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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9일 오후 4시 18분]

우리 엄마는 육남매의 맏딸로 어렸을 때부터 순하디 순하다고 했다. 순한 큰딸. 조순덕.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했고 중학교 대신 집안일을, 고등학교대신 밭일을 하며 어른이 되었다.

순한 엄마는 지인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자식을 낳았다. 남편이 주는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 집안 살림을 했으며 하루 삼시세끼, 달에 아흔 번, 지금까지 4만 5천 번이 넘도록 쌀을 씻었다. 그 밥을 먹고 한 남자는 노동을 했고 세 아이들은 자라났다.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한 남자는 노동을 했고 세 아이들은 자라났다.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한 남자는 노동을 했고 세 아이들은 자라났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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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름을 부끄러워했다. 순덕이. 6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순댁아. 순댁아" 불렸을 텐데, 엄마는 그때마다 볼이 빨개졌다고 한다. 왜 우리 엄마와 이모들은 순덕이, 숙자, 삼순이 그렇게 불렸을까. 가난에는 세련이 없는지 이름 지어준 외할아버지가 조금 야속하기도 하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어느 날엔가 엄마는 본인의 이름을 적어야하는 곳에 '조희정'이라 적었다. 자신의 성과 딸의 이름을 붙여 엄마의 이름도, 그렇다고 내 이름도 아닌 '조희정'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엄마? 왜 조희정이라고 적어?"
"응. 그냥 그렇게 적어."


누가 "순댁아!" 하고 부른 것도 아닌데, 그때 엄마의 볼은 조금 붉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가끔 장난으로 "조순덕 여사님!" 하고 부르면, "엄마 이름 부르지마!" 하고 손사레를 쳤던 엄마. 엄마는 이름이 부끄러운 걸까, 순덕이로 살아온 삶이 붉은 걸까? 엄마가 순하지 않았다면, 큰딸이 아니었다면 무슨 이름이 지어졌을까?

엄마가 된 엄마는 자신의 이름대신 딸의 이름으로 살았다. '희정 엄마' 본인의 이름 석 자를 지우고, 얼굴의 화장을 지우고, 젊음을 지우고, 그렇게 자신을 지우고 지우며 엄마로 살아왔다.

그저 이름만 지울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본인의 이름 석자 위에 덧대어진 엄마라는 이름은 여자 그리고 한 사람의 고유한 삶마저 지우게 한 것 같다. 엄마를 엄마로 만든 원인인 내가 괜스레 미안해진다.

나는 엄마의 이름을 한번 지어본다. 순덕이처럼 촌스럽지 않고, 좀 더 세련되고, 누군가 불렀을 때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 이름으로 지어주고 싶다. 어렸을 적 엄마가 가짜로 적었던 '조희정', 언젠가 티비를 보다 예쁘다고 했던 여배우의 이름을 빌려 '조가인', 그리고 내가 하나 지어본 외자 이름의 '조은'

엄마는 이 중 어떤 이름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하실까? 안 그래도 부끄러웠던 자신의 이름 석 자 대신 그냥 '희정엄마'로 불리 우는 것이 더 낫다 생각하실까? 엄마는 엄마라고 이름 짓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지어진 엄마라는 이름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고 기꺼이 자신의 이름을 내주었다.

그 이름값으로 평생 밥을 짓고 반찬을 하고 집안을 쓸고 닦고 혼자 남편과 세 자식, 총 4명분의 삶을 지불했다. 나는 안다. 아빠가 벌어온 돈 만큼이나 엄마가 아낀 돈이 있었기에 그 4명분의 인생에 빚이 없다는 것을. (관련 기사 : 여성 1인 가사노동 가치 연간 1077만원)

조.순.덕. 엄마의 이름을 한번 불러본다. 엄마의 얼굴대신 내 눈이 붉어진다. 이제 다 큰 딸은 엄마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지워주고 싶다. '희정엄마' 대신 이름 석 자를 불러주고 싶고, 얼굴에 예쁜 화장을 해주고, 젊음을 돌려주고, 그렇게 자신을 부르고 부르며 조순덕씨로 살게 해 주고 싶다. 지금부터 그렇게 산다 해도 부족한 시간들이다.

엄마는 엄마로 너무 오래 살아왔다.

태그:#엄마, #삶,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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