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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모처럼 2학년 수업을 전담했다.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매 수업 시간마다 수행평가를 했다. 아이들의 살아 있는 감성 이끌어 내고, 사물을 보는 눈을 키워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위한다고 수행평가를 했지만 수업이 진행될수록 내가 설레고 즐거웠다. 아이들의 감성은 살아 있었고, 사물을 대하는 눈은 나보다 깊고 예리하였다. 수업 시간에 단 한 명의 조는 학생도 없고,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이 수업을 '표현중심수업'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에 대한 몇 편의 글도 썼다. 아이들의 삶과 생각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도록 하여 자신의 삶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동시에 이런 활동은 창의력과 통합력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표현중심수업은 수능 시험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수능 시험을 위해서도 더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대상에 대해 스스로 더 깊게 생각하는 사고력을 길러 주고 이 사고력은 창의력과 통합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표현중심수업은 설렘과 감탄의 연속으로 행복했다. 학년 말, 곁에서 나의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시던 선생님이 전교조에서 주최하는 '제1회 참교육 실천 사례 수업 부분' 대회에 응모해 보라고 하셨다.

우리 아이들을 그저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1년 동안 수업했던 지도안과 학생들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냈다. 그런데 뜻밖에 가장 큰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뒤 오랫동안 나는 입시의 굴레에 매여 표현중심수업을 잊고 있었다.

올해 20년 만에 2학년 수업을 맡았다. 그때 즐겁고 설렜던 생각이 났다. 하지만 정작 수업 시간에 아이들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도록 기다려 주지 못하고 내가 앞서 말을 하고 있다. 수업은 재미가 없었다. 이제 나도 나이가 어지간히 들었나?

여름방학 동안 한 학기를 되돌아보면서 나부터 수업 시간이 즐겁고 설레고 싶었다. 교육은 기다림이라고 되새겼다. 백석의 '국수' 수업 시간에 다른 것은 뒤로 미루고, 먼저 자신이 좋아 하는 음식을 소재로 하여 시 한 편을 써보도록 하였다. 그런데 한 아이도 졸지 않고, 미적거림 없이 정말 열심히 썼다 지웠다를 되풀이한다.

아이들이 쓴 시를 한편, 한편 읽으면서 지난날의 즐거움과 설렘으로 빠져들어 간다.
  
초밥

가깝지만 먼 나라의 역사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음식.
조용하고 정적인 그 나라를 담은 듯
소박한 아름다움이 매력인 음식.

만드는 과정이 그리 복잡하지도 않다.
흰 살결 드러내고 춥다고 아우성치며
저들끼리 꼬옥 뭉쳐있는 쌀알들 위에
색색 빛깔 생선살을 포옥 덮어주면
비로소 기다리던 초밥 하나.

멀고도 힘들었던 과거의 용서도 발가벗겨져
춥다고 아우성치고 있기에 아름다운 화해를
포옥 덮어주고 싶다.
비로소 기다리던 평화의 완성. [학생 글]


초밥에서 일본의 용서 그리고 화해를! 아이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요즘 아이들은 역사의식이 부족하다고 많이들 나무란다. 과연 이 아이만 그렇지 않나? 아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생각을 공유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우리 역사 문제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한다. 또한 기성세대와 달리 생각이나 지식이 머릿속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진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 주위 친구들을 배려하고 감싸는 모습을 때때로 보면서 참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놀랍다. 어리다고 생각까지 어린 것은 아니다.

할머니의 된장찌개

차로 두 시간, 할머니의 집으로 가면 항상 있는 된장찌개
손주들 좋아한다고 더운데도 항상 끓여 주시는 된장찌개
호박 뎅강뎅강 양파 싹둑싹둑
두부가 네모 반 듯 소고기가 더벅더벅 썰려져 떠다니는 된장찌개
귀찮아도 손주들 맛없을세라 꼭 육수를 내셔서 가끔 멸치가 건져지는 된장찌개

나는 된장찌개가 좋다.
아니, 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지는 맛을 가진
먹으면 입안이 아닌 마음이 따듯해지는 맛을 가진
할머니의 된장찌개가 좋다.

나는 그냥
손주들 입맛에는 맞을지, 몸보신 좀 할 수 있을지, 너무 짜지는 않은지
항상 걱정하시면 만드시는
할머니의 음식이 좋다. [학생 글]


할머니가 된장찌개를 만드는 과정을 감각적인 언어로 생생하게 표현했다. 할머니의 손주에 대한 사랑, 아이가 지닌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작품에 묻어나 있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사랑을 베풀 줄 안다. 이 아이로 우리 사회는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수업 시간에 그렇게 눈에 띄지 않은 아이인데 다시 보게 되었다.

이 뿐이 아니다. 여고생 하루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도 있다.

라면 한 그릇

까마득한 어둠 위에
또 한 번 어둠이 칠해질 때
창문 넘어 귀뚜라미 고요히 울어댈 때
탈출의 종소리가 마침내 울리면
무거운 하루를 짊어지고
내리막을 터벅터벅 지나온다.

촉촉한 달빛보다 더 눈부신
우리의 방앗간이 거기에 있다.
가지런히 진열된 그것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좁은 방앗간 안에서
어깨를 맞닿으며
사이좋던 젓가락 쌍들을
헤어지게 하고
뜨겁고 따가운 그것을
한껏 들이켜 본다.

줄어드는 면발만큼
쌓인 시름도 바닥을 드러낸다.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도
더 없이, 덧없이
따뜻해진다. [학생 글]


자율학습을 마치고 기숙사로 가는 길에 마주하는 '라면 한 그릇'. 하루의 고단함을 라면 한 그릇으로 녹여내고 있다. 라면 국물을 마시는 장면과 감정을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 웃음이 절로 나온다. 라면 한 그릇을 비우며 느끼는 마음을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도 / 더 없이, 덧없이 /따뜻해진다'로 기막히게 표현했다. 학생의 섬세한 감성과 더불어 스스로 다스려야만 하는 절제도 엿볼 수 있어 마음 한 구석이 쓰린다.

나보다 훨씬 더 속이 꽉 찬 아이도 있다.

호박 같은 사람이 될래요

호박 같은 사람이 될래요.
푸르딩딩하고 싱그러운 빛깔의 애호박
울퉁불퉁하고 화사한 주황색 늙은호박
땅콩처럼 허리가 잘록한 땅콩호박
호박 같은 사람이 될래요.

아직 미성숙하고 푸릇푸릇 아기 같아서
애호박인 걸까.
이제는 나이도 먹을 만큼 누렇게 익어가서
늙은 호박인 걸까.
땅콩이 되고 싶었는데 호박으로 태어나
이름이라도 개명해서 땅콩호박인걸까.

어리면 어때요,
늙으면 어떻고,
땅콩으로 태어나지 못하면 어떤가요.

나이와 겉모습은 상관없이, 모두 다
하나같이 따뜻하고 달콤한 속살을 가지고 있는 걸요.
호박 같은 사람이 될래요.

비바람 견뎌내고, 많은 사랑 많은 햇살 받아
달큰하게 속이 꽉 채워진
호박 같은 사람이 될래요.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꿈을 가지고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
이 세상 호박들에게
달달하고 구수하게
속을 채워 줄 수 있는 그런,
호박 같은 사람이 될래요. [학생 글]


'애호박', '늙은호박', '땅콩호박'의 다양한 호박 종류를 제시하고 겉모습은 개의치 않고 달큼함으로 속을 꽉 채운 호박의 속성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 자신 또한 이 호박과 같이 속을 꽉 채우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달큼함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학생의 시를 읽으며 사물의 속성을 볼 수 있는 깊은 사고력, 그것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력,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의 됨됨이가 작품에 잘 녹아 있어 칭찬하여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다시 생각한다. 교육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하여야 한다. 그 행복의 출발은 수업이다. 수업이 바뀌어야 한다. 이 수업을 하면 수능 시험에서도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고, 국가 경쟁력도 기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수업이 바뀌어야 아이가 살고 국가가 산다.
 

태그:#표현중심수업,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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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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