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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9월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축제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9월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축제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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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나는 제 17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했다. 나의 첫 퀴어축제였고, 정말 인상 깊었던 경험들을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동성애는 죄악이다'이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달아놓은 큰 트럭이 행사 내내 머무르며 괴성을 내뱉곤 했다.

당시 어떤 신학대에서 교직원들과 총학생회 부원들이 서울시청 맞은 편의 맞불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오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들이 시청광장으로 바로 밀고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잠깐 했더랬다. 소위 '혐오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이 1년에 하루 '사랑이 이긴다'면서 세상 바깥으로 나와 보겠다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지우기 위해 이렇게 훼방놓는다는 사실이 참 슬플 따름이었다.

지난 9월 8일에는 인천에서 처음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그런데 행사의 진행을 막아선 측의 물리적인 충돌이 꽤 만만찮았다. 당시 나는 SNS를 통해 거의 생중계에 가깝게 진행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는데, 혐오세력에 갇혀서 꼼짝도 할 수 없다는 지인들의 글이 속속들이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새로운 공격 대상으로서의 퀴어

퀴어 이슈는 늘 '뜨거운 감자'다. <퀴어 아포칼립스>를 쓴 저자 시우는 문화연구를 전공했으며 지난 10년 동안 퀴어운동의 한 복판에서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온몸으로 겪어 온 활동가다. 나나 저자인 시우,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특히 1년에 한번씩, 이제는 전국적으로 열리는 이벤트가 된 퀴어문화축제는 중요한 경험이자 진지한 고민이 이루어지는 장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핵심적인 퀴어 이슈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논의하는 자리 역시 그렇다. 이렇듯 다양한 이슈들과 사건들이 모이고 모여 오늘날의 퀴어운동을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퀴어 이슈는 특정 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 또는 이해관계 당사자 사이의 다툼으로 환원될 수 없다. 퀴어 이슈는 우리가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온 규범적인 질서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이를 통해 한국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들에 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보수 기독교 세력이 퀴어에 대해 전방위적 공격을 가하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이다. 분명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에 훼방을 놓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정치적인 행위인데, 이들은 이것이 정치적인 행위가 아니라 '신앙적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반면에 자신들의 눈 밖에 난 행동은 '정치적 행위'라고 낙인 찍는다.

정치적인 영역과 종교적인 영역을 교묘하게 구분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의 전략. 저자는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정교분리의 원칙이 실은 '입장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퀴어문화축제 개최 반대 서명을 하는 것은 신앙적 실천으로 평가하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것은 정치적인 일이라고 비난하는 장면은 개신교회의 정교분리 원칙이 정치 참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입장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보수 개신교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정치적 입장은 신앙적 실천으로 해석되지만,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는 신앙적 실천도 '정치적인 주제'로 평가절하되는 것이다. 반퀴어 운동은 정치적인 영역과 종교적인 영역을 임의적으로 단속하면서 보수 개신교회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이슈에만 선택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모호하게 뒤섞인 정치적 행동주의와 종교적 신념의 상승작용"이라고 설명한다. 정말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정치에 대해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야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바라볼 수 있다. 문제는 본인들이 정치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말하면서 종교적 신념으로 포장하고, 사회적 약자를 공격할 때 발생한다. 여기에 보수 개신교 세력의 눈치를 보거나, 이들과 적극적으로 공모하는 정치세력이 합세하면 퀴어 이슈는 손쉽게 '나중'에 다루어야 할 혹은 다루지 말아야 할 주제가 돼버린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기관은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소수자 집단을 보호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현재 정치인과 행정가는 퀴어 이슈를 외면하고 반퀴어 운동을 방관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무책임한 자세는 퀴어 집단이 처한 삶의 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반퀴어 운동을 사실상 뒷받침한다. 때로는 퀴어 집단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거나 박탈하는 것을 통해 퀴어 차별과 폭력을 제도화하면서 반퀴어 운동의 적극적인 공모자가 되기도 한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성 소수자 단체 회원과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시민이 플래카드를 들고 맞서고 있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성 소수자 단체 회원과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시민이 플래카드를 들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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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살아가는 모든 이를 위해 

혐오가 현실이 되어버린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며 대안을 찾는 작업은 중요하다. 그것은 연구자든 아니든, 모두에게 필요한 사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한 번쯤 경계를 살아간다. 늘 강자의 위치에 서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이러한 유동성을 "여행자와 번역자라는 정체성"이라고 표현한다. 삶이라는 곳을 여행하는 사람이자,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풀어내는 사람이라는 비유다.

올해 오랫동안 성소수자 군인을 차별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군형법 92조의 6' 폐지 캠페인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해당 법 조항의 불합리함에 대해 공부하고 조사하면서 알게 된 것은, 보수 기독교를 주축으로 한 반퀴어 세력의 입김이 정말 세다는 점이다. '항문성교 허용하면 군대가 망한다!' 이 간명한 문장 안에 얼마나 큰 무지와 혐오가 녹아있는가. 흥미롭게도 이 주장은 '종북 게이' 논의와도 연결되어 있다.
 
'종북 게이'라는 표현은 반퀴어 운동의 반공주의 성향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이 표현에는 성별 정체성 및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일이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군 전투력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중략) 폭행이나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성인이 서로 합의한 성적 실천을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은6은 군 기강 확립이나 성폭력 방지와는 무관하다. '종북 게이'라는 명명은 북한 정권이 동성애를 자본주의의 폐단으로 진단하고 엄격하게 처벌한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반퀴어'라는 아젠다는 보수 기독교만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가 퀴어를 향해 만들어내는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은 대중을 움직이게 한다. 저자는 이를 "감정을 움직이는 문화정치학"으로 표현한다. 그러니까, 퀴어에 대한 판단 기준을 아직 세우지 못한 대중들을 "반퀴어 운동에 합류" 시키기 위한 정치적 전략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도 않는다. 반퀴어 운동이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마법처럼' 사라진다 해도 '나중에'를 외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회에서는 언제든지 누구나 차별과 배제의 타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퀴어 이슈는 "동성애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따지는 문제" 혹은 "보수적인 교리를 수호하는 개신교회와 사랑할 권리를 주장하는 동성애자 사이의 갈등"으로 단순하게 요약될 수 없다. 그것은 위에서도 말했듯 '차이'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차이를 우회하기보다 차이를 통해서,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가지고, 차이에 갇히지 않고 차이를 넘어서 우리는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아직 실현되지 않은, 그러나 이미 시작된 퀴어 미래를 기대해본다.

퀴어 아포칼립스 - 사랑과 혐오의 정치학

시우 지음, 현실문화(2018)


태그:##퀴어아포칼립스, ##보수개신교,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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