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양연화> 스틸 컷.

영화 <화양연화> 스틸 컷. ⓒ 굿타임엔터테인먼트

 
옛 영화 <화양연화>를 꺼내 본다. '꺽꺽' 소리 날 법한 속내를 화려한 치파오로 압착시킨 리첸(장만옥 분)이 짠하다. 삶의 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미봉책의 그녀 일상에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1960년대 홍콩에서 각자 남편과 아내의 간통에 맞닥뜨린 두 주인공의 선택은 결말 장면에서야 확연히 드러난다. 미동 없는 겉보기와 달리 내내 퍼석대는 두 캐릭터의 정황을 왕가위 감독은 절제된 앵글로 전한다.

'간통죄'가 사라진 지금 여기에서 간통이란 단어를 쓰는 게 껄끄럽다. 그러나 당시 홍콩의 보수적 세태를 고려하면, 상황이야 어쨌든 <화양연화>가 연출한 기혼남녀의 로맨스는 '불륜'이다. 영화는 그 불륜을 향한 뭇 시선을 아우른다. 그것은 영화의 서막으로 떠오른 문장,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에 스며 있다. 무리한 상황에서 비켜나는 현실적인 리첸과 차우(양조위 분)에게서 나를 본다.
 
 영화 <화양연화> 스틸 컷.

영화 <화양연화> 스틸 컷. ⓒ 굿타임엔터테인먼트

 
내겐 차우의 소심함이 부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지도 못하지만, 리첸과 마주한 좋은 순간 역시 어차피 흘러감을, 그래서 리첸을 향한 사랑이 진심이어도 장차 그 농도가 변할 것임을 알기에 멈추는 체념으로 여겨져서다. 그 움켜쥘 수 없음을 향한 시선이 '화양연화(花樣年華)'의 뉘앙스다. 남편이 리첸에게 보낸 생일축하엽서에서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다.

다른 여자와 함께하며 아내의 '화양연화'를 상기시키는 그 대목은 영화적 복선이다. 각자 남편과 아내에게 배신당한 후여서 맞불처럼 되어버린 리첸과 차우의 만남을 상대적으로 화양연화로 보게 한다. 그렇기에 스무 벌 이상의 화려한 치파오가 띄우는 리첸의 생물학적 아름다움이 한때의 누림으로 강조돼 더 안쓰럽다. 그걸 아는 듯 리첸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사랑에 매달리지 않으려 두 번의 이별을 연습한다.
 
 영화 <화양연화> 스틸 컷.

영화 <화양연화> 스틸 컷. ⓒ 굿타임엔터테인먼트

 
리첸의 예행연습은 차우의 시선을 받으며 행해진다. 남편이 외도를 인정할 때의 처신과 차우와 헤어질 때의 추스름을 위해서다. 두 경우 모두 리첸의 체면 차리기에 다름 아니다. 세인의 눈 밖에 나지 않으면서도 자기의 상흔 또한 줄이려는 의도다. 그렇게 매사 자기 단속을 하느라 리첸은 처마 밑에서 소나기를 피하는 중에 차우가 애써 가져 와 건네는 우산을 거절한다. 함께 쓸 수는 없어서다.

좋게 보면, 리첸의 예행연습은 실패한 결혼과 위태한 사랑에 직면해 감정적으로 독립하려는 몸짓이다. 의지할 건 결국 나 자신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경제적 독립보다 더 어려운 게 그거다. 곧 지나갈 소나기를 함께 피하려고도, 그렇다고 우산을 함께 쓰려고도 않는 두 캐릭터를 보며 끝내 나는 운다. 내 울음은 홀로 감당할 수 있는 것만 선택하는 삶의 파편화에 대한 공감이다.
 
 영화 <화양연화> 스틸 컷.

영화 <화양연화> 스틸 컷. ⓒ 굿타임엔터테인먼트

 
차우의 근무지가 타지역으로 바뀐 후 둘은 재회한 적이 없다. 대신 영화는 말없이 끊어지는 전화를 받은 차우와, 여관방에 들러 차우와의 추억을 더듬는 리첸을 보여준다. <화양연화>는 그렇게 먹먹한 기운에 바탕하면서도 꿈꾸는 삶을 향한 미련과 의지를 보여준다. 리첸과 차우가 먼 길을 돌아 그들이 머물렀던 셋집을 방문하는 결말을 통해서다. 더구나 리첸은 어린 아들과 함께 그곳을 새 거처로 삼는다.

<화양연화>의 결말은 이별이 곧 잊음이나 잊혀짐은 아니라는 것에 힘을 실어준다. 아들을 키우는 리첸에게 차우와의 추억은 일상을 살아내게 하는 저력일 수 있다. 여생을 적시는 한때의 화양연화는 메마른 일상에 물기를 뿌려주는 상징적 우산이다. 왕가위 감독의 불친절함이 어쩔 수 없는 묵언으로 다가온다.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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