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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서울아산병원 내과 중환자실에서 일하다 태움과 과로 등 극심한 스트레스로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이후 '고 박선욱 간호사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출범했습니다.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유족에게 단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는 서울아산병원이 이 문제에 책임있게 나서도록 하기 위해 공대위는 지금까지 서울아산병원 내 문제점을 알리고 전국 어딘가에서 제2, 3의 박선욱이 될지도 모를 정도로 태움과 과로를 겪고 있는 간호사들의 목소리를 사회적으로 알리고자 합니다. (이 글은 공대위에서 발행합니다) 

올해 2월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입사 6개월 차의 한 간호사가 자살했다. 그녀가 극심한 업무량에 시달리고, 식사를 못해 입사 후 5Kg의 체중이 감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금까지도 파문은 계속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이 간호사를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말인가. 

위기의 시작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오니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들이 도산하기 시작했고, 살아남은 다른 기업들도 공포에 휩싸여 기업 평균 부채비율 400%를 줄이기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인력감소와 비정규직 도입으로 대변되는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강화시켜 그들을 힘들게 만들었지만, 딱히 저항할 방법이 없었던 노동자들은 참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환율이 치솟으면서 외화를 차입해 투자했던 대형병원들이 부도가 나고 서울대병원 같은 국내 최대의 대형병원들도 대기환자가 감소하면서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병원들은 기업의 효율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이러한 경향은 공고해져 현재는 병원을 기업과 딱히 구별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 행위별수가제의 특성에 따라 병원의 투자가 이익을 낼 수 있는 검사장비와 의사인력 위주로 이루어지고 간호 인력은 병원이 돌아갈 수 있는 최소한만으로 유지되게 된다.

인력이 부족합니다

2017년 OECD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 천 명당 활동하는 간호인력(간호사와 간호조무사 합산) 수는 5.9명으로 OECD 평균인 9.0명의 66% 밖에 되지 않는다. 절대적인 인력의 부족은 간호사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강도를 높이며 야간 근무의 빈도를 높여서 수면 장애를 유발한다. 아이도 마음대로 낳을 수 없는 팍팍한 노동현실을 만드는 주범으로, 실로 만 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함에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올해 2월에 이뤄진 노동시간 단축안 개정에서 보건업을 노동시간 특례로 존치했다. 인력만 충원되면 병원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음에도 보건업을 특례로 존치하는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잘 가르쳐주지 않아요

2016년 병원간호사회 조사에 따르면 전체 간호사 이직률이 12.4%임에도 불구하고 1년 미만 신규 간호사는 33.9%에 달한다. 신규 간호사의 업무 부담이 훨씬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대학을 막 졸업한 간호사가 병원에 취업하게 되면 차트 정리법부터 각종 기기 사용법까지 새로운 실무지식을 익혀야 한다.

모두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다. 선배간호사는 자신의 업무도 바쁜 상황에서 세심하게 신규간호사를 가르쳐주기 어렵고, 잘못한 일을 윽박지르는 식으로 흐르게 된다. 태움 문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신규 간호사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잠을 잘 수가 없어요

2016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의하면 간호사가 잠에 들게 되는 시간이 60.4분으로 일반인의 5~20분에 비해 길고 간호사의 39.2%가 잠이 들고 나서 3회 이상 잠이 깨며 41.8%가 일주일간 3회 이상 다시 잠들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높은 노동 강도와 불규칙한 3교대 근무가 간호사의 수면 장애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면장애는 생리불순과 위장장애를 초래하며 오랜 기간의 교대근무는 유방암 발생의 원인이 된다. 늘 피곤한 간호사들은 여가 시간을 주로 잠을 자는 등 휴식에 사용하게 되고 이는 사회적 활동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욕설이 듣기 힘듭니다

병원 노동자들의 각종 조사에서 폭언을 들었다는 비율은 대략 50%에 달한다. 우리나라 병원의 환자의 보호자들은 늘 바쁜 의사와 간호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몸도 아픈 상태에서 이는 짜증으로 이어지고 종종 폭언까지 가게 된다. 주취자가 많은 응급실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환자와 보호자뿐만 아니라 선배 간호사와 의사한테도 폭언을 듣는 경우도 많다. 병원은 기본적으로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지며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곳이라서 환자의 상태악화를 빌미로 이루어지는 폭언에 저항하기가 어렵다. 

골병이 듭니다

2014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전체 조사대상 501명의 간호사 중에서 어깨의 근골격계 질환 유병률이 61%에 달했고 이어서 다리/발(55%), 허리(51%), 목(42%), 손목/손/손가락(38%), 팔꿈치(21%) 순이었다.

간호사는 환자를 돌보면서 환자의 체위를 변경시켜야 하고 환자를 들어서 카트로 옮기고 이송해야 할 때도 있다. 이때 무리한 힘이 가해진다. 또한 주사 준비 및 처치, 투약, 천자, 관장, 시료채취 과정에서 부적절한 자세와 반복동작으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백의의 천사 이미지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중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사 바늘이 무서워요

병원은 늘 상해와 감염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 주사바늘에 찔려 B형간염이나 에이즈 등의 질환에 감염될 위험성이 있고 약품의 유리 앰플이 깨지거나 메스를 갈아 끼울 때 손가락을 베이기도 한다. 또한 병원에는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포함해서 산화에틸렌, 메탄올, 이소프로필알콜, 글루타르알데히드, 항암제 등 각종 위험물질이 존재하고 간호사는 늘 그것들에 노출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 땅의 간호사들이 신음하고 있다. 2017년 OECD 자료에 의하면  10만 명 당 우리나라 배출 간호인력(간호사와 간호조무사 합산) 수는 109.6명으로 OECD 평균인 46.0명의 두 배가 넘지만 실제 활동하는 간호사 수는 OECD의 66%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 간호노동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고통 받고 건강하지 못한 간호사가 돌보는 환자들이 건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간호노동의 문제는 국가적 문제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힘을 합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철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환경노동위원장이 기고한 글입니다. 이 기사는 故 박선욱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발행한 글입니다.


태그:#서울아산병원, #태움 , #고 박선욱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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