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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 창립 30주년을 맞아 열린 '불나방 페미 연대기'라는 릴레이 강연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하나하나 잊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이어졌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민우회 김희영 활동가의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죄는 없다'라는 강연이었다. 이 강연의 끝부분에서 김희영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죠, 한번 알면 돌아갈 수 없는데 이렇게 어떤 진실을 마주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다수가 생기면 저는 그게 혁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이미 이렇게 분노하는 사람이 많다면 혁명은 진행된다고 생각해요."

사회의 변혁과 혁명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예리하며 동시에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정의라고 생각한다. 저 문장은 역시나 활동가인 내게 지침이자 지향이다.

그리고 실제로 혁명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특히 성적소수자의 인권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존재조차 보이지 않았던 과거에 비하면 보다 광범위한 사람들이 이제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 우리의 권리가 첨예한 정치적 문제임을 동의하고 성적소수자 인권 증진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소수자 인권 운동에는 늘 반대자들이 등장한다. 한국에선 보수 개신교계를 기반으로 한 혐오 집단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아예 존재 자체를 지우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 이들의 행동은 성소수자들이 겪는 불평등과 억압을 더욱 확고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말하자면 분노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질문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어떻게 분노할 것인가. 그 분노를 딛고 무엇을 할 것인가.

혐오 집단의 폭력 난무했던 인천퀴어문화축제
 
 인천퀴어문화축제 깃발
 인천퀴어문화축제 깃발
ⓒ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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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이 다시 선명히 떠오른 것은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였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듯 혐오 단체는 축제가 진행될 광장을 점거하고 부스조차 설치할 수 없게 막았다. 심지어 경찰의 저지선을 무너뜨리고 들어와 축제 참가자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들이 행한 폭력은 셀 수가 없다. 참가자들을 향한 혐오 발언과 모욕은 기본이었고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한 경우도 많았다. 퍼레이드 차량을 훼손하여 아예 달릴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을 방해했으며 참가자들이 들고 있던 깃발들을 빼앗아 부러뜨리거나 되찾지도 못하게 했다.

저지선이 뚫리고 혐오 집단이 광장에 난입했을 때, 나는 짐을 지키려 앉아 있다 인파를 그대로 맞았다. 깃대는 부러지고 물품을 담은 봉지가 발에 채여 허망하게 날아갔다. 그나마 남은 짐을 지키겠다고 찢어진 박스를 부여잡고 비틀비틀 걸어가는데 누가 나를 뒤에서 붙잡았다. 그리고 나에게 '하나님 아버지, 부디 돌아오세요'라고 소리 질렀다. 화가 났다. 우리가 존재할 곳을 지우고서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라는 말인가.

하지만 가장 뼈저리고 굴욕적인 순간은 행진 때였다. 혐오 집단은 우리가 깃발과 피켓을 내리고 걷는 것을 조건으로 길을 터주겠다고 요구했다. 이미 시간은 늦었고 혐오 집단은 끝까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그런 식으로 우리는 비좁은 인도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퀴어문화축제는 무엇보다 소외되고 비가시화된 성적소수자들이 겨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축복할 수 있는 자리다. 그런 공간에서 그들은 '너희가 누구인지 가려라'라고 강제한 셈이다. 무지개가 새겨진 물품을 조금만 높게 들어도 혐오 집단들은 내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경찰조차 충돌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우리에게 같은 요구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행진의 중간부터는 질서를 유지할 경찰조차 없었다. 우리는 양옆으로 늘어선 혐오 집단들에게 둘러싸여 길을 걸었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혐오 발언을 들었는지 굳이 옮기지는 않겠다. 혐오 집단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반말로 조롱하거나 우리에게 윽박질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늘상 듣던 말이었기에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억울함과 모멸감이 덮쳐왔다. 행진이 더 이상 지연되고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혐오 집단의 폭력에 일절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다수의 혐오 집단이 둘러싼 상황이 주는 중압감 속에서 그들의 언어폭력을 맞받아치기는 불가능했다. 나는 조용히 침묵하고 걸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게 화가 났다. 왜 나는 무력했을까. 항의조차 하지 않았을까. 내가 들은 그 끔찍한 말들을 그대로 돌려주지 않았을까.

많은 언론이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주목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들은 일방적인 '감금'(혐오 단체가 축제 참가자들을 둘러싸고 길을 막은 탓에 우리는 식사는커녕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과 '폭력'을 '충돌'이라고 이야기했다. 가장 화가 나는 표현은 '축제가 무산되었다'는 것이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우리가 부스를 열고 발언을 이었으며 행진까지 진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거기에 단어가 주는 느낌도 불쾌했다. 무산? 우리가 실패했다는 뜻일까?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특히 행진의 순간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비온뒤무지개재단은 혐오 집단이 난입하는 바람에 깃대가 부러지는 사고를 겪었다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비온뒤무지개재단은 혐오 집단이 난입하는 바람에 깃대가 부러지는 사고를 겪었다
ⓒ 비온뒤무지개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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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무너지지 않은, 함께 저열해지지 않은 우리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행진 내내 침묵했고 혐오발언에 대응하지 않았다. 폭력을 견디며 묵묵히 걸었다. 나는 처음에 그 과정에서 무력감을 느꼈다고 썼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어떻게? 혐오를 혐오로, 폭력을 폭력으로, 증오를 증오로 돌려주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내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분노다. 이는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노를 성소수자들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증명했다. 혐오와 폭력에 마주한 사람이 그것과 같은 나락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가시밭을 걸으면서도 존엄과 품위를 지켜나갈 수 있음을.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의 행진은 그 어느 퍼레이드 보다도 고결한 순간이었다. 또한 고립된 광장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돌보았고 어렵게 전달받은 물과 음식을 기꺼이 다른 사람과 나누었다. 여기서도 우리는 혐오보다 더욱 이상적인 가치를 행했다. 그러니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물론 지치는 순간도 온다. 우리는 언제까지 무언가를 증명해야 할까. 왜 시험대에 설까. 단지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배제당한다는 이유로. 하지만 그런 순간마다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대학 시절 내가 만난 한 선배다. 선배는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명박 정권이었다. 한 마디로 되는 일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늘 패배했다. 운동에서도 선거에서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함께하는 사람이 줄어도 선배는 여전했다.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말렸다. 이 바닥을 떠나자고. 지는 싸움 그만하자고. 계속 실패만 하는 인생 어떻게 살 수 있냐고. 그때 선배는 내게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인마, 이기려고 하는 싸움이 아냐. 싸움을 하면서 나는 내 존엄을 찾는 거야.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냐. 나를 찾고 주장하는 거야. 그 과정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거고. 그걸로 됐어."

마찬가지로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나는 나를 찾았고 이는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한다. 혐오에 무너지지 않는 우리, 함께 저열해지지 않는 우리, 존엄을 내팽개치지 않는 우리, 인간성을 버리지 않는 우리. 나와 참가자들은 그렇게 우리 스스로를 찾았다.

이를 성공했다면 우리가 아무리 같은 폭력과 차별을 마주한다 해도 끝까지 행복해지지 못할 이유는 없다. 현장에서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이 그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나는 간절하게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미셸 오바마가 2016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했던 말을 조금 의역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들이 저열하게 구는 때에도, 우리는 존엄하게 행동하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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