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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여성이 무대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지만 사고 재발 방지 대책과 책임자의 진정 어린 사과는 나오지 않았다. 관련기관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만 하는 모습이다.

김천문화예술회관에서 지난 6일 발생한 추락사고로 유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여성이 끝내 사망한 가운데 주최 쪽과 주관 쪽 그리고 무대감독 등의 책임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유족 측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고는 지난 6일 오후 1시쯤 경북 김천시 삼락동 김천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발생했다. 당시 조연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박아무개씨(24·여)는 작업 결과물을 확인하려 뒤로 이동하다 승강 무대가 내려간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7m 아래로 추락했다. 그는 이 사고로 안면 골절과 장기 손상 등을 입은 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9월 10일 오후 끝내 사망했다.

그런데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도 공연을 주최한 김천시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나 호남오페라단 그 어느 곳도 책임자라고 나서지 않고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 청와대 청원글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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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도 이 같은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

27일 올라온 '한 가정의 귀한 딸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 규명과 회피하는 책임자들의 엄벌을 촉구합니다.'는 제목의 청원은 28일 오후 1시 27분 현재 1492명이 서명했다. (해당 청원글 바로가기)

청원자는 사망사고와 관련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과 책임자의 진정 어린 사과가 나오지 않은 채 관계자 사이에서는 책임 공방전이 오가고 있다"면서 "공연을 주최한 김천시는 사고 뒤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고 나중에도 따로 대응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청원자는 "유가족은 '문화예술회관 관계자는 무대감독이 무대 위에 없었다고 말했지만 CCTV를 확인하니 분명히 무대에 있었다'며 '앞뒤 말이 계속 달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고도 전했다.

이어 "유가족은 사고가 난 지 2주가 흘렀지만 호남오페라단을 제외한 두 곳으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면서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사고와 관련한 게시물 하나 올라오지 않은 상태인데 안전 불감증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전무후무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원자는 "한 공연계 인사는 '우리나라는 안전사고가 일어나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해결책도 항상 제대로 제시되지 않아서 통탄스럽다'며 '공연을 주최하고 주관한 쪽에서는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왜 그 사고가 발생했는지를 분석한 후 개선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또 사고 책임과 관련해서는 "무대감독이 승강 무대를 내리기 전에 무대 위에 있는 박씨에게 피하라는 지시를 내렸어야 했다"고 했다. 청원자는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공연장 안전매뉴얼에 따르면 무대 시설을 설치하거나 해체하는 작업을 할 때에는 책임 기술자, 기술 감독, 제작 감독 등의 허가를 받지 않고 무대 지역에 출입하면 안 되는 까닭"이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박씨의 꿈은 성악가였고. 대학원 졸업 후 독일 유학길에 오를 예정이었다"면서 "유학비를 한 푼이라도 더 준비할 요량으로 무대 조연출 일을 해오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유족 "서로 책임 전가하면서 회피만..."
 
강순원씨가 사고 책임을 따져 묻는 과정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린 현장상황.
 강순원씨가 사고 책임을 따져 묻는 과정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린 현장상황.
ⓒ 강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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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박씨의 아버지 박원한씨는 28일 전화취재에서 '김천시청이나 김천시문화예술회관측과 얘기를 나눈 게 있느냐'는 질문에 "특별히 나온 것은 없다"고 했다.

그는 "방송국 등에서  (시청 등에) 질문했을 때 방어적이었고 책임감이랄까 그런 것들을 경감시키고자 진술한  것 같다. 오페라단 관계자들이나 김천예술문화회관도 경찰이 함께 조사하고 수사한 결과물이 송치됐으니까 그 결과에 따라서 액션을 취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의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 박씨는 "처음부터 자기네 문화예술회관 측과 주관, 주최 측이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시키면서 회피하려는 의도가 많았다"며 "딸이 사망한 가운데 자기네들이 사과하는 입장에서 나서려는 자세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심지어 형님, 동서들이 김천시 부시장까지 찾아가서 국장과 회담하는 자리에서조차도 책임감을 갖고 최대한 성의를 보이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자세를 분명히 보여주지 않았다"면서 "시간이 되면 법적인 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성의 없는 자세"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 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두고는 "지인들이나 주변 아시는 분들이 목소리를 내고 계시는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 제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 사람들 마음이 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나 김천시를 향해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되지만 제 딸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안전에 만전을 기해 달라"면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자신의 직무를 감당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김천시를 두고 "윗사람들은 보고만 받지 이 일에 대해서 나서려고 하지 않아서 밉다"면서 "문화예술회관 안에서만 해결되길 바라는 등 옛날 모습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민선시장이면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 불편이 무엇이고 직접 살피고 알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주문했다.

박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공연 전문가와 시민들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박준석 공연예술전문기자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김천문화예술회관에서의 무대추락사고 원인은 김천문화예술회관이 규정을 지키지 않고 안전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극이나 오페라는 무대를 만드는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면서 "속도전은 사고의 위험을 부른다"고 했다. 또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은 전문가들이 아닌 초보인력일 수밖에 없다"며 "사고는 예견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박 기자는 이어 "한 성악도가 이 위험한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숨졌다. 그리고 부모님은 장례를 치렀다"면서 "모든 기관들은 부모님들이 제풀에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래서는 안 된다. 한문연과 김천시는 적극적으로 부모님들과 책상 앞에서 만나야 한다. 보상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피해방지 대책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연예술계 관계자·시민들도 안타까워해
 
김천문화예술회관 전경
 김천문화예술회관 전경
ⓒ 김천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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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박씨가 졸업한 학교의 선배이자 외래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조은정씨는 26일 김천시청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제가 기억하는 이 젊은 청년은 성악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유학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김천문화예술회관에서 주최하는 오페라를 조연출하는 중에 있었다"고 했다.

이어 사고현장과 당시 상황을 언론 보도 등을 인용해 말한 후 "이 공연은 김천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했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와 호남오페라단이 주관했다"면서 "허나 그 누구 하나도 책임자라고 나서지 않는다. 무대감독이나 주최·주관 쪽이 먼저 연락해 잘못을 인정하거나 진심으로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김천시 문화예술관계자는 무대감독이 무대 위에 없었다라고 답변을 했으나 CCTV를 확인한 결과 분명히 무대 위에 있었다고 한다"면서 "안전규정을 어기고, 책임져야 할 김천시와 김천시예술문화회관 관계자들은 회피하기 바쁘다"고 비판했다.

또 독일 오페라 극장에서 12년 이상 근무하였다고 밝히고 있는 강순원씨는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무대에서 모든 움직임은 무대감독의 권한"이라면서 "어떤 누가 어떤 지시를 했더라도 무대감독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안전지침도 있다. 7m를 하강한 중앙무대에 주위 펜스를 치지 않은 것은 엄연한 안전지침 위반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천시는 28일 전화 통화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고 결과에 따라서 저희가 해야 할 부분은 할 예정"이라면서 "유족 측에게 민간배상과 관련해서도 적극적인 안내를 했다. 다만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현재는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마음은 안타깝다. 결과가 나오면 최대한 유족 입장을 반영해서 처리할 것"이라면서 "현재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저희가 앞뒤 없이 나설 수 없는 점을 이해해 달라. 김충섭 시장님께서도 유족 측에게 최대한 협조할 수 있는 부분은 나서서 해주라고 지시하셨다"고 밝혔다.

한편 호남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달하 비취시오라'는 지난 2017년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정읍에서 초연된 후 한국문예회관연합회 방방곡곡 문화공감 우수공연에 선정돼 9월 7일 김천에서 재연될 예정이었다.

태그:#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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