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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중심의 명절 문화를 21세기에 걸맞게 직접 고치고 바꿔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것들의 명절'에서 그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평일 오전 카페에는 커피를 내리는 향기와 재즈의 선율만이 흐를 것이라는 환상이 그곳으로 이끌었다.
 평일 오전 카페에는 커피를 내리는 향기와 재즈의 선율만이 흐를 것이라는 환상이 그곳으로 이끌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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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카페에 갔다. 조용히 생각하며 써야 할 글이 있었다. 평일 오전 카페에는 커피를 내리는 향기와 재즈의 선율만이 흐를 것이라는 환상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대로변 건물 1층에 들어선 예쁜 카페다. 주변에는 아동 교육 기관들이 있다. 마침 아이들 등원 시간이었나 보다. 마중을 마친 엄마들이 삼삼오오 카페 테이블을 여럿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일에 집중했지만, 귀가 열려 있었다는 게 함정이었다. 이 팀 저 팀의 대화가 두 귀로 흘러들어오는 게 아닌가. 특별히 발성 좋은 사람들이 있어 잘 들리기도 했지만.

여러 테이블에서 이뤄진 그들의 대화는 비슷한 패턴으로 흘렀다. 일단 아이들 얘기로 시작했다. 엄마들은 서로의 아이들을 칭찬했고 자기 집 아이가 칭찬받을 때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남편 얘기로 넘어갔다. 자랑인가 싶었는데, 흉이다. 이어 "자기네 집은 별거 아냐, 우리 시댁은 말이야"라며 주제가 '시월드'로 넘어갔다. 자연스럽게 추석 얘기로 이어졌다.

"자기넨 언제 내려가?"
"당일에 올라올 수 있겠어?"


시댁이 먼 곳에 있어 최소 1박을 해야 한다는 어떤 이의 대답에 다른 엄마들이 함께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그러곤 명절 준비 걱정과 시댁 풍경 얘기가 길게 이어졌다. 주로 시어머니나 손위 동서에 관한 얘기겠지 했다. "글쎄, 우리 시아버지는..."이라는 얘기가 들린 순간 한쪽 귀가 확 커졌다. 몸도 그쪽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 나는 시아버지다. 지난해 말에 아들이 결혼했다. 아직은 시아버지 혹은 "아버님"이라고 불리는 게 낯선 초보 시아버지다. 사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시아버지로 신분이 바뀌었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 시어머니가 된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색해했다.

그렇지만 이미 28년 전 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부부는 언젠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될 운명이었다. 잊고 있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아들이 사랑한 여인을 우리도 사랑해주자고.

직장 동료인 아이들은 회사와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다. 둘 다 새벽에 출근하고 당직을 자주 선다. 우리 부부는 홀가분한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을 갖고 아들 부부의 새 출발을 응원했다.

가족 단톡에 지워지지 않는 숫자 '1'

급한 일은 전화로, 필요한 대화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아래 단톡방)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채팅방은 두 개다. 아들 대학 때부터 이용하던 세 명의 대화방과 결혼식 후 새로 만든 네 명의 대화방.

사실 결혼식 준비할 때 며느리 될 아이를 "단톡방에 초대할까?"라고 묻는 아들의 말에 아내와 나 모두 손사래를 친 바 있다. 문자만의 커뮤니케이션이 몰고올 수 있는 오해를 알기 때문이었다. 좀 더 서로를 알게 된 다음이라면 모를까. 아들은 섭섭했는지 모르지만, 며느리 될 아이는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결혼식 후 자연스럽게 며느리가 된 아이와의 채팅방을 새로 만들었다. 의례적인 인사말과 환영의 말이 오가곤 다시 조용해졌다. 원가족 간의 암묵적인 계약이 있었다. 형식적인 안부나 카톡에 돌아다니는 좋은 글들, '양파의 기막힌 효능' 같은 그런 메시지는 올리지 말자고.

그런데 내가 그 계약을 깨 버렸다. <오마이뉴스>에서 내 기사가 처음으로 채택된 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단톡방에 기사를 공유해버렸다. "아가, 이 글 좀 보렴. 네 시아버지가 글도 쓴단다"라는 은유를 담아.
 
 그러던 어느 날, 채팅창에서 숫자 '1'이 지워지지 않는 게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채팅창에서 숫자 "1"이 지워지지 않는 게 아닌가.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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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그에 호응하듯 "아버님, 멋져요"라며 캐릭터 스티커도 마구 날려 주었다. 고무된 나는 기사가 채택될 때마다 단톡방에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채팅창에서 숫자 '1'이 지워지지 않는 게 아닌가. 단 한 명이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올린 지 여러 시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는 그 숫자를 보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밤에서야 며느리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정제된 표현의 문장으로. 캐릭터 스티커도 없이.

"아버님 잘 읽었어요.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겠어요."

아내가 "당신 글 재미없으니까 그만 좀 올려"라며 옆구리를 꾹 찔렀다. 그리고는 내게 충고했다. 알림 창에 뜬 시아버지의 메시지를 보고 며느리가 온종일 고민했을 거라고. 그만큼 어려운 관계인 거 모르냐고.

시아버지의 첫 명절 신고식

사실 나도 며느리가 서먹해서,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던 거다. 아직 그 아이를 잘 모르기도 하고. 그런데 "난 이런 시애비다"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꼴이나 다름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네 남편은 이렇게 자랐단다, 너희 집은 어땠니?"라고 차근차근 물어보는 거였는데. 그렇다고 직접 물어본다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차차, 천천히,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야 했는데.

아들이 결혼한 지 한 달여 후. 설이 다가왔다. 아들 부부와의 첫 명절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됐다. 집으로 불러 밥을 먹일까 했는데 아내가 극구 반대했다. 아내가 입시학원을 운영해서 연휴 내내 근무해야 하는 것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새 식구와 함께하는 명절이 아직은 낯선 게 큰 이유였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부터 명절을 간소하게 보내오기도 했다.

그래도 첫 명절이니 가까운 어른들을 찾아뵙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모였다. 아들 기준으로 고모네에서 '아점(아침 겸 점심)'을, 큰집에서 다과를, 외가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모두 차로 얼마 걸리지 않은 곳들이라 하루 안에 이동할 수 있었다.

긴장한 며느리를 풀어주려는지 어른들이 옛이야기를 소환했다. 누나가 고3 때 나를 업어 키웠다는 이야기,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집온 형수가 편찮으셨던 어머니 대신 학부모 모임에 갔던 이야기 등 나도 가물가물한 추억이었는데. 외가에서는 아들의 어릴 적 사진이 대방출 돼 폭소 잔치가 벌어졌다. 친척집 순례를 마치고 아들 부부를 데려다주는데, 오전보다는 관계가 스스럼없어졌음을 느꼈다.
 
 그래도 밥 한 끼 정도 먹을 시간은 있겠지. 누구네 집에서 먹든 상관없다. 정 힘들면 밖에서 먹을 계획이다.
 그래도 밥 한 끼 정도 먹을 시간은 있겠지. 누구네 집에서 먹든 상관없다. 정 힘들면 밖에서 먹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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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은 아들 부부와 맞는 두 번째 명절이다. 이번에도 저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입시학원에서 일하는 아내는 수능 특강으로, 아들 부부 역시 연휴 당직 근무로 바쁠 것이다.

그래도 밥 한 끼 정도 먹을 시간은 있겠지. 누구네 집에서 먹든 상관없다. 정 힘들면 밖에서 먹을 계획이다. 물론 처가 방문 일정 먼저 챙기라고 아들에게 따로 일러줬다. 보름달처럼 웃는 얼굴 보며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게 진정한 명절이라 전하며.

그렇게 난 시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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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영화, 에니메이션 등 콘텐츠 회사와 투자회사에서 프로젝트 기획과 프로젝트 펀딩을 담당했다. 오피니언 뉴스에 북에세이와 문화 컬럼을 게재하고 있으며 전문 문예지에도 글을 싣고 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