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남미 축구의 강자는 달랐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남미의 챔피언 칠레를 상대로 고전했다. 칠레전을 통해 벤투호는 뚜렷한 문제점 2가지를 인지하게 됐다.
 
돌파 시도하는 비달 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칠레의 친선경기. 비달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 돌파 시도하는 비달 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칠레의 친선경기. 비달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11일(화) 오후 8시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초청 9월 A매치 평가전 한국과 칠레의 경기가 0-0으로 종료됐다. 입추의 여지 없이 가득찬 경기장에서 쏟아지는 함성 소리를 등에 업은 대한민국이 기분 좋은 승리를 노렸다.

그러나 칠레는 강했다. 경기 초반 한국의 거센 공세에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특유의 플레이로 경기 주도권을 가져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원의 밤 공기는 칠레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패배의 가까운 무승부다. 칠레가 득점과 다를 바 없는 결정적인 찬스를 수차례 날린 덕을 봤다. 지난주 코스타리카전 쾌승에 가려졌던 벤투호의 문제점이 칠레전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전진하지 못하는 미드필더의 한계, 의미가 퇴색된 빌드업

이번에 새롭게 부임한 파울로 벤투 감독의 철학은 뚜렷하다. 공을 쥐고 경기의 주도권을 잡은 뒤, 높은 위치에 올라간 풀백과 공격진들의 협업으로 공격을 마무리하는 방식이 주요 골자다.

벤투 감독 스타일에 따라 코스타리카-칠레로 이어지는 2연전에서 선수들은 선결 작업인 안정적인 빌드업을 도모했다. 압박의 강도가 약했던 코스타리카와 경기에서는 빌드업 과정이 부드럽게 돌아갔지만, 세계 최고의 압박 수준을 자랑하는 칠레 앞에서는 쩔쩔맸다.
 
기성용의 특급 패스 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칠레의 친선경기. 기성용이 패스하고 있다.

▲ 기성용의 특급 패스 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칠레의 친선경기. 기성용이 패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정적인 빌드업을 위해 탈압박에 능한 기성용-정우영 조합을 기용했음에도 역부족이었다. 후방 지역에서 공을 잡은 선수들은 칠레의 강력한 압박에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맸다.

기본적으로 공을 아군 진영으로 잡아 놓은 선수들의 습관이 발목을 잡았다. 후방에서 온 패스를 잡아 전방으로 전진해야 할 임무가 있었던 미드필더들이었지만, 칠레의 압박에 겁을 먹고 공을 뒤쪽에 잡아 놓는 탓에 전진이 어려웠다. 경기 초반 탐색전을 펼치던 칠레 선수들에게 한국 미드필더들의 위축된 공 처리는 훌륭한 먹잇감에 불과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칠레의 전방 압박은 세계 최고다. 이러한 압박을 유려하게 뚫어낼 수 있는 팀은 전 세계 거의 없다. 허나 빌드업 과정에서 경기의 템포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한국 축구의 문제는 비단 칠레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아시아 팀과 격돌해도 느리고 과감하지 못한 빌드업 때문에 답답한 경기를 펼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에는 의미없고 속도감 제로의 빌드업으로 인해 위험을 자초하기도 했다. 칠레와 경기에서 봤듯이 후방에서 의미없는 볼 돌리기는 실점 위기를 낳을 뿐이다.  

결국 내년 1월 아시안컵 우승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어려움 없이 진출하기 위해서는 빌드업의 속도와 정밀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밤 벤투호를 곤경에 빠뜨렸던 칠레는 좋은 교본이다.

칠레 선수들은 빌드업 과정에서 공을 받는 첫 터치를 최대한 한국 진형 방향으로 진행했다. 자연스럽게 유리한 위치를 선점함과 동시에 빌드업의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한국 공격진이 강하게 전방 압박할 때는 몸을 적절히 활용해 파울을 유도했다.

아시아 레벨에서는 높은 기술력을 가진 한국 축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국은 이미 기성용, 이재성 등의 수준급의 미드필더를 보유하고 있다. 칠레가 보여줬던 수준 높은 빌드업 플레이를 한국 대표팀이라고 못 할 것이 없다.

측면의 손흥민은 고립된다

칠레전이 답답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손흥민의 고립이다. 코스타리카전과 마찬가지로 4-2-3-1 포메이션의 왼쪽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장한 손흥민은 이렇다 할 슈팅 찬스를 가지지 못했다.
 
돌파하는 손흥민 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칠레의 친선경기. 한국의 손흥민이 돌파하고 있다.

▲ 돌파하는 손흥민 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칠레의 친선경기. 한국의 손흥민이 돌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칠레는 손흥민을 철저히 고립시켰다. 기본적으로 오른쪽 풀백 마우리시오 이슬라가 손흥민을 바짝 견제하고, 손흥민이 공을 잡으면 주변의 미드필더들이 연쇄적으로 손흥민에게 달려들었다. 넓은 공간에서 장기가 나오는 손흥민 개성상 칠레의 압박으로 좁아진 공간은 불편한 장소였다.

손흥민이 국가대표팀에서 오랜 기간 겪어왔던 '고난의 재방송'이었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손흥민은 주로 측면 공격수로 배치됐는데, 그 때마다 상대는 기민한 압박으로 손흥민을 괴롭혔다. 손흥민 개인의 발전으로 조금씩 상대의 방어를 이겨내고 있지만, 좁은 공간에서 능력이 반감되는 손흥민 특성상 한계가 있다.

빌드업 문제와 다를 바 없이 손흥민 고립 문제는 아시아 레벨에서도 유효한 문제점이다. 아시아 팀의 경우 완전히 수비가 내려앉아 손흥민의 활동 범위를 좁히는 방식을 택한다. 상대의 방법이 어찌됐든 측면에 위치한 손흥민은 그동안 몹시 외로운 싸움을 경험했다. 

결국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에 능력이 발휘될 시점이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감독 시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지도했던 바 있다. 호날두와 비슷한 유형의 '고독한 에이스' 손흥민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묘안을 벤투 감독은 알고 있을 공산이 크다. 다음달 열릴 우루과이, 파나마와 평가전이 중요해진 이유다.

남미의 챔피언은 역시 차원이 달랐다. 경기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파악했다. 칠레가 벤투호에게 풀어야 할 숙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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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칠레전 빌드업 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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