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놈> 포스터

영화 <베놈> 포스터 ⓒ 소니 픽쳐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다른 존재가 우리의 몸을 좀 더 진보적인 존재로 살게 해준다면 우리는 그것과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이 화두는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업그레이드>(2018)에서 먼저 제시되었던 질문이다. <업그레이드>에서는 AI가 인간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SF 액션의 틀 안에서 보여주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결국 AI의 통제를 받아들이고 몸에 대한 주도권을 잃는다. 주인공이 종속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며 AI가 발전하고 있는 현 시기에 적절한 화두를 던져주었고 과연 우리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베놈>(2018)은 AI를 외계 존재로 바꾼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에디 브록(톰 하디)은 외계 존재 심비오트의 숙주가 되어 혼란의 시기를 맞는다. 이 영화는 다른 존재가 인간을 통제한다는 측면에서 영화 <업그레이드>의 화두와 비슷하지만, 여기에 정신적인 측면을 좀 더 부각하여 에디에게도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선택권을 줬다.

'베놈'은 숙주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일종의 기생충 같은 존재다. 외계 존재가 동물이나 인간을 숙주로 삼아 자신을 발전시키고, 삶을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영화 <인베이젼>(2007)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베놈>이 비슷한 소재의 다른 영화들과 다른 것은 한쪽이 주도하는 위치가 아니라 서로 공생하는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영화 <베놈> 장면

영화 <베놈> 장면 ⓒ 소니 픽쳐스


안티히어로로 재탄생한 스파이더맨 악당 베놈 

외계 존재를 수집해 돌아오던 우주 비행선이 추락하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외계 존재인 심비오트를 전면에 내세워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이미 이 심비오트는 과거의 <스파이더맨3>(2007)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심비오트는 스파이더맨 원작 시리즈에서 스파이더맨을 포함해 다양한 인물들을 옮겨다니며 그들에게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영화 <베놈>에서는 심비오트를 '자의식'이 있는 존재로 묘사하여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전개시킨다.

주인공 에디 브록의 직업은 기자다. 다른 기자에 비해 좀 튀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열정이 있고, 감춰진 진실을 추적하여 기사화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뜻하지 않게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연인 앤 웨잉(미셸 윌리암스)과 헤어진다. 취재를 위해 제약회사에 잠입한 에디 브록은 우연히 심비오트에 감염되어 몸에 침입한 강력한 존재와 주도권 싸움을 한다.  
 
 영화 <베놈> 장면

영화 <베놈> 장면 ⓒ 소니 픽쳐스

  
심비오트 베놈과 에디 브록의 공생

심비오트는 인간의 몸이 있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존재이고, 에디는 심비오트가 주는 육체적 능력을 이용해야만 라이프 파운데이션이라는 제약회사의 만행을 세상에 폭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액션 장면에서 심비오트, 즉 베놈이라는 존재가 에디를 조종하게 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에디가 다시 주도권을 찾고 상황을 통제한다.

두 존재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공생하는 관계로 거듭난다. 하지만 베놈은 에디의 몸에서 언제든 벗어날 수 있고, 조종도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생관계가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가 없다. 서로 깊이 신뢰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영화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동한다. 
 
 영화 <베놈> 장면

영화 <베놈> 장면 ⓒ 소니 픽쳐스

  
심비오트의 특징을 이용한 다양한 액션 시퀀스의 향연

영화에 등장하는 제약회사의 이름이 라이프 파운데이션인 것은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라이프>(2016)의 연장선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영화도 제작사가 소니였고 외계 존재가 지구로 향하며 결말을 맺는데, 마치 영화 <베놈>이 영화 <라이프>의 후속편 같은 느낌도 들어 흥미를 더한다. 또한 에디가 베놈의 조정을 통해 벌이는 액션 시퀀스들은 박진감이 넘치고 흥미롭다. 무엇보다 과거 <스파이더맨 3>에서 보여줬던 심비오트의 CG가 더욱 사실감 있게 묘사되어 영화의 후반부는 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베놈과 또 다른 심비오트가 서로 싸우는 하이라이트 장면은 심비오트의 특성을 잘 살려 다양한 시퀀스를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가 일종의 버디무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에디와 베놈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티격태격하고, 가벼운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느낌을 준다. 두 존재의 갈등은 영화 내내 이어지며 흥미를 유발하고 현란한 액션 장면과 함께 관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에디는 결국 베놈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대다수의 착한 사람은 건드리지 말자는 일종의 협정을 맺는다. 하지만 이 협정이 어느 정도 지켜질지는 알 수 없다. 베놈이라는 캐릭터는 안티 히어로다. 다시 말해 히어로가 아닌 나약하거나 사악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놈이 이 영화에서는 너무 착하게만 묘사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에디가 결국 진보한 존재가 되었는지는 이 영화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육체적인 능력은 진보를 이뤘으나, 정신적으로 여전히 에디는 성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향후 이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에디와 베놈의 주도권 싸움은 관객들에게 여전히 흥미로운 볼거리로 남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다. 에디 브록을 연기한 톰 하디보다는 악역인 칼튼 드레이크 박사 역의 리즈 아메드의 연기가 더 인상적이다.

영화는 본 내용 이후 쿠키영상에서 후속편을 예고한다. 4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개봉한 <베놈>은 개봉 후 약 8천3만 달러(한화 약 904억 원)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이는 역대 할리우드의 10월 개봉작 오프닝 스코어 중 가장 높은 성적이다. 후속편을 다시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베놈 심비오트 마블 톰하디 안티히어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러 영화와 시리즈가 담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전달합니다. 브런치 스토리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고 있어요. 제가 쓰는 영화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저의 레빗구미 영화이야기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같이 영화가 전달하는 감정과 생각을 나눠봐요. :)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