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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인 '물따뚤리(라틴어로 '나는 많은 고통을 받았다'라는 뜻)'로 더 많이 알려진 에뒤아르트 다우어스 데커르(Eduard Douwes Dekker)는 네덜란드 작가이다. 물따뚤리는 1820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그는 18살 때인 1838년 아버지를 따라 당시 네덜란드령동인도(Dutch East Indies, 현재 인도네시아)의 바타비아(Batavia, 현재 자카르타)로 온다. 이후 그는 본국으로부터 법원, 지방 관청 등에서 식민지를 관리하는 여러 역할을 부여받는다.
    
18~19세기 유럽은 민주주의가 발전하며 인간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뤄지는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에서 제국주의 유럽 국가들이 자행한 야만적 행태는 물따뚤리에게 견딜 수 없는 모순으로 다가왔다. 그는 1857년 반탐(현 Banten주) 주 르박시의 총독으로 임명된 이후 그는 그동안 그가 목격한 식민지에서의 네덜란드의 폭정을 고발하기 시작한다.

그의 소설 <막스 하벨라르 (Max Havelaar)>는 그의 식민 통치 고발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막스 하벨라르에는 식민 지배의 잔혹한 상황이 자세히 묘사돼있다. 물따뚤리는 이 소설을 잔혹한 식민 통치 상황 그 자체를 고발하기보다, 구체적인 인물과 연결시켜 식민지배의 포악함이 각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적었다.
 
 물따뚤리 박물관에 전시된 물따뚤리의 소설 막스 하벨라르의 초판본
 물따뚤리 박물관에 전시된 물따뚤리의 소설 막스 하벨라르의 초판본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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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따르면 당시 네덜란드 식민통치 하에 있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모든 생계 수단을 빼앗기고, 그에 따라 세금을 내지 못하자 맞아 죽기까지 했다. 소설을 통해 돈이 없어 아이를 팔아야만 했던 상황, 노동 착취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 등을 접한 독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하고 분노했다.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도운 영웅

이 소설이 당시 유럽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식민 통치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던 유럽인들이 식민 통치 방식과 식민지배 그 자체에 대해 여러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한다.

이후 실제로 네덜란드는 식민 지배 방식 변화 '윤리정책'으로 바꾼다. 긴 시간이 지난 이후 막스 하벨라르는 식민 시대를 끝낸 출발점이라 평가받는다. 이후에도 물따뚤리는 여러 작품을 통해 식민 통치의 실상을 고발한다. 그는 계속된 고발에 네덜란드에서 살지 못하고 독일로 옮긴다.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물따뚤리는 독립을 도운 '영웅'이지만, 물따뚤리가 인도네시아에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물따뚤리가 막스 하벨라르에서 고발한 식민지 시절 악덕 지방 관리들이 독립 이후 권력을 잡은 이들의 선조들이거나,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따뚤리의 마지막 부임지이자, 그의 소설 막스 하벨라르의 주된 무대인 랑까스비뚱(Rangkasbitung) 지역은 '물따뚤리 마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물따뚤리를 기리는 수많은 장소들이 있다. 랑까스비뚱은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다.

2017년 5월 이 지역에 물따뚤리 박물관이 개관했다. 박물관장인 우바이씨 (Ubaidilah Muchtar)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교사였던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물따뚤리가 잘 알려지지 않는 것에 대해 늘 안타까워했다. 마침내 그는 교사직을 그만두고 물따뚤리를 알리는 데 전념했다. 랑까스비뚱 지역은 그런 그의 헌신적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다. 물따뚤리 박물관을 비롯하여, 약국, 도로, 학교 등의 이름에 물따뚤리를 새기고 있다.
 
 물따뚤리 박물관 입구에 있는 물따뚤리 얼굴을 형상화한 작품
 물따뚤리 박물관 입구에 있는 물따뚤리 얼굴을 형상화한 작품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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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부터 9일까지(현지시각 기준) 나흘간 랑까스비뚱에서 물따뚤리 축제 (Festival Seni Multatuli)가 물따뚤리 박물관 주최로 열렸다. 매일 밤 공연이 열렸고 물따뚤리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찾았다. 특히 마지막날인 9일에는 랑까스비뚱 지역을 한바퀴 돌며 이 지역에서 물따뚤리의 흔적을 찾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약 50여 명의 사람들이 뙤약볕에도 물따뚤리 박물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약 두 시간 마을을 둘러보며 물따뚤리를 기억했다.
    
부조리와 모순에 저항한 물따뚤리의 굳은 의지와 그 의지가 집약된 그의 소설 막스 하벨라르는 유럽의 아시아 식민지배를 종식시켰다. 한 사람의 의지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따뚤리의 의지와 그 빛나는 성과는 지금도 무모하지만 정의로운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용기를 주고 있다.

이번 물따뚤리 축제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를 닮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일에 결국 이들의 의지가 랑까스비뚱을 변화시켰고, 또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물따뚤리와 물따뚤리를 기억하는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물따뚤리 축제에 참가해 랑까스비뚱 마을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물따뚤리 축제에 참가해 랑까스비뚱 마을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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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자카르타 촛불행동 공동리더 박준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