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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얘기할 게 있는데..."
"뭔데? 얘기해."


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추석 연휴 동안 여행을 가기로 했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딸이 걱정하는 것은 우리 집에서 허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시댁에 추석날 여행가는 것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두 손자는 벌써부터 여행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다.

"할머니, 우리 여행 갈 거예요~"
"그래? 재미있게 잘 다녀와!"


사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이 되면 우리 부부가 아들네 네 식구를 데리고 큰댁으로 갔었다. 그러면 큰아버지댁 둘째큰아버지댁 셋째큰아버지댁, 그리고 막내인 우리 부부에다 조카들, 손주들이 모두 모이면 스물네 명이나 된다. 이렇게 많은 대식구가 한꺼번에 모여서 밥을 차려 먹고 치우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큰형님은 우리가 갈 때마다 자신의 어려움을 내비치셨다. 연세가 있으시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큰댁으로 모이는 우리가 편한 것도 아니었다. 시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하루 전에 모여서 음식을 만들었지만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큰댁에 모이면서부터는 각자 음식을 해 가지고 모였다.

큰댁에서 명절을 쇠고 우리 집에 오면 결혼한 딸네 식구를 맞이 해야 한다. 딸은 명절 하루 전날 시댁에 가서 음식을 만들고 명절날 아침을 먹고 점심이나 저녁에 우리 집에 온다. 그러니 큰댁에서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오면 새롭게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어느 날 큰형님께 말씀드렸다. "형님, 이제 각자 하면 안될까요? 형님도 힘드시고, 다른 형님들도 다 손주까지 보셨는데 ... ." 그런데 둘째 형님도 셋째 형님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큰형님은 큰시숙님의 허락이 떨어져야 된다며 말끝을 흐리셨다. 사실, 나도 걱정이 되었다. 막내 며느리인 처지에 너무 나선다고 좋지않게 생각하시면 어쩌나하고.

드디어, 다음 명절 전에 큰형님의 전화를 받았다. 성묘하는 날만 모여서 같이 가고 명절날은 각자 집에서 보내라고 큰시숙님이 허락을 하셨단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큰댁에 가지 않고 우리 집에서 아들네와 딸네만 데리고 명절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큰형님도 "자네 덕에 내가 좀 편해졌네" 하시며 좋아하셨다. 제사 때만 큰댁에 모이니까 가는 사람도 이만저만 편한 것이 아니다. 과연 누구를 위해 스물네 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모여 차려서 먹고 또 치우고 하느라고 애썼는지... .

딸이 말했다. 사위가 "여행 전날 우리 집에서 자고 출발하면 안될까?" 하고 물어보았다고... . 아이 둘을 데리고 여행짐을 챙기려면 집에서 출발하는 것도 힘이 드는데, 다른 곳에서 잠을 자고 출발하려면 두 배는 더 힘이 든다며 걱정했다.

나는 명절 되기 전에 아들네 한테 미리 얘기한다. 너희끼리 여행을 가도 좋고, 지방에 계시는 사돈댁에서 명절을 보내도 된다고, 같은 서울에 사는 우리 집에는 언제라도 시간을 내서 오면 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돈 댁엔 마음 먹어야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서로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좀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남편에게 말했다.

"이번 추석엔 '백년손님' 이라는 사위도 안오는데 우리도 여행이나 다녀올까요?"
" ... ... ."

역시 우리 부부 세대에서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인가?

태그:#고정관념 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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