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딩 코미디는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잘 자리 잡혀 있는 편이다. 특히 사회적 메시지를 개그 코드에 담아 전달하는 '뼈가 있는 유머'는 어느 순간 한국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진지한 주제를 좀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스탠딩 코미디라는 형식을 고를 법도 한데, 한국의 개그 프로그램들은 긴 호흡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보다는 즉각적이고 말초적인 웃음을 도출해내는 말장난이나 몸개그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미국의 배우이자 코미디언, 그리고 ABC 방송국에서 작가를 맡고 있는 앨리 웡(Ali Wong)이 넷플릭스에서 <앨리 웡 : 베이비 코브라(Baby Cobra)>와 <앨리 웡 : 성역은 없다(Hard Knock Wife)> 두 편의 스탠딩 코미디를 진행했다.
 
인종과 젠더가 교차하는 자리, 앨리 웡의 코미디가 위치하는 곳
 
 넷플릭스 <앨리 웡 : 베이비 코브라> 중 일부.

넷플릭스 <앨리 웡 : 베이비 코브라> 중 일부. ⓒ Netflix

  
앨리 웡은 동양인 남성과 결혼한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최근에는 임신도 했다. 두 편의 스탠딩 코미디는 그녀가 만삭인 상태에서 진행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이 임신을 하면 겪는 감정 변화나 아시아계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뼈 있는 농담을 이끌어간다.
 
특히 앨리 웡의 강점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가진 엄마는 왠지 가정에만 충실해야 할 것 같고 성적인 욕구를 가지면 안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가차없이 깨트린다. "사람들은 왜 동양계 미국인을 너무 낮게 평가해요"라는 말 다음에 동양계 미국인을 향한 문화적 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것 같더니, "동양 남자들이 제일 섹시하고 몸도 매끄럽다"라는 말로 폭소를 자아낸다.
 
이런 식의 인종에 대한 농담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특정 인종은 이렇다'고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이 당사자라면?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한국인인 내가 '한국 사람들 너무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미국인이 한국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뉘앙스가 다르다. 직접 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만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과 베트남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앨리 웡은 이런 정체성과 경험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종에 대한 농담을 그녀는 자주 하는데, 그중 정말 인상적인 부분은 주차에 대한 편견이다.
 
"주차하는 동안 아시아 여성의 차 밖에 모여든 이 사람들은 (주차를 하는 데) 도움을 줘서 고맙긴 한데 인종차별주의자예요. '날 정확하게 추측했잖아요. 당신 없었으면 주차 못 했을 거 맞아요!'"
 
 넷플릭스 <앨리 웡 : 베이비 코브라> 중 일부.

넷플릭스 <앨리 웡 : 베이비 코브라> 중 일부. ⓒ Netflix


아시아인은 운전을 잘 못한다는 편견에 대해 앨리 웡은 '자신의 주차능력이 미숙함을 두고 도움을 준건 고맙지만 그 편견이 맞아 떨어졌다는 게 싫다'라고 도리어 받아친 셈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편견을 대항적인 유머의 소재로 사용한다.
 
자신이 가정의 주도권을 잡을 목적으로 매일 남편에게 도시락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하는 대목에서 앨리 웡은 '남편이 내가 없으면 생활하기 힘들도록 만들 생각이다'라는 말을 한다. 일은 남편이 하고 더 이상 일하기 싫다는 부분에서는 가사노동 문제를 꼬집는 셈이다. 한국만 생각해봐도 출산 뒤에 여성들은 집에서 육아를 하는데 남편이 돈을 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은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받는 경우가 많지 않나.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던 앨리 웡도 엄밀히 말하면 돌봄노동을 하니까 말이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자기계발의 논리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항상 근면성실 해야 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고위직의 자리에 올라서야 한다는 소위 '노오력'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드러눕고 싶다(lie down)'고 반기를 든다. 이는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의 저서 <린 인>(Lean in)의 반대식 영어표현이다. 샌드버그의 책은 실제로 여성의 성공에 대한 표본으로, 페미니즘의 지향점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앨리 웡은 이를 비판하고자 한다.
 
이에 앨리 웡이 한 말은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있어 최악의 사건이에요(Feminism is the worst thing that ever happened to women)"이다. 페미니즘이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요 근래에 도리어 여성인권의 문제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실 성공한 여성 기업가를 가리키며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페미니즘이라고 칭하는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샌드버그 같은 자리에 오르면 차별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는 관점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유리천장이 그렇게 해서 해소될 것이라는 관점도, 여성이 처한 문제가 유리천장만 부수면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도 너무나 순진하다. 앨리 웡의 말마따나 늘 진취적이고 늘 도전해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성에게 한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하고 있으니까.
 
'엄마'로서의 경험에 대해 말하기
 
 넷플릭스 <앨리 웡 : 성역은 없다> 스틸사진.

넷플릭스 <앨리 웡 : 성역은 없다> 스틸사진. ⓒ Netflix


<성역은 없다>는 <베이비 코브라> 이후 2년 뒤에 런칭된 방송이다. 앨리 웡이 둘째 임신을 했는데, 그 2년 간 첫째 딸을 키웠던 경험과 감정에 대해 풀어놓는 코미디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제가 다시 스탠드업 코미디로 복귀했을 때 다른 코미디언들이 믿을 수 없어 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세상에 엘리. 여기서 뭐하는거야? 애 키워야 하지 않아?' 전 대답했죠. '잘 들어. 난 내 딸이 태어났을 때부터 늘 걔랑 함께 있었어.'"
 
"성차별적인 질문도 받아요. '당신이 여기 있으면 애는 누가 보나요?' 내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엄마'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은 만국 공통인가보다. 아이는 누가 보냐고? 내가 보지! 애 키울 시간에 뭐하는 거냐고? 지금까지 애 키우고 왔는데? 육아가 힘들다고 말하는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도 앨리 웡은 주저하지 않는다. "일이 너무 많아서 엄마가 되는 건 별로다"라고.
 
'엄마됨'에 대한 앨리 웡의 유머가 이 방송을 보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지나가는 농담이 되지 않길 바란다. <엄마됨을 후회함>을 쓴 오나 도니스는 엄마가 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고 때로는 왜 엄마가 되었나 후회할 수도 있다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가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앨리 웡의 코미디 또한 그런 연장선에 있다고 봐도 좋다. 그 감정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이 해방되기란 힘들 테니까 말이다.
 
엄마가 되기까지 여성으로서의 경험, 그리고 엄마가 되고 나서의 경험을 코미디로 이렇게 맛깔나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스탠딩 코미디라는 형식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앨리 웡의 무대는 정말 탁월하다.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가 많은 요즘, <베이비 코브라>와 <성역은 없다>는 모범적인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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