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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중심의 명절 문화를 21세기에 걸맞게 직접 고치고 바꿔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것들의 명절'에서 그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시어머니는 차례 음식 장만을 없앴고 '포트럭(potluck,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서 나눠 먹는 식사)'으로 바꿔버리셨다.
 시어머니는 차례 음식 장만을 없앴고 "포트럭(potluck,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서 나눠 먹는 식사)"으로 바꿔버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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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상시 시가와의 관계, 며느리로서 정체성에 부대낌이 덜한 편이다. 시가와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시어머니가 나에게 '며느리'라는 이유로 기대하시는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편 집은 가족주의적이지 않다. 아들만 둘에 남편은 차남인데, 식구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간섭과 참견이 적은 편이다. 다른 집에서 중히 여기는 가족 행사라도 볼 일 있으면 스스럼없이 빠지는 등, 가족이니까 무조건 함께해야 한다는 문화가 없다. 시어머니도 며느리들에게 딱히 관심이 없으시다.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하지도, 나의 전화를 기대하지도 않으신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나는 결혼 8년 동안 명절에 '불량'할 수 있었다. 시가는 경북, 친정은 전북. 우리 집은 경기도. 어린아이를 데리고 명절에 대한민국을 횡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차례에 듬성듬성 참여했다. 이번 추석엔 친정, 다음 설엔 시가를 가거나 명절 2~3주 전에 미리 방문하는 식으로 대처해왔다. 이럴 수 있던 건 시어머니께서 깔아놓은 멍석 덕분이다.       

결혼하고 첫 명절, 음식준비를 각오했던 나는 조금 당황했었다. 

"우린 모여서 안 만들어, 각자 해간다." 

큰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맏며느리가 된 시어머니는 차례 음식 장만을 없앴고 '포트럭(potluck,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서 나눠 먹는 식사)'으로 바꿔버리셨다. 집마다 나물, 떡, 전, 고기를 나눠 맡아 사 오든지 만들어오든지(당연히 모두 사 온다) 해서 명절 당일 아침 큰 집에 집결한다.  
   
시어머니의 조용한 반란은 '명절 음식 준비 폐지'에 그치지 않고 몸소 차례를 넘겨버리는 데까지 이르셨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출근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번 추석에도 근처 요양병원에서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신다. 명절 때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요즘은 명절 당직을 자처하는 분위기라고도 하지만) 사람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신다.

하지만 명절에 가족여행이라도 가자고 하면 만사 제치고 반기시니 어머니도 호시탐탐 '명절 보이콧'을 꿈꾸시는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나는 시어머니의 일탈에 고부 관계를 넘어선 연대를 꿈꾸면서도 가까이 가기엔 어려워 머뭇거린다. 

차례는 남자들의 친목 도모, 여자는 일꾼
 
 대가족이 모인 공적인 자리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성씨 다른 조상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리고 그릇을 씻고 구석에 앉아 쭈그려 남은 밥을 먹는다는 건, 단 하루 이틀이라고 넘어가기엔 너무도 상징적이다. ?
 대가족이 모인 공적인 자리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성씨 다른 조상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리고 그릇을 씻고 구석에 앉아 쭈그려 남은 밥을 먹는다는 건, 단 하루 이틀이라고 넘어가기엔 너무도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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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음식 준비라는 중노동을 없앴다고 해서 남편의 집안이 매우 진보적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차례상 차리기는 여전히 남아있다. 시어머니도 차례만큼은 어쩌지 못하셨다. 네 시간 동안 진행되는 남자들의 친목 도모, 그들이 조상님께 절하고 큰 상에 모여 앉아 밥 먹는 동안 여자들이 좁은 부엌을 오고 가며 '서빙'을 하는 것이 내가 겪는 명절의 모습이다.      

지난 설날에도 남녀 다 함께 세배를 주고받고 정겨운 덕담을 나누는 시간은 없었다. 남자들끼리 모여 차례를 지냈다. 여자들은 일꾼일 따름이었다. 이왕 지내는 차례, 여자도 절하도록 권하는 게 요즘 추세라는데 여자들은 부엌 문턱을 넘지 못한다.

차례가 끝나면 거실의 넓고 긴 상에 남자들만 모인다. 반찬과 국과 밥을 날라주고 서둘러 작은 방에서 배 곪으며 젓가락 빠는 아이들 밥을 푸려니 '밥이 되다', '국이 싱겁다', '간장을 가져오라'는 호통이 날아온다. 아이들 상에 놓을 반찬까지 모조리 큰 상으로 가버린 것도 속상한데 이 와중에 반찬 투정이라니. 

크고 긴 상에 남자들이 넉넉히 자리 잡아 여유롭게 밥 먹는 동안 손녀들 열 명과 며느리 다섯은 작은 방에 차려진 좁은 4인용 밥상에 겹겹이 끼어 앉는다. 먹고 남은 반찬에 마지막으로 젓가락을 얹는 건 며느리들 몫. 형님들이 대접에 나물을 비벼 뚝딱 해치우는 동안 나는 꿋꿋이 소고기뭇국에 흰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면 며느리들은 남은 음식물을 치우고 설거지하고 티브이 보는 남자들에게 커피와 과일 후식을 내놓는다. 

꼬박꼬박 참여하는 명절은 아니지만 명절 때마다 벌어지는 이런 풍경을 겪으면 속이 쓰리다. 여자들을 '후손'으로 쳐주지도 않고 부엌데기로 밀어둘 거라면 왜 부르나 싶다. 남자들만 반찬 가지고 모여서 자기들끼리 상 차리고 먹고 설거지하고 헤어지면 될 터인데, 왜 그걸 못하나. 형제들과의 친목조차 왜 아내들에게 의존하나. 차례상에 모인 이 남자들은 아내들이 차례와 제사에서 손을 놓으면 어찌 대응할지 궁금하다. 직접 할까. 아니면 해체할까. 
   
단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이유 

그럼에도 남편은 '이런 시댁이 없다'며 나보고 복 받았다고, 감사하라며 으스대곤 했다. 왜 이런 처지에 내가 황송해야 할까. 일해준 나에게 남편이 고마워해야지.

나는 물론 시어머니에게 감사한다. 며느리 노릇을 덜 시켜주셔서, 나를 덜 부려먹어서 감사한 게 아니다. 맏며느리로 최전선에서 작은 것부터 바꾸려 하시기 때문에 같은 여성으로서 시어머니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시가로 가는 길은 불편하다. 나에게 주어지는 노동의 양이 적다 해도, 며느리 역할을 사사건건 강요받지 않는다고 해도, 명절과 차례에 담긴 모습 하나하나에 속이 편하지 않다.

이만큼에 감사하며 입 꾹 다물고, 내 처지는 그래도 낫다고 안도하면서 불편함을 외면해야 할까. 조선 시대로 '타임슬립' 해서 차례상을 차릴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차오르던 차, 책에서 이 문단을 발견했다.
 
"'명절 하루 일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속 좁게 구는 거야?'처럼 멍청한 소리도 없다. 그날 하루 우리는 364일 겪어온 차별과 착취를 어머님과 아버님과 서방님과 아가씨들 앞에서 19세기 버전으로 응축해 겪으며 벗어날 수 없는 가혹한 여성의 운명에 몸서리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노동의 강도가 아니다. 아무리 궁리해도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 노동의 합목적성이 비극의 원인이다. " - 박선영, '미래에서 온 며느리',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364일을 차별 없이 산다 해도 단 하루 혹은 이틀 동안 사회와 시대에 놓인 여성의 위치를 집약해서 확인한다. 남자가 집을 해왔다고?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니 해야 한다고?

시어머니는 현재 실질적 생계부양자이며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에게 의탁한다. 자리에 모인 며느리들 그 누구도 시가로부터 집을 받지 않았으며 '가장'인 여자도 있다. 행여 뭔가 받았다 해도 그 대가로 목적에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면 그건 노예가 아닌가.

대가족이 모인 공적인 자리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성씨 다른 조상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리고 그릇을 씻고 구석에 앉아 쭈그려 남은 밥을 먹는다는 건, 단 하루 이틀이라고 넘어가기엔 너무도 상징적이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균열은 시작됐다
 
 시어머니의 명절 보이콧은 나의 명절 보이콧으로 이어졌고, 다시 70세 친정엄마의 명절 보이콧으로 이어진다. 도미노는 시작되었다.?
 시어머니의 명절 보이콧은 나의 명절 보이콧으로 이어졌고, 다시 70세 친정엄마의 명절 보이콧으로 이어진다. 도미노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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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차례가 끝나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형님과 영화를 보러 갔다. 남편의 조상을 위해 수고한 우리에게도 보상은 필요하니까. 형님은 나에게 슬며시 말을 건다. 

"동서, 우리 친정은 제사, 차례 다 안 지내거든. 나중에 제사는 성당 위령미사로 대체하자. 그리고 명절에도 차례 지내지 말고 여행 가자고." 

고인을 기리는 방법에 제사만 있는 건 아니다. 명절에 꼭 모여 음식 먹고 차례 지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여성의 노동만을 착취한다면 같이 조상을 기리거나 가족끼리 즐기는 자리가 될 수 없다.

큰 형님이 "요즘은 차례를 한 번으로 줄이는 추세다"라고 넌지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어머니는 공공연하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차례와 제사를 없애시겠다고 말하고 다니신다. 그렇다. 다들 벼르고 있다.  

내 주변 여자들은 노회한 어른들 앞에서 봉기를 일으키지 못하지만, 명절의 의미조차 무색하게 하는 차례라는 짐을, 제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조용하고 은밀한 준비를 하고 있다. 말 없는 동조와 연대를 통해. 

이번 추석, 집안의 큰 며느리인 시어머니는 차례에 빠지신다. 평소 같으면 우리라도 어머님이 주시는 나물 반찬을 들고 큰 집으로 갔겠지만, 이번엔 우리도 빠지기로 했다. 시어머니께서 쉬시는 주말에 모여 식사만 하기로 했다. 잠은 따로 숙소를 잡아 우리 세 식구만 자기로 했다. 그리고 추석 전날 친정으로 이동한다.

갑작스러운 일정에 놀란 건 친정엄마다. 70세인 친정엄마는 둘째 며느리인데 아직도 큰 집에 차례를 지내러 가신다. 그런데 우리가 추석에 일찍 가겠다고 하자 이번엔 엄마도 차례에 빠지겠다고 하신다. 그동안 빠질 구실이 없으셨는데 사위까지 데리고 큰 집에 가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며 얼씨구나 하신다. 남동생과 아빠만 가기로 했다. 

시어머니의 명절 보이콧은 나의 명절 보이콧으로 이어졌고, 다시 70세 친정엄마의 명절 보이콧으로 이어졌다. 누군가 도미노를 툭 치기를 기다리는, 언제든 와르르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는 아슬아슬한 명절의 풍경. 이미 도미노는 시작되었다.

아직은 남편의 집안도, 또 나의 집안도 차례를 없애지 못했다. 내가 빠진 자리, 누군가 빠진 자리를 다른 며느리들이 '봉사' 하면서 채우겠지. 그러나 벽은 틈새와 균열에서부터 무너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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