달리 앤서니는 죄책감을 통제할 수 없었음을 안다. 그러나 힘든 일을 자처한다고 해서 형벌도, 속죄도, 구원도 되지 않으리라고 윌비는 생각한다. 옛일을 떠올리고 심란한 윌비는, 스스로 곧 평온을 찾을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인지하고 있으며, 정돈된 삶의 다른 측면에서도 그렇듯이 맞닥뜨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안다. 그런데도 오늘 아침 그는 친구를 좋아하는 만큼 자신을 좋아할 수가 없다."(p304)

어느 한 편 할 것 없이, 좀처럼 독자를 편안하게 만들지 않는 소설들이었다. 역자도 긴장하게 만들었다는 독특한 문체 때문도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죄책감 많은 이 사람들 때문이었다. 내 안의 죄책감은 물론 생각지 못한 뻔뻔스러움과 마주해 당혹스럽기도 했고, 이들을 깊이 연민하며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꽤 오래, 시도때도 없이 죄책감을 느끼는 나 자신을 싫어했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착하지도, 희생적이지도 않은 내 모습은 더 싫었다. 둔감해지는 것이 내가 가장 오래 간직한 목표였다. 세상 만사에 둔감하리라. 한없이 편안해지리라. 

이제는 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무뎌지는 것도, 가시를 세우는 것도 아닌, 용기라는 것을. 죄의식에 고통스럽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아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실행하고, 그리하여 자유롭고 행복해지겠다는 결의. 깨닫고 나자, 한결 편안해졌다.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들 정도의 죄의식은 경계할 일이지만, 세상 만사에 무관심한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실수에 너그럽고 타인의 실수에 확대경을 들이대는 것보다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힘들게 읽은 <그의 옛 연인>을 덮자, 세상을 향한 연민과 애정이 진해진다. 세상엔 나의 동지들이 있다. 

그의 옛 연인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은영 옮김, 한겨레출판(2018)


태그:#그의 옛 연인, #윌리엄 트레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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