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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판정을 받은 엄마가 우리 집에 온 다음날. 그날은 유성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예전부터 유성 오일장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갈 기회가 없었다. 집에서 유성장까지는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다.

우리(엄마와 나 그리고 남편)는 유성장에서 큰 길 건너 가까운 한 교회 앞에 차를 세웠다. 마늘과 고추를 사고, 엄마가 좀 더 걸을 수 있다면 천천히 구경하면서 녹두부침개도 같이 먹자고 했다. 날씨는 맑았다. 엄마는 50여 미터를 채 걷기도 전에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허리가 아파서 못 가겠네. 둘이서 같다 와."

엄마는 교회 계단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마침 교회에서 주차장을 관리하는 사람이 엄마를 보자 "할머니는 여기 앉아서 기다리시면 되것네요, 장에 오늘 사람 많던데 날씨도 엄청 더워요, 목 마르시면 저 짝에 물도 있어요"란다. 자신 있게 유성 오일장에 가자고 했던 엄마는 풀이 죽었다.

"우리 올 때까지 어디 가면 절대 안 돼요."
 
 치매 판정을 받은 엄마와의 대화는 '반복적'이다.
 치매 판정을 받은 엄마와의 대화는 "반복적"이다(기사에 등장하는 인물들과는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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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는 딸집에 신세진다는 생각보다 뭐라도 도움을 줄 명분이 필요했다. '너희 집에 가면 니 살림을 다 해줄게'라고 수시로 말했던 엄마. 손이 놀고 있으면 지난날의 회한(?)이 엄마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가는 것 같다. 일 할 거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이것저것 둘러볼 것 없이 눈에 띄는 대로 고추 다섯 근을 샀다.

고추아저씨는 한 근에 1만7000원짜리를 1만6000원에 줬다. 마늘은 중간짜리로 세 접을 샀다. 시장엔 사과와 배 등 햇과일이 많이 나왔다. 오이나 상추, 쪽파도 마트보다 훨씬 싸다. 사람들로 붐비는 길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이왕에 왔으니 골목을 돌아서 돼지껍데기를 사고 쌀 뻥튀기도 살까 싶어 두리번거렸다.

"장모님 혼자 괜찮을까?"

고추와 마늘까지 사놓고 다른 가게를 기웃거리자 시간이 지체됐다. "괜찮겠지~" 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낯선 곳에 혼자 앉아 있는 엄마가 우리를 찾아나서기라도 한다면? 갑자기 불안감이 확 덮쳤다.

엄마는 휴대전화도 없고, 주소가 적힌 목걸이나 팔찌조차도 없다. 치매 노인으로는 완전 무방비 상태다. 시장을 빠져나와 도로를 건넜다. 마음이 급했다. 교회건물 계단에 앉은 엄마가 우리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달릴 듯 걸었다. "엄마~ 누가 납치해 갈까봐 막 뛰어 왔어"라고 하자 엄마는 천진스럽게 입이 더 벌어졌다.

"호호... 따라 오란다고 내가 갈 사람이니? 나 이래 봬도 아직 정신 말짱해."

'삭삭삭' 실고추를 만드는 엄마
  
 고추를 다듬는 엄마
 고추를 다듬는 엄마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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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고추를 만들고 있는 엄마. 재밌어보였지만 내손에서 실고추 만들기는 어림없었다.
 실고추를 만들고 있는 엄마. 재밌어보였지만 내손에서 실고추 만들기는 어림없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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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당장에 고추를 쏟아놓고 꼭지를 땄다. 고추를 닦아가면서 "참 좋네, 고추 잘 샀다, 근이 잘 나오겠어"라고 했다. 잘생긴 고추 10개 정도를 따로 빼고는 실고추 만들어서 뒀다 먹으란다.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른 방에서 잠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고추를 썰고 있었다. '삭삭삭' 소리도 경쾌하게 칼끝에 가늘게 떨어지는 실고추.

"오~ 재밌겠다. 그거 나도 해볼게요."
"그래? 이거 쉬워 보여도 힘 많이 들어가."


도마 앞에 앉아 칼을 쥐었다. 엄마가 씨를 뺀 고추 앞뒤를 잘라 두세 개를 겹쳐줬다. '삭, 삭, 삭'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는 소리. 고추는 내 손에서 실고추가 되지 않았다. 잠시 내가 하는 모양새를 바라보던 엄마에게 다시 칼이 돌아갔다.

"내가 고목이어도 힘은 너보다 세다."

'상냥이'에게 '두부'를 기대하는 엄마
 
 
    유성구 치매안심센터. 유성5일장이 서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유성구 치매안심센터. 유성5일장이 서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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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상냥이는 고양이예요. 개와 달라서 부른다고 가지 않아요. 이제 조금 아는 척하는데, 엄마가 자꾸 안으려고 하면 얘는 좋아하지 않아. 그냥 무시해줘!"

엄마가 우리 집으로 올 때 키우던 반려견 '두부'를 두고 온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다. 엄마도 알겠다고 했다. 우리 집에는 1년 전쯤, 아들아이가 길에서 구조한 상냥이(고양이, 암컷)가 있다.

상냥이는 엄마가 오던 날, 이틀 동안 밥을 먹지 않았다. 침대방에 있던 상냥이 화장실은 베란다로 옮겼다. 긴장하고 경계하는 눈빛과 행동이 뚜렷했다. 아마도 두부와 함께 살던 엄마에게 '개냄새'를 맡고 위협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는 두부한테 하던 습관대로 한 손을 내밀며 '쭛쭛쭛' 하며 부른다. 상냥이가 꼬리라도 살랑대며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상냥이는 부르는 소리에 반응이 없다. 냉정하다. 엄마가 서운하고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마다 나는 고양이와 개의 다른 점을 얘기한다. 길어야 5분, 같은 상황이 되면 그 말은 또다시 반복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말을 한다. 나도 같은 대답과 말을 한다. 기억력 감퇴는 치매의 전형적인 증상이기에 그러려니 한다. 몇 번이라도 느긋하게 웃으면서 대답하거나 들어야지 했던 마음에 때때로 피로감이 찾아온다.

옆에 사람이 없으면 혼자 밖에 나갈 수도 없다. "아직까지 정신 말짱하다"라는 말을 앞세우며 말짱하지 않음이 수시로 드러난다. 이따금씩 당신도 답답하니 "내일은 저기 둑 근처에서 쑥을 뜯어야겠어"라고 뜬금없이 말하기도 한다. "저기 둑 근처가 어디냐"고 물으면 그저 "밖에" 있단다. "지금은 찬바람 불고 쑥이 없어요"라고 하면 "있어, 새순 올라오는 거 따면 돼"라며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엄마의 하루 일과는 너무 단조롭다. 빨래나 설거지 등 눈에 보이는 일은 모두 당신이 하려고 한다. 엄마와 나, 두 사람 모두 일상생활의 자극이 필요하다. 보건소에 치매 관련해서 전화상담을 하고 직접 방문했다. 보건소는 유성 오일장이 서는 시장 안에 있다.

장이 설 때 북적이던 골목길은 조용하고 썰렁하다. '치매안심센터'의 한쪽 방에서는 엄마처럼 치매어르신들이 모여 '교육'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센터에서는 이 외에도 치매악화 지연을 위한 인지재활서비스, 어르신 실종 예방 인식표 발급 제공, 치매치료관리비지원 등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서 어떤 구비서류가 필요한지 프린트 한 장을 받아 왔다. 치매환자의 상병코드가 적힌 처방전이나 진단서, 가족관계 증명서 등 서류가 온전히 준비돼 접수하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매월 3만 원이 실비로 지원된다고 한다. 동생한테 연락해서 처방전을 부탁하고, 나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으려고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지난 기사]
아흔살 치매 엄마와의 동거, 나는 어른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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