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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정부의 종합 부동산대책을 하루 앞둔 12일 서울 송파구의 한 상가 부동산중개업소에 아파트 시세가 붙어 있다. 한편 이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은 3조4천억원 증가했고 이는 지난해 7월(4조8천억원)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이로써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91조1천억원으로 불어났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정부의 종합 부동산대책을 하루 앞둔 12일 서울 송파구의 한 상가 부동산중개업소에 아파트 시세가 붙어 있다. 한편 이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은 3조4천억원 증가했고 이는 지난해 7월(4조8천억원)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이로써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91조1천억원으로 불어났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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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고 동창생들을 만났다. 우리가 모여 앉아 부동산 이야기에 열 올리다니, 내 나이를 실감한다. 금수저는 못되어도 은수저쯤 되는, 부모님 도움으로 일찌감치 집을 마련한 친구가 말한다. 자고 일어났더니 집값이 쑥쑥 올라 있다고. 돈에 초연한 척 하더니만 부동산 사이트는 부지런히 드나드는 모양이다. 다른 친구가 핀잔을 준다.

"집값이 오르면 뭐가 좋아? 너네 집만 올랐겠어? 네가 이사가고 싶은 집도 같이 올라. 좋을 거 하나 없어."

은수저 친구 말했다.

"떨어지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가만히 있는데 자산이 늘었잖아. 이사야 당장 할 것도 아닌데 뭐. 그건 그때 수가 있겠지. 그나저나 너, 이사 간다며? 갈 곳은 정했어?" 

일부러 공격한 건 아니겠지만 질문받은 친구의 혈압이 올랐으니, 피는 안 튀었지만 혈투가 따로 없었다. 이사를 앞둔 친구는, 올해도 여지없이 전세금 인상을 요구한 집주인 때문에 다급해진 상황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새롭게 발표된 부동산 정책으로 흘러갔다. 

종부세 이야기는 슬쩍 스쳐 지나가기만 한다. 주택보유자의 1.1%만 낸다는 그것은 우리는 물론, 부모님들과도 무관하다. 우리끼리야 장난삼아 은수저 운운하지만, 물려받은 것 없이 한평생 성실하게 일해 재산을 모으고 그나마도 자식들에게 다 나눠준 친구의 부모님도 해당 사항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야기는 점점 달아오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묵언 수행. 가만있자니 의견을 좀 말해보라고 친구가 옆구리를 찌른다. 

"나? 의견 없어. 부동산 정책 같은 거, 아무것도 몰라." 

그렇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세울 만한 식견 같은 건 없지만, 세상 돌아가는 물정 정도는 알고 지내려 하는데도, 부동산 정책에는 관심을 둔 바가 없다. 어차피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먼 나라 대통령의 정신 건강 소식보다도 더 무심하게 되었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는다면 내 집 마련이 가능할지도 모르나, 그게 어디 진정한 '내 집'이겠는가. 월세를 전전해본 우리 부부는 매달 조여오는 고정비의 압박만은 피하기로 했다. 악착같이 전세자금을 모으고 대출을 선택지에서 제하고 나니, 내 집 마련의 꿈은 시나브로 희미해졌다. 세상 물정 모르는 걸까. 대출금을 갚기보다는 적금 붓는 것이 속 편하다. 

내 집 마련 못 하고 백 세 인생 살지도 모르겠다고 무심결에 말했다가, 엄마한테는 크게 역정을 듣기도 했다. 무일푼으로 상경한 아빠와 결혼해 내 나이 때 이미 내 집 장만에 성공한 엄마로서는, 내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에게 내 집 장만이란 놓아선 안 되는 꿈이고,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란 곧 희망 없는 청년이다. 

몇 해 전에는 남들 다 사는 집을 사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마와 몇 번씩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누군들 안 사고 싶나. 돈이 없어 못 사는 거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몸소 체험한 엄마는 종잣돈(전세금)이 있으니 일단 집부터 장만하라고 강조하고, 듣는 나로선 빚을 내야 하는 현실에 초점을 맞추니,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집이고 사회고 할 거 없이, 빚 권하는 세상이었다.
 
과연 나는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과연 나는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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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잡는 정책은 반갑지만... "그래서 뭐?" 

이번 정책은 좀 달라졌을까. 과연 나는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오랜만에 생긴 호기심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LTV(주택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내가 파악한 바로는 이렇다. 실제 거주보다 재산 증식이 목적일 다주택자와 임대 주택 사업자의 주택담보대출이 어려워진다. 종합부동산세율은 확대되어 주택 합산 시가가 30억 원인 3주택자의 경우, 554만 원에서 1271만 원으로 그 부담이 늘어난다고 한다.

정책의 실효성을 나로선 전망할 수 없지만, 투기 목적의 주택 수요를 잡고자 하기 위함이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누군가에겐 생존과 직결된 내 몸 뉘일 집이, 누군가에겐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의 대상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서글픈 생각이 든다. 먹을 것만큼은 장난 안 치고, 살 곳만큼은 투기가 없었으면 하니, 내일모레 마흔인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 보다. 

새 정책에 대한 반가움도 잠시, 이내 몰려드는 또 다른 생각. 거칠게 말하자면 이렇다. 

"그래서 뭐?" 

어리숙해 찾지 못한 것일까. 내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여전히 내 집 마련을 꿈꾸지 못한다. 그럼 그렇지, 하는 실망감. 검색하던 인터넷 창을 닫으려는데 한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9월 17일, 금태섭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출산주도성장'을 비롯해 최근 등장하는 정책들이 다소 이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리고 덧붙인 말은 해당 기사의 제목이 되었다. "정책 눈높이, 월 250만 원 커플에 맞춰야".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2/4분기 기준으로 월 소득 3분위 가족수 2.81명 가구 기준 수입이 251만원이다)

 
9월 17일, 금태섭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발표되는 정책들이 다소 이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9월 17일, 금태섭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발표되는 정책들이 다소 이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 프레시안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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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집이 아니라 살아갈 집이 필요합니다


지난 7월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청년 취업자 10명 중 8명은 첫 직장에서 200만 원 미만의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정말 온 나라가 출산율 저하와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청년층이 아닌가. 이들에게 보다 필요한 것은, 수십 억 원을 우습게 이야기하는 부동산 정책보다 제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선배 하나는 조금만 더 경제적 기반을 다진 후에 출산하려던 것이, 돌아보니 너무 늦어 버렸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부모 세대는 '모든 것을 갖춘 후'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앞뒤 잴 것 없이 출산할 것을 권하곤 하지만, 삶의 모든 것이 뒤흔들릴 우리로서는 좀처럼 쉽지 않은 결정이다. 

고생 한 번 해보지 않아서, 라고 말해도 할 수 없다. 부모 세대의 피땀 덕분에 우리가 조금은 더 편안하게 산 것을 감사히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빈부의 대물림을 똑똑히 목격한 세대이기도 하다. 뻔히 보이는데, 우리보다 더한 고생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무주택자인 나는 부동산을 통한 재산 증식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는다. 내 집 마련의 꿈 운운했지만, 안정적인 삶만 영위할 수 있다면 내 집이 아니어도 괜찮다. 다만 빚내지 않고 소박하게 살려고 하는 내 가치관이, 무섭게 상승하는 집값에 덜미 잡혀 호구 정신으로 전락하지 않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월 소득 250만 원인 커플에게 정책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금 의원의 말은 고무적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은행과 소유를 절반씩 나눈 반쪽짜리 집을 사는 것일까. 대출금에 허리가 휘어져도 이들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나로선 오직 한 가지만을 바랄 뿐이다. 사지(buy) 않아도 좋으니 살(live) 수 있는 집. 지은 죄도 없이 쫓겨날까 두려워할 필요 없는 집. 삼포 세대도 모자라 오포 세대, 수저계급론까지 나오는 청년 세대에 희망이 없다고 하지만, 부동산 불패 신화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에겐 살(live) 집이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에 문외한인 나도 귀가 솔깃해지는, 나의 오늘을 바뀌게 할 수 있는 정책을 기대해 본다. 

태그:#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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