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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깎이로 시작했지만, 남들보다 빨리 얻게 된 교수 임명장
 늦깎이로 시작했지만, 남들보다 빨리 얻게 된 교수 임명장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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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모레 서른인데, 무슨 중국 유학이야. 정신 차리고 시집이나 가!"

2011년 주변의 반응은 그랬다고 한다. 스물여덟. 결코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 평범한 직장인에서 대학 새내기로의 출발은 결코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이 가슴을 움직였다. 한 번뿐인 인생, 해보지 못한 후회로 평생을 살긴 싫었다고 한다.

그리고 8년의 시간. 늦깎이 유학생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학업에 매달렸다. 결과는 무척 달았다. 대학원을 마친 후 우수성을 인정받아 현지 교수 임명장을 받았다. 올 가을부터 중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교수님이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재능의 부족이 아닌, 결심의 부족으로 실패하곤 한다. 미래를 위한 과감한 도전으로 고작 35세 젊은 나이에 중국에서 교수 타이틀을 달게 된 김희선 시민기자.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그간의 이야기와 미래계획, 새롭게 시작할 연재 구상에 대해 들어보았다.

연재 중단한 2년간 미친 듯 학업에 매달려
 
 대학원 졸업사진(가운데).물심양면 도와 준 중국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는 김희선 시민기자.
 대학원 졸업사진(가운데).물심양면 도와 준 중국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는 김희선 시민기자.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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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마이뉴스> 지면을 통해 '서른둘 여대생의 중국유학일기'를 연재했다(기사보기). 해가 바뀌며 '서른셋 여대생'으로 제목을 바꿔 다는 동안, 중국과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고 따스하게 전해줘 호응을 끌었다. 재치 있고 살뜰한 글솜씨로 2016년 <오마이뉴스> 2월22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희선 시민기자의 어머니는 <조선왕릉의 비밀>을 펴낸 한성희 시민기자다. 한성희 시민기자도 지난 2005년 조선왕릉 연재로 2006년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상'을 받은 전력이 있다. 어머니의 필력을 이어받은 그의 연재를 다시 기대해도 되는 걸까.

"대학원 수업과 논문 준비 때문에 그간 정신없었던 거 같아요.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요. 이제는 배우는 입장이 아니라, 가르치는 쪽에 서게 됐으니 거기서 오는 경험을 녹여 내야겠죠. 또 중국이 시시각각 변화하니 그런 이야기도 전하고요."

가을부터(중국은 1학기가 가을) 중국 금주의과대학에서 1년간 한국어강의를 하게 되는 김희선 시민기자는 내년부터는 모교인 보하이(渤海·발해)대학교에 개설되는 한국어과에서 강단에 서게 된다. 이를 위해 학부 과정 후 귀국해 1년 반 걸리는 한국어 교원자격증 2급을 1년 만에 취득하기도 했다.

한국어 전파로 한중교류에 통로가 되길 꿈꾸며

 
 인생의 선택에 늦은 시간은 없다는 김희선 시민기자
 인생의 선택에 늦은 시간은 없다는 김희선 시민기자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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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학부 전공은 한어언문학(중어중문), 대학원 전공은 한어(중국어)국제교육학이다. 외국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교과다 보니 학업과정이 만만치는 않았다고 한다. 특히 처음 학부 시절 여덟 살이나 어린 동생들에 비해 확실히 따라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중국대학에서 외국인들끼리 공부하는 국제학부(대외한어과)가 아니라, 학부·대학원 모두 중국인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중국인 본과 전공이었어요. 어린 학생들에 비해 중국어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늦어진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발음도 그렇고요.

연재에도 썼지만 학부 때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일이 있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대학원 시절은 정말 바쁘더군요. 특히 논문을 쓸 때 가장 힘들었어요. 거의 1년을 매달렸죠. 현지 중국 친구들이 많은 도움 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불확실한 미래, 동기생보다 늦은 출발. 이런 상황을 이기고 이제는 남보다 빠른 나이에 대학 강단에 서게 됐으니 기쁨이 두 배일 것 같다고 하자,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사실 아직 얼떨떨해요. 기쁜 것보다는 걱정이 많이 돼요. 발해대학교는 모교라서 그나마 괜찮은데 낯선 금주의과대학에서 강의하는 건 부담이 커요. 향후 양국 간 무역에 중요한 역할을 바라는 학교 측의 기대가 있으니까요. 물론 잘 해내야죠. 중국인들이 한국어를 친근하게 접하도록 힘을 보태려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양국 교류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해요.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고 싶어요."

새로운 삶,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

김희선 시민기자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지만, 분명 주변의 도움도 컸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분들에게 은혜를 입었다며 고개를 숙인다.

"어머니가 길을 알려주셔 새로운 인생이 열렸다고 생각해요. 또 발해대 한국교류처의 노정배 학장님이 물심양면 도움을 주셨어요. 꾸준하게 상담, 설득도 해주시고 여러 장학 혜택도 알려주셨어요. 중국인 지도교수님도 차근차근 짚어주셔 감사하고요, 중국친구들 도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죠."

최근 많은 학생들이 해외유학을 꿈꾼다. 자신의 꿈을 실현시킨 김희선 시민기자에게 조언을 구해봤다. 무엇보다 급하게 한 번에 모든 걸 이루려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지금도 제가 중국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안 들리는 말도 많고요. 서두르지 말고 가능한 목표를 잡고 정진해야 된다고 봐요. 너무 큰 기대도 좋지 않아요. 그만큼 실망하게 되니까요. 중국어만 조금 배우면 당장 뭘 할 수 있겠지 하고 들뜨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 현지적응에 대한 일반적 관념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생각을 밝혔다.

"유학에서 현지 친구가 있으면 말이 빨리 늘죠. 하지만 각 개인 차이가 있어요. 성격, 환경 등이 다른데 왜 친구 안 만드느냐며 다그치는 부모들이 계세요. 오히려 자녀들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시장이나 상점에 많이 다니는 게 좋아요. 내가 못 해도 그분들이 말을 걸어오니까요.

사실 제가 유학을 선택하게 된 데는 한국인이 거의 없는 도시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어요. 조용해서 학업에 집중하기도 좋았고요. 물가도 베이징, 상하이 등에 비해 쌌어요. 물론 지금은 도시 규모가 급속하게 커져서 생활하는 데 오히려 편한 점이 생겼고요."


누구나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그리고 가보지 못한 길을 아쉬워한다. 김희선 시민기자는 익숙한 일상을 내던지고 새로운 길을 걸었다. 이제야 밝게 웃는 그녀는 결국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작할 때는 굉장히 늦었고,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물론 운도 따랐죠. 중요한 건 한 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해봤다는 것이죠. 본인이 판단하는 것이지만, 도전하면 분명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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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