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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학기부터 서울시의 중고등학교에서 두발 규제가 전면적으로 폐지될 예정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27일 장발은 물론 염색과 파마도 단계적으로 가능케 하겠다고 했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가 지난 2012년 발효된 이후 6년여만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낸 성명서에 따르면 "두발 상태(염색, 퍼머 등) 역시 학생 자율로 맡기는 것을 지향하도록 긍정적 권유를 하되, 학교구성원의 다양한 의견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2019년 상반기까지 학교 공론화 과정을 거치도록 안내"토록 했다. 아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두발 자유화를 선언한 것이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벌써부터 반발이 나오고 있다. 학생이라면 응당 두발이 단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부터 그렇게 해서 어떻게 공부에 집중하겠냐는 말까지 가지각색의 비판들 투성이다. 왜 아직까지도 두발규제를 가지고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

8년 전에도 여전했던 체벌과 통제의 기억
 
내년 2학기부터 두발규제가 사실상 사라져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은 물론 파마나 염색도 지금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내년 2학기부터 두발규제가 사실상 사라져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은 물론 파마나 염색도 지금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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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10년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전국적으로 처음 제정됐다. "학생의 인권이 학교교육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로 시작하는 학생인권조례를 학생들을 모아놓고 학생주임이 이야기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런 게 뭔지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우리는 모두 인권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사람처럼 반응했다. 무언가 어색한 세 개의 단어의 조합 같아 보였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학생. 인권. 조례. 나는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기까지는 '학생인권'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전까지는 학교는 당연하다는 듯이 학생들에게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선생님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 소리를 듣고 싶었던 나조차도 엎드려뻗쳐를 한 적이 있었다. 이유인즉슨 옆머리, 소위 말하는 '구레나룻'가 안경 밑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이란다. 정말 그 이유뿐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십 수 명의 학생들이 복도에서 엎드려 뻗친 그 광경을. 

지금도 가끔 논란이 되는 '교복 위 외투'는 당시에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교복을 안 입을 수는 없으니 추워서 위에 외투를 입겠다는데도 학교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겨울만 되면 학생들의 볼멘소리로 가득 찼다. 학생선도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이유가 있으니 어느 정도는 따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조차도 '외투 금지'는 분노했던 것을 생각난다. 

물론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두발규제와 기타 체벌들을 제한하는 데에 기여했다고 평가받고는 있지만, 학생 당사자였던 우리들은 '학생다움'이라는 이름으로 그 이후 고등학교 3년 동안에도 암묵적인 통제와 명시적인 제재를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두발규제를 예로 들면, 학생인권조례 제11조 2항에서는 학생들의 두발의 길이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그 다음 3항에서는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음을 명시해두었다.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학생들과 교사들 간의 두발 길이를 둘러싼 모종의 갈등은 인권조례 제정 뒤에도 늘 있어왔다. 

두발 규제 폐지는 이제 시작일 뿐
 
내년 2학기부터 두발규제가 사실상 사라져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은 물론 파마나 염색도 지금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내년 2학기부터 두발규제가 사실상 사라져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은 물론 파마나 염색도 지금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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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라면 응당 '용모가 단정' (사실 그게 엄밀한 표현인지도 의문이다)해야 하고 머리 길이는 통제받아 마땅하다는 그 믿음이 다른 체벌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곤 했다. 아직까지 '학생들이 잘못하면 맞아야지'라는 폭력적인 시선이 어느 정도는 남아있는 것을 보면, 통제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어떤 폭력까지 용인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학생인권조례와 두발 자유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과 아닌 것은 분명 다르다. 두발규제를 없애는 것은 단순히 두발의 규제를 없애는 문제가 아니다. 제한된 선택지나마 학생들에게 주어진다는 뜻이고, 결국에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는 뜻이며,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두발길이 규제와 같이 '용모단정'과 '학생다움'의 관점에서 학생들의 화장 역시 규제받는다. 학생들은 화장을 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애초에 화장을 하는 것이 학생답지 않으므로 막기보다는, 그것을 청소년들의 자기표현으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애초에 두발길이나 화장 등의 자기표현을 막고 규제하려고만 하는 상황에서 소모적인 갈등이 많이 발생했다. 그러니까 아무런 규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사안에 대해 학생과 교사 간에 합의와 협상을 거쳐 갈등을 조정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학생회라는 자치조직이 있지만 중고등학교에서 학생회가 개입할 수 있는 범위는 굉장히 한정적이다. 여전히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파마와 염색을 막지 않으면 공교육이 무너질까봐 걱정되는가?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권리를 제대로 줘본,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성명서의 말을 빌리면 "민주적 효능감을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언론들은 이번 결정을 보도하면서 '논란이 불가피하다'라고 썼다. 그것이 '논란'이 된다는 것이 슬픈 일이지만, 권리를 주장하는 일에는 언제나 논쟁과 토론이 잇따른다. 서울시의 변화를 시작으로 여태 '학생다움'이라는 미명 하에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던 지난날들을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태그:##두발규제,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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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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