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쓰백' 이지원 감독 영화 <미쓰백>의 이지원 감독이 1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일을 한 지 18년 만에 첫 번째 장편을 세상에 낸 이지원 감독을 만났다. ⓒ 이정민

 

<미쓰백> 이지원 감독에게 첫 장편 영화를 연출한 소감을 먼저 물어보고 싶었다. 처음 <번지점프를 하다>(2000) 연출부로 영화 일을 시작한 이지원 감독은 18년이 돼서야 <미쓰백>이라는 첫 번째 장편 영화를 내놓았다. 지난 9월 27일 있었던 언론 시사회에서 떨고 있던 이지원 감독을 두고 배우 이희준은 "감독님이 십여 년을 연출부 생활을 하다가 너무 뭉클해서 아침에 울고 토하고 식사도 못 하셨다고 하더라"라고 말을 덧붙였다. 18년을 기다린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난 1일 <미쓰백> 개봉을 열흘 앞두고 만난 이지원 감독은 언론 시사 당일 아침을 회상하면서 "내 인생 38년 동안 긴장을 해서 토한 건 처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 감독은 "이희준씨가 사전 인터뷰에서 내가 토했다는 이야기를 또 했다"며 "그때 내가 카메라 앞에서 울어버려서 모두들 당황했다"고 말했다.

"내가 처음 연출부에 들어왔던 것이 <번지점프를 하다>였으니까 김대중 시대다. 굉장히 오랜 시간을 달려왔다. 입봉 준비는 2008년부터 했고 10년 만에 작품을 만들게 됐다. 그 시간 동안 '이보다 더 힘들 수 없는 순간'을 한 10번 정도 거쳤다. 그러니 기회가 주어지더라. 영화를 찍을 때는 주어진 1분 1초가 감사하고 촬영 현장에서도 계속 눈물이 나고 그랬다.

언론 시사 날 다른 감독님들도 물론 긴장을 하실 것이다. <미쓰백>은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작품이라 마치 내가 소중히 여긴 아이를 강으로 떠나보내는 느낌이 나더라. 산고(아이를 낳을 때 느끼는 고통)라고 해야 할까. 내가 낳은 애를 강 건너로 보내면서 따뜻한 곳에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영화는 만드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것이니까. 아리게 겪은 애정을 잊고 놓아주려는 단계다."

 
경각심과 진심

- 개봉을 며칠 안 남겨둔 지금은 어떤가.
"아직도 먹먹한 감정이 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영화를 좋아할 수는 없다. 분명 누군가는 싫어할 텐데 옛날에는 강심장이고 그러니 연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더라. (웃음) 어제 휴대폰의 포털 사이트 어플을 지워버렸다. 더이상 반응을 검색하지 않으려 한다. 이제 대중들 앞에서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할 때다. <미쓰백>에 완전 목을 매달고 올인했던 모습에서 원래 이지원으로 돌아가려는 단계다."

- 눈여겨 봤던 반응 중에 지금 생각나는 반응이 있나.
"이 영화로 아동 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가장 전하고 싶었다. 혹시 내가 영화를 잘못 만들어서 왜곡돼 전달되면 어쩌지 싶었다. 그 우려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 내내 큰 숙제가 됐다. 다행히 언론 시사 이후 내 진심을 많이들 받아주신 것 같아 조금은 안도했다."

- <미쓰백>은 메시지가 확실한 영화다. 다양한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겠지만 혹시 특별히 영화를 봐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나.
"사실 나 역시 아동 학대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이다. 사실 쏟아지는 기사들도 고통스러운 현실을 담고 있으니 읽기 싫었다. 우연히 옆집에 살던 아이가 학대당하는 걸 마주치고 나니 아동 학대 기사가 다시 보이더라. 영화를 보시는 관객분들도 나처럼 다시 문제를 마주쳤으면 좋겠다. 얼마 전 아동보호 전문 기관 분들과 <미쓰백> 시사회를 가졌는데 영화를 보시고 너무 많이 우시더라. 영화를 찍으면서 도움을 많이 주셨던 분들이다. 그런 분들도 그렇지만, 관심이 없던 분들도 봐서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영화 <미쓰백> 스틸 사진

영화 <미쓰백> 스틸 사진 ⓒ 리틀빅픽쳐스


- 아동 보호 기관 분들에게는 남다른 영화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 손을 잡고 이런 영화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면서 우시더라. 오히려 내가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분들에게 이 영화가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다. 지은(김시아 분)은 실제 학대당하던 아이 7명 정도 사례를 종합한 캐릭터다. 그분들은 어떤 아이를 모델로 했는지 다 아실 것이다."

- 학대하는 지은의 아버지 일곤(백수장 분)과 주미경(권소현 분) 역할도 실제 인물에서 따온 건가.
"맞다. 지은이처럼 실제 사례에서 따온 캐릭터다. 아동 학대 사례에서 가해했던 부모의 유형 중에서 가장 많은 유형을 따와서 입혔다. 주미경처럼 친모가 아닌데 연인이 낳은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일곤처럼 집에서 머물면서 직업이 분명하지 않고 어떤 것에 중독돼있는 친부가 오히려 주미경 같은 캐릭터를 양산해내는 구조다. 

실제 학대당한 아동을 상담하는 선생님들은 학대한 부모도 함께 상담한다. 충격적인 사실은 학대하는 계모 중에서도 과거엔 아이에게 굉장히 잘해줬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작고 낡긴 했지만 지은이도 예쁜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한때 주미경이 아이를 잘 키워보려고 노력했지만, 점점 가정이 붕괴하면서 원망을 쏟아낼 창구가 필요했고 그게 지은이 된다는 설정이었다. 나도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추측하기로는 힘없는 약자에게 폭력이 대물림되는 구조가 아닐까."

- 극중 주미경은 아이를 학대하면서도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는 애지중지하더라.
"그것도 실제 있는 사례였다. 강아지를 소중히 안고 다니는 여자가 애에게 학대를 가한다는 게 놀라웠다. 7명의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되기 때문에 사례를 특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실제 화장실 혹은 베란다에 방치된 아이들이 많았다. 손발이 묶이고 차가운 겨울에 찬물을 뒤집어쓴 아이들도 많았다. 전부 다 실제 사례다."

"투자 난항도 겪었지만, 포기하지 못해"

- 몇 년 전에 학대당한 아이를 모른 척한 것에서 영화 시나리오가 출발했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미쓰백' 백상아는 감독이 되고 싶어 했던 인물인 건가.
"(웃음) 그럴 수밖에 없다. 백상아는 나이기도 하고 내가 되고 싶은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8년 동안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지면서 인생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자살하는 꿈을 꾸고 그랬다. 그런 와중에 애가 맞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내가 학대하는 저 여자를 어떻게 해버리고 쟤를 데리고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맞다. 그 애에게 폭력을 가한 여자와도 마주친 적이 있다. 마치 주미경처럼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온화해 보이더라. 그 애를 구해주지 못했던 내 모습이 투영되면서 백상아라는 인물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 그 사건을 겪은 이후에 이 영화를 계속 놓지 않고 작업한 동력은 무엇인가.
"그 일을 겪고 시나리오를 쓰고 몇 달 만에 프리 프로덕션(촬영 전 준비를 하는 단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도 쉽지 않았다. 어려운 소재이다 보니 투자에 난항도 많았다. 그 과정에서 아동 보호 센터 분들이 내게 이 영화 포기하면 안된다고, 꼭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학대받는 아이들이 눈에 밟히기도 했다. 내가 만일 여기서 힘들어서 포기하게 되면 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없어지고 마는구나 싶어서 더 포기를 못 하겠더라. 투자가 난항일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다행히 잘 헤쳐나가게 됐다."

- 옆집에 지은이 같은 아이가 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영화 <미쓰백>이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너무 어려운 문제다. 누구도 상아처럼 행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어쨌든 누구도 학대받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또 자기도 다칠 수 있다. 마지막에 주미경이 백상아에게 '너라고 안 그럴 것 같냐'고 소리지르는 장면이 있다. 그게 이 영화의 화두다.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면 외면하겠느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 한지민을 처음에는 섭외할 생각이 없다고 들었다. (관련 기사: 한지민이 맑다고? 아동 학대에 분노한 미쓰 백을 품다 , http://omn.kr/19cyl) 개봉을 앞둔 지금 배우 한지민에 대한 인상이 어떤가.
"정말 지민씨 안 만났으면 어떻게 됐으려나 싶다. (웃음) 지민씨는 나랑 상당히 비슷하면서 반대되는 면이 많은 배우다. 나는 겉으로는 세 보이는데 속은 여린 반면, 저 사람은 겉은 여려 보이는데 속은 강하다. N극과 S극의 사람이 만나 '미쓰백'이라는 또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한지민씨를 영화 촬영하는 내내 너무나 사랑했다. 초반에는 친구처럼 사랑했다면 후반에는 마치 남자친구처럼 집착할 정도로 사랑했다. 영화 편집 기간에는 모성애까지 생기더라. 지민씨는 아마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줄 모를 것이다. 이제는 촬영 기간이 다 끝났으니 헤어진 연인 같은 느낌이다. (웃음) 정말 지민씨여서 다행이었다. 무모한 선택일 수 있다고 주변에서 말씀도 하셨는데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영화 '미쓰백' 이지원 감독 영화 <미쓰백>의 이지원 감독이 1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입봉 준비는 2008년부터 했고 10년 만에 작품을 만들게 됐다. 그 시간 동안 '이보다 더 힘들 수 없는 순간'을 한 10번 정도 거쳤다." ⓒ 이정민

 
- 다음 영화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두 번째 영화를 볼 수 있나.
"영화를 찍을 수 있을 만한 시나리오를 쓰려고 한다. (웃음) 첫 작품에서 조금 무거운 주제를 던졌다면 두 번째 작품은 친숙한 소재로 생각을 해뒀다. 사실 두 번째 작품에 큰 의의를 두기 보다는 평생 영화를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생 영화를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한다. 감독이 그래서 전생에 업보가 많은 사람들인 것 같다. 먹고 살기도 힘들고, 창작의 고통도 겪어야 하고, 창작이 끝나면 평가가 비수가 돼 날아오기도 하고. 이렇게 힘든 일을 왜 하고 있을까 생각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영화감독은 화려한 직업일 것이다. 배우들이랑 같이 다니고 이렇게 매체에서 인터뷰도 하고.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 (웃음) 그래도 어쨌든 흥미를 느껴서 계속 작업을 하는 게 아닌가.
"맞다. 촬영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집중하는 분위기, 내가 상상만 했던 것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카타르시스가 크다. 또 스태프들이 너무나 작은 예산의 영화임에도 애정을 갖고 같이 만들어주셨다. 이 영화를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기에 촬영하는 순간이 더 감사하고 행복했다. 크랭크업 했을 때도 울었던 것 같다. 참 과분한 순간들이었다."

- 아직 장편 영화를 내지 못한 입봉을 준비하는 여성 감독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갑자기 감정이입이 너무 되는데... (웃음) 글쎄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버티라는 말을 해줘야 할까. 그런데 사실 내가 '여성' 감독이라는 걸 인지한 게 최근이다.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이라고 인식했지 여성 감독임을 <미쓰백>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인지하기 시작했다. 여성 감독만이 아니라 입봉을 준비하는 감독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을 좀 더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영화를 찍으면 입봉을 못 했을 때의 고통과 비슷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 시간을 좀 더 인내하고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는 과정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세상에 대해 원망을 하기보다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 자기 영화를 찍을 때 그 고통이 자기 발전으로 돌아오더라.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 <미쓰백>을 여성주의 서사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게만 보고 작업한 건 아닌 것 같다.
"여성 영화를 만들겠다면서 시작하진 않았다. 그저 내게는 너무나 당연한 설정이었다. 백상아는 나 자신을 투영시켰기 때문에 여성인 거고, 옆집에서 봤던 애가 여성이기에 지은도 여성이었다. 인간에 대한 연대의 이야기지 여성 영화로 굳어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아까 영화를 평생 찍고 싶다고 말씀드렸지 않나. 남성 배우들의 폭이 넓은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배우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배역이 많이 없기 때문에 그 풀을 넓혀가야 한다는 건 내가 해야 할 몫 중에 하나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

이지원 감독 미쓰백 한지민 아동 학대 여성주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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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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