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하는 정운찬 KBO 총재 정운찬 KBO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야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기자회견 하는 정운찬 KBO 총재 정운찬 KBO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야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난 11일 이사회에서 신규 외국인선수의 몸값을 최대 100만 달러로 제한하는 규정에 합의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외국인 선수 제도의 과도한 몸값 거품 현상을 개선하고 KBO 이적시장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의도다.

다만 기존 구단과 재계약하거나 해외 리그로 진출했지만 KBO 복귀시 보류권을 가진 친정팀으로 돌아온 외국인 선수는 이번 연봉 상한선에서 제외된다. 방출 뒤 재입단하는 경우엔 신규 선수로 간주되어 연봉상한제가 적용된다. 시즌 도중 교체 선수로 입단할 경우 계약 총액은 잔여 개월 수에 따라 산정한다.

외국인 선수 계약 규정 위반 시엔 해당 계약을 무효로 하고, 선수에겐 참가 활동정지 1년, 구단에는 신인 지명권 박탈과 제재금 10억 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또한 기존의 장기계약이 불가능했던 기존 외국인 선수제도와 달리 앞으로는 소속팀에서 2년차 이상 뛰는 선수들에게는 다년계약도 가능하도록 합의했다.

KBO는 최근 구단간 과열 경쟁으로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이 지나치게 폭등하고 있는 현상에 제동을 걸기 위하여 규약 개정을 추진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문제는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나온다.

4년 전 폐지한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제, 왜 지금 다시 도입하나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KBO리그는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할 당시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은 12만 달러에서 출발했다. 몇 차례의 변동을 거쳐 2014년 일시적으로 연봉상한제가 폐지될 당시의 기준은 30만 달러였다. 4년 전에도 연봉상한제가 폐지된 가장 큰 이유는 '현실적으로 아무도 지키지 않는 유명무실한 기준'이라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야구의 위상이 높아지며 자연스럽게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눈높이도 갈수록 상승했다. 초창기에는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2류급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메이저리그에서도 40인 로스터 안에 들거나, 심지어 주전급으로 활약한 경력이 있는 선수들까지 심심찮게 등장할 만큼 외국인 선수들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졌다.

그 정도로 이름이 꽤 알려진 외국인 선수들이 불과 연봉 30만 달러만을 받고 한국으로 온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때문에 실제로는 연봉 100만 달러 이상의 고액을 받으면서 표면적인 계약서에만 30만 달러로 기재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KBO는 각 구단들의 계약 실태를 철저하게 관리 감독할 수 없어 보였고,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번에도 결국 음성적인 '뒷돈 논란'만 다시 불러일으키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야구팬들이 불만을 가지는 부분은 더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들을 내버려두고 굳이 왜 외국인 선수 연봉제를 개혁의 우선 타깃으로 삼았는가 하는 부분이다.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 정상화 역시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은 맞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외인보다 오히려 국내 선수들의 몸값 '거품'이 더 심하다는 게 보편적인 인식이다.

몇 년째 극단적인 타고투저 현상과 144게임 체제의 확대 등으로 선수층의 질은 갈수록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는데도, 일부 FA 선수들이 실력에 비하여 지나치게 과도하게 많은 몸값을 받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높은 몸값에 비하여 일부 선수들의 과도한 스타 의식이나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팬서비스-프로의식도 끊임없이 비판받는 부분이다.

외국인 선수 몸값 문제의 경우, 성급하게 강제적 상한선을 부활시키기 전에 다른 대안을 모색해볼 수도 있었다. 외국인 담당 스카우트진 인력에 대한 지원과 육성을 늘려서 외국 구단이나 에이전트와의 협상력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혹은 일본처럼 기존 1군에 등록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 숫자 제한은 유지하되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늘려주면 무분별한 영입에 대한 위험부담을 줄이고 오히려 가능성 있는 젊은 외인 선수들을 조기에 스카우트하여 국내 선수처럼 '육성'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팬들 외면받는 한국 야구, 진화 나선 정운찬 총재 정운찬 KBO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야구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등 야구계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팬들 외면받는 한국 야구, 진화 나선 정운찬 총재 정운찬 KBO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야구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등 야구계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굳이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을 먼저 문제 삼은 것에 '선수협이나 국내 야구계의 반발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행정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고액 연봉자라도 그만한 실력을 갖춘 선수라면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차피 과거에도 연봉 상한 제도가 유명무실해진 이유는 눈앞의 성적에 매달리는 구단들이 제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KBO와 일부 구단들의 편의에 따라 또 규정을 바꿔서 만일 정말 실력 있는 선수들을 데려오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수준 높은 야구를 즐기지 못하는 팬들의 몫이 된다.

한국야구 향한 팬들의 싸늘한 시선, 이유를 제대로 살펴봐야

실제로 국내 선수들을 둘러싼 몸값 '거품' 논란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에만 제약을 둔다면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또한 장기적으로 이적시장에 오히려 더 큰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위험 부담도 존재한다. 믿고 쓸 수 있는 특급 외국인선수 영입에 제한이 생기게 되면 구단들이 그나마 검증된 국내 선수들이 나오는 FA 시장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KBO도 향후 국내 선수들의 FA 상한선과 등급제, 최저연봉 인상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은 밝혔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연봉상한처럼 단기간에 전격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애초에 국내 스타급 선수들의 몸값 하락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개혁이기에 이해관계가 상이한 야구계 주체들의 협의를 끌어내기가 쉽지만은 않은 사안이다.

그러나 국내 야구인들의 양보 없이 상대적으로 '만만한' 외국인 선수제도만 문제 삼는 것은 더 이상 팬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외국인 선수들과의 공정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자신의 가치와 실력에 맞는 합당한 평가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프로야구 자체도 발전한다.
 
빈자리 많이 보이는 야구장 12일 2018 KBO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에 빈자리가 눈에 띄게 많이 보인다.

정운찬 KBO 총재는 이날 오전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문제 등을 포함한 최근 야구계 논란에 대한 입장 표명 기자회견을 했다.

▲ 빈자리 많이 보이는 야구장 12일 2018 KBO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에 빈자리가 눈에 띄게 많이 보인다. 정운찬 KBO 총재는 이날 오전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문제 등을 포함한 최근 야구계 논란에 대한 입장 표명 기자회견을 했다. ⓒ 연합뉴스


KBO리그는 현재 안팎으로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후유증과 병역혜택 논란, 유명 선수들의 사건사고와 도덕성 문제, KBO리그와 국가대표팀의 경쟁력 하락 등 여러가지 악재들이 겹치며 팬들이 점점 한국야구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내 야구인들도 현재 한국야구를 바라보는 팬들의 싸늘한 시선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더 중요한 내부 개혁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고작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을 제한하는 규정을 부활시키는 게 과연 KBO를 위하여 시급한 결정이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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