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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그녀는 내게 심란한 인물이었다. 물론 2016년의 힐러리는 동성결혼을 지지했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했으며, 이라크 파병을 동의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전에는 동성결혼에 반대했고 성소수자에게 대해 그다지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며 상원의원으로서 이라크 전쟁 동의에 표를 던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실 이는 성소수자의 권리에 긍정적이고 정치적으로 비교적 진보적이며, 경선 최대 라이벌이었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이라크 파병을 빌미로 힐러리를 압박했던 것과 결코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난 미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초유의 후보에 대적할 유일한 카드였던 점은 변함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늘상 하는 말이지만 나는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의제'나 보이는 '행보'가 아니라 '인물' 자체를 지지하다보면 자칫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실수를 하는 순간에도 문제점을 지적하기는커녕 그들의 선택을 비약과 가정을 더해 변명할 수 있다.

특히나 소수자의 권리처럼 논쟁적인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힐러리 클린턴의 사례에서 보듯 그들은 언제든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이 되면 소수자들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할 수 있지만, 이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철회도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 일은 이미 벌어졌다.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에 등장한 '성소수자 혐오'
 
이석태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10일 오전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청문회 나온 이석태 헌법재판관 후보자 이석태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10일 오전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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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열렸던 이석태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그야말로 '성소수자 혐오의 난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국민의 인권과 존엄을 평등하게 수호하고 존중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이럴 수 있는지 믿기지 않을 수준이었다.

이완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 후보자를 향해 "동성애 합법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동성애 합법화라니. 그렇다면 사회의 구성원으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은 모두 법을 벗어난 '불법 인간'이라는 뜻일까? 심지어 자유한국당은 청문회 도중 이석태 후보자가 '동성애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편향된 성의식을 가졌다'고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동성 결혼 등 성소수자 인권을 향한 이 후보자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평등을 지향했고,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이었다. 이것이 '편향'이라면 자유한국당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게 정도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가장 문제적인 발언은 의외의 의원에게서 나왔다. 주인공은 바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언론의 보도를 인용하자면 그가 던진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본인이 동성애자인 것은 아니죠?", "동성애 그 자체를 좋다고 생각하시거나, 주변에 (동성애를) 하고 있으신 분이 있는 것은 아니죠?", "군형법상 조항 같은 해석도, 동성애 자체를 허용하자는 건 아니죠?".

도무지 의도를 가늠할 수가 없는 질문이다. 표창원 의원이 여당 소속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가 이석태 후보자를 흠집 내기 위해 저런 말을 했을 것 같지도 않다.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는 답은 표 의원이 야당이 트집을 잡을만한 사안에 대해 먼저 질문을 던지고 원하는 답을 얻어 사전에 반발을 차단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비약을 감수하고 우호적으로 해석해보자면 '당신들이 불안해하거나 트집 잡을 것들이 없음을 먼저 확인해주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 셈이다. 실제 표 의원은 청문회 발언으로 논란이 커지자, 지난 12일 공개된 <스브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야당 의원들이) 지나치게 혐오적이고 차별적인 질의와 공격들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이석태 후보자는) 법률가로서의 소신 있는 제 역할을 한 것이다'라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명했다.

또 "(후보자를) 검증하고 부각시키기 위한 차원이었기 때문에 성소수자 본인들께 마치 본인이 질문 당하시는 것처럼 느끼실 수 있는 부분은 제가 사과를 드리고 싶다"며 성소수자와 공존하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부연했다. 그렇지만 표 의원이 이석태 후보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질문을 던졌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 대정부질문 나선 표창원 의원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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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의원의 질문이 내포한 문제점

생각해보자, 표창원 의원이 질문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가. 이석태 후보자가 동성애자인지 여부? 주변에 동성애자가 있는지 여부? 이 후보자의 동성애에 대한 생각? 동성애가 허용되어도(사실 이 후보자의 말처럼 동성애는 애초에 허용/불허용의 대상도 아니기에 질문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괜찮다는 입장을 가졌는지 여부?

그런데 만일 후보자가 동성애자이며, 주변에 동성애자인 사람이 있고, 그들의 존재를 나쁘게 바라보지 않는데다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그것이 문제이며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으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해버릴 것인가?

표창원 의원이 던진 질문을 뜯어보다 보면, 동성애자를 공직에서 배제하거나 혹은 성소수자에게 우호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은 차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후보자 개인의 성적 지향과 주변에 개인적으로 아는 동성애자가 있는지 여부가 대체 헌법재판관의 자격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누군가 이를 이유로 후보자를 공격한다면, 그런 비상식적인 일을 막는 것이 국회의원이 해야할 일 아닌가.

또한 이 후보자가 '동성애는 좋지 않다, 허용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면 이는 거꾸로 심각한 결격 사유가 된다(아쉽게도 이석태 후보자는 표 의원이 군형법 해석을 거론하며 '동성애를 허용하자는 건 아니죠?'라고 묻자, '그렇습니다'라는 부족한 답변을 남겼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의 존엄과 평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헌법에 기반해 판결을 내려야 할 사람이 소수자라는 이유로 특정 집단의 국민들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성소수자 인권보호'라는 가치를 지키고 싶다면

결론적으로 표창원 의원의 발언은 익숙한 혐오의 답습에 불과했다. 그의 질문이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인 보수 개신교계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자 한 보수 야당이 평소에 하던 말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점은 한 때 표 의원이 성적소수자의 권리를 적극 옹호하고 평등한 대우를 주장했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2012년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기념 영상에 출연한 그는 어떤 말을 했었나. "지금은 우리 사회가 성적 소수자들을 차별의 시선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동성애자와 성적소수자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마찬가지로 2016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연합뉴스와 했던 인터뷰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보호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저의 가치이다"라고 하지 않았나. 한 마디로 표창원 의원이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 보인 태도는 자가당착이다.
 
2012년 친구사이 인터뷰에 출연한 표창원 의원. 그는 "지금은 우리 사회가 성적 소수자들을 차별의 시선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동성애자와 성적소수자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표 의원의 과거 발언과 현재 발언을 비교한 스브스뉴스 영상 갈무리.
 2012년 친구사이 인터뷰에 출연한 표창원 의원. 그는 "지금은 우리 사회가 성적 소수자들을 차별의 시선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동성애자와 성적소수자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표 의원의 과거 발언과 현재 발언을 비교한 스브스뉴스 영상 갈무리.
ⓒ 스브스뉴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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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의원이 여전히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한다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했나. 아마 바로 다음날 이은애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같은 당 금태섭 의원이 했던 것들이 아닐까. 금태섭 의원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이 우리 헌법에 맞다고 생각하는지,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 받는다고 보는지, 퀴어문화축제가 혐오 집단의 방해로 개최에 난항을 겪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헌법재판관 후보자들에게 질문했다.

이는 앞서 말한 헌법의 가치를 후보자들이 제대로 이해하며 이를 수호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질문들이다. 여기에 금 의원은 자신의 SNS에 '성소수자도 우리나라에서 헌법재판관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네'라는 답을 얻어낸 것을 알리며 이렇게 쓰기도 했다.

"오늘 인사청문회를 한 이은애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면, 앞으로 인청에서 성소수자 문제로 임명 자격을 문제삼을 경우 '현직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견해에 따를 때 대한민국에서 성소수자도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나는 단순히 금태섭 의원이 표창원 의원보다 나은 정치인이라는 식의 비교를 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금태섭 의원이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대변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회의원으로서 매우 옳고 필요한 질문을 던졌으며 적절한 답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계속해서 이 소신을 유지하고 지킬지는 지켜봐야 한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표창원 의원이 예전처럼 성소수자의 인권이 거부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금태섭 의원을 행보를 보고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태그:#성소수자, #혐오, #인권, #헌법재판관, #표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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