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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17년차, 엄마경력 8년차. 워킹맘 K에게 쓰는 편지는 아이와 일을 사랑하며,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완생을 꿈꾸는 미생 워킹맘의 이야기를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내려 합니다.[편집자말]
아이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균형이야
 아이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균형이야
ⓒ ⓒ 4dgraphic,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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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워킹맘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회사 일도 잘 못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애를 잘 키우는 것도 아니고요. 자존감이 매일 무너지는 느낌이에요."

네 말을 듣고 '자존감'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어. 자존감. 언젠가부터 우리 인생에 깊숙이 들어와서 박힌 단어. 아이를 키우며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단어. 도대체 그 '자존감'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엄마들을 그렇게 괴롭히는 걸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자존감이란 '자아 존중감',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해. 그러면 자존감이 무너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하는 걸 거야. 내가 도달하고픈 목표에 내 상황이, 내 에너지가 부합하지 못하는 거지.

초보 워킹맘들의 실수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남들처럼 일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내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이고 싶은 거야. 그런데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어. 일과 육아는 끝이 없으니 답이 안 나와. 그래서 자존감은 쉽게 무너지는 것 같아.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네 감정은 '당연한 것'이야. 왜 그런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줄게. 

오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은 말이야. 여자가 자존감이 크게 흔들리는 시기는 결혼과 출산인 것 같고, 거기에 워킹맘은 한 번 더 흔들리는 것 같아. 박웅현의 <여덟 단어>에 보면 자존감을 세우려면 내 안에 점을 찍고, 자존감을 세워야 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여자들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시댁이라는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면 내 안에 점을 찍고, 나를 기준으로 생각할 수가 없어. 개인이 아니라 가족으로서의 역할이 먼저 부여되거든. 명절에도 부엌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풍경은 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지, 왜 변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어. 시댁 식구와 함께 있을 때 어쩌다가 남편에게 설거지라도 시키는 날에는 집안 분위기가 불편해지니 말이야.  

육아도 마찬가지야. 나도 육아가 처음인데, 모든 게 다 엄마인 내 탓이래. 육아의 문 앞에서 누군가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 "어서 와~ 육아는 처음이지?" 뭐 그런 느낌? 정말 처음인데,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실패와 수많은 시행착오. 거기에 엄마의 불안은 양념같이 더해지더라. 

그렇게 육아의 바닷속에서 한참 헤매고 있는데, 복직을 해야 해. 일을 하래. 그래, 늘 하던 일이니까 할 수 있을 거라 단순히 생각하지. 물론, 아이 키우면서 일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은 약간 있었지. 그런데 어려움이 상상 이상이야. 100m 달리기를 하는데 나는 양쪽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느낌이랄까? 더디고 더디고, 주저앉아서 울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 

그때,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어.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만 보이는 거야.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도, 육아도 너무 힘들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지. 내 안의 힘이 약하니까 안에서 밖으로 치이더라. 회사의 작은 실수에도 미칠 것처럼 나 자신이 원망스럽고, 아이의 작은 이상행동에도 내 탓은 아닐까, 불안해서 미칠 것 같은 순간들. 용기를 내어 심리상담을 받았어.  

"가끔, 아이 문제에 있어서 쿨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사랑받지 못하고 커서 그런가 싶을 때가 있어요. 사랑받고 자란 엄마는 자존감도 강하니까, 아이를 좀 다르게 키우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고 비교도 되고 그래요."

나의 질문에 상담사의 대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자식의 문제에 있어서 쿨한 엄마는 없어요. 저도 이렇게 상담을 해드리지만, 제 자식 문제에 있어서는 객관적으로 접근하거나 쿨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랑받고 자란 엄마들도 누구나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 문제에 부딪히면 불안하긴 다 마찬가지고요. 앞으로 아이 키우면서 그런 불안감이 더 크게 올라올 텐데, 그럴 때마다 아이는 아이, 엄마는 엄마, 분리시켜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존감은 유전되지 않습니다. 자존감 낮은 엄마의 불안감이 아이를 통해서 보여질 뿐, 자존감은 유전형질이 아닙니다. 사람이 백인백색이듯 엄마나 아빠의 모든 기질과 유전자가 100% 유전되지는 않습니다." 

생각해 보니 100% 유전이 되어야 한다면 아이는 내 얼굴과 100% 같아야 하는 것이더라. 하지만, 아이는 나와 닮았을 뿐, 나와 다르게 생겼잖아. 그제서야 이해가 되더라고. 그 상담으로 나는 내 안의 불안을 정리할 수 있었고, 나를 다시 생각하고 나와 내 아이의 관계, 나와 회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어.

누구나 조그마한 실수는 하고 사는 것이더라고. 지금은 일에서 인정받는 시기가 아니야. 지금은 일과 육아, 양쪽 모두의 균형을 맞추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그것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대는 훌륭한 거야.

누구나 실수는 하고 사는 것

가끔 생각해. 그때의 흔들림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고. 나는 흔들림 없이 왔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 그럴 리가. 누구나 흔들리면서 사는 것이 인생 아니겠어?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자존감이 무너져 봐야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봐. 세상 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 시행착오가 없을 수는 없잖아?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이 실패에 취약한 것처럼 자존감이 무너진 후 다시 되찾은 자존감은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아. 훈련인 거지.

그러니 그대, 오늘도 흔들리는 그대의 자존감을 가만히 바라봐. 조금 더 단단해지는 중일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워킹맘에세이, #워킹맘육아, #편지, #워킹맘후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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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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