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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탄광 마을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4학년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아침 시간, 수업 틈틈이 짬내어 그림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림책 같이 읽으며 나온, 아이들의 말과 글을 기록합니다. - 기자말

"으아아! 너도 팔 대! 피하지 마!"

J의 찢어지는 목청이 귓구멍을 후벼 팠다. 일제히 시선이 교실 뒤편으로 향했다. J가 씩씩거리며 시뻘건 얼굴로 상혁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혁이는 연신 "미안해"를 외치며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체육관 가려고 뒷문을 나서는데 J가 있는 걸 미처 못 보고 어깨를 부딪쳤다고 그랬다. 상혁이는 즉각 사과했지만 J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과로는 안 되니 똑같이 몸통을 부딪히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넘어지거나 멍든 것도 아닌데 사과받아 주라."

가벼운 소동이면 어떻게 해결하나 지켜보겠는데, 반 아이들의 이목이 모두 집중되어 있었기에 개입을 해버렸다. J는 억울하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기분이 나쁘고 팔이 아팠기 때문에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했다.

"일단 참아줘서 고마워. 주먹 안 써서 친구가 다치지도 않고 말이야."

울컥하는 J를 잘 알기에 우선 달랬다. 칭찬을 받고 약간 기분이 풀린 J에게 후속 조치로 캐러멜 두 개를 주었다. 상혁이랑 한 개씩 나눠 먹으라 했더니 어이없을 만큼 사건은 급 마무리되었다. J 담임하는 2년 간 이런 일을 사흘에 한 번 꼴로 겪고 있다. J를 위해 그림책 <아툭>을 간절한 마음으로 읽었다.
 
 아툭은 에스키모 소년이다.
 아툭은 에스키모 소년이다.
ⓒ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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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넌 다섯 살이다."
     
연어 떼가 커다란 강물을 거슬로 올라가던 어느 날, 아빠는 아툭에게 갈색 개 한 마리와 썰매를 선물로 준다. 아툭은 갈색 개를 '타룩'이라고 부른다. 둘은 언제나 함께 했다. 썰매를 매달아 눈밭에서 신나게 달리고, 넘어지며, 뒹굴었다. 타룩은 아툭이 어딜 가나 따라다녔다. 이글루 안에서 몸을 누이고 쉴 때도 둘은 서로 몸을 기댄 채 체온을 나누었다.

"나도 개 키우고 싶다."

J가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말했다. 아까 실랑이를 벌이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감정에 따라 J의 성량은 최고 또는 최저를 찍는다. 적당한 성량은 드물다. 그래도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J가 타룩에게 관심을 보여서 다행이었다. J의 기쁨도 잠시, 타룩의 생은 짧았다.
 
"아빠, 타룩도 다른 개들처럼 썰매 앞에 묶어주세요!"
       
 파룩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
 파룩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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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툭은 타룩을 사냥을 떠나는 아빠에게 맡긴다. 언젠가 아툭이 커다란 썰매와 개들을 갖게 되면, 타룩이 단연 대장 역할을 하게 될 터였다. 눈밭 위로 해가 여러 번 뜨고 졌다. 아툭은 끝없이 펼쳐진 눈벌판을 바라보며 타룩을 기다렸다. 그러길 몇 차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는 개들의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룩이 그만 푸른 늑대한테 물려 죽었단다."

아이들이 "흡!" 하고 숨을 삼켰다. 타룩이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초반부에 덜컥 죽어버려서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J는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눈빛을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슬픔에 잠긴 아툭은 나쁜 늑대를 죽이겠다고 다짐한다. 아버지가 부드럽게 타일러 보지만 영혼의 단짝을 잃어버린 아툭은 늑대를 죽이겠다고, 꼭 죽이고 말겠다고 거듭 결심을 굳힌다.

"못된 늑대는 죽어야 해."

가만히 있던 J가 무심하게 아툭의 말을 받았다. 동물 세계에서 인간의 도덕률은 무의미하다. 육식 동물은 배가 고프면 자기보다 약한 동물을 잡아먹는다. 그렇지만 아툭에게 감정 이입한 J에게 푸른 늑대는 용서가 불가능한 악당이었다. 사랑하는 타룩을 빼앗아간 녀석은 오직 죽음으로만 속죄할 수 있었다. 타룩을 잃고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아툭이 어딘가 J와 닮아 보였다.
 
"아툭아, 네 키는 저 산비탈에 있는 꼬마 자작나무만큼 밖에 안 돼. 아직은 네가 늑대를 죽일 수 없단다."
     
아툭은 강해지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인다. 준비되지 않은 복수심은 처절한 패배로 이어진다. 냉정을 되찾은 어린 사냥꾼은 활과 화살을 들고 툰드라로 나아간다. 카약을 타고 커다란 강의 거친 물살을 헤치는가 하면, 차가운 물속에서 오래도록 헤엄을 치기도 한다. 아툭은 날이 갈수록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걸 깨닫는다.

"추울 텐데 대단하네."

상영이가 아툭이 에스키모족 아이인 걸 기억해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따스한 수영장 물에 익숙한 한국 어린이는 시린 강에서 수영하는 아툭의 몸짓이 놀랍다. 사람이 가슴에 불을 품으면 못할 일이 없다.

아툭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단련하는 모습을 J가 봐주길 바랐다. 아툭의 복수가 정당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삶의 태도는 배울 점이었다. 그러나 J는 이 장면에 흥미가 없었다. 교실 바닥을 손톱으로 긁고 냄새 맡는 행위를 반복할 뿐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J가 반응하길 바라는 건 담임의 욕심이었고, 아이 의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나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우울에 젖어버리는 J를 볼 때마다 무력감에 빠졌다. 일부러 3, 4 학년 담임교사 연임을 자청했지만 J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인정해야 했다, J는 아툭이 아니었다. J가 계속 바닥을 긁는 사이 아툭은 훌쩍 자랐다.  
 
 아툭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사냥꾼으로 자란다.
 아툭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사냥꾼으로 자란다.
ⓒ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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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겨울이 서로를 쫓아다니며 여러 해가 지났다. 세월이 갈수록 아툭은 타룩이 가슴에 사무쳤다. 그럴수록 더욱 사냥 연습에 정진했고, 이제 젊은 사냥꾼 가운데 아툭을 능가할 사람은 없었다. 아툭은 산비탈에 있는 자작나무 옆에 섰다. 가지 끝이 허리까지 밖에 닿지 않았다. 푸른 늑대를 찾아갈 때가 된 것이다.

"드디어 늑대를 잡네."

늑대 이야기가 나오자 J가 삐딱하던 자세를 고쳐 잡았다. 공정한 복수에 예민한 J에게 늑대 사냥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아툭은 발소리를 죽이며 푸른 늑대가 나타날만한 장소를 살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야트막한 언덕에 서 있는 여우 한 마리를 발견했다. 목표로 하던 늑대는 아니었지만 여우 털가죽은 매우 값어치가 있었다.

노련한 사냥꾼은 소리 낮춰 여우에게 접근했다. 험악한 낌새를 맡은 여우는 아툭을 보았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죽음의 손이 코앞까지 왔음에도 여우는 자리를 지켰다. 도망가지 않는 짐승을 이상하게 여긴 아툭이 활을 내렸다. 왜 달아나지 않았냐고 묻는 말에 여우는 의연했다.
 
"쫓고 쫓기는 싸움에서 난 언제나 사람들을 따돌리고 승자가 되었어. 아무도 날 잡을 수가 없었지. 그렇지만 난 늘 혼자였어. 지금은 아니야. 모든 게 달라졌어. 친구가 하나 생겼거든!"

창 끝에 목숨이 달린 마당에 여우는 알 수 없는 대답을 늘어놓는다. 여우의 시선은 밤하늘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저기 높은 뜬 별이 친구라고 소개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툭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우 사냥을 포기하고 돌아선다.

"왜 아툭은 여우를 살려줄까요?"

영민한 소원이가 냉큼 손을 올렸다. 예전에 타룩과 함께 즐거웠던 기억이 떠올라 차마 여우를 죽이지 못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매끄러운 해석이었다. 옆에 앉은 류은이 눈동자가 반짝였다. 류은이 해석은 조금 결이 달랐다. 늑대 사냥은 단순히 고기나 가죽 때문이 아니라 타룩의 복수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여우를 살려 준거라 하였다. 

"늑대가 늙어 죽었으면 어떡해요? 그럼 다 필요 없는 짓이잖아요."

승우가 맹점을 건드렸다. 승우 말대로 늑대가 죽어버렸다면 아툭은 어떻게 되는 걸까? 복수할 대상이 이미 사라졌으니 평생 복수를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이들 대다수는 늑대가 죽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 끝까지 추적해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J는 여전히 입에 지퍼를 채운 듯 침묵을 지켰지만, 친구들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복수 일변도의 중론이 답답했는지 지영이가 일침을 놓았다. 만약 늑대가 죽었는데 복수하겠다고 쏘다니면 백 년이 걸려도 못 찾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늑대가 살아있을 일말의 가능성이 있으니 원래 계획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우겼다. 책을 잠시 덮고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정말 늑대를 죽이면 슬픔이 덜어질까요? 타룩이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네. 그래야 속이 시원하죠. 타룩이 죽었잖아요."
"그럼 늑대를 잡아 죽이는 데 성공했다고 쳐요. 그러면 늑대의 가족이 복수하겠다며 아툭을 죽여도 상관없겠네요?"


전원이 빠진 스피커처럼 일시에 교실이 잠잠해졌다. 학생들은 단 한 번도 인간이 동물의 복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았다. 실현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가정이었지만, 논리가 꼬인 아이들은 머리를 긁적였다.
 
 상상 속 푸른 늑대는 현실과 많이 다를 수 있다.
 상상 속 푸른 늑대는 현실과 많이 다를 수 있다.
ⓒ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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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아직 미성숙하기에 타인의 시선으로 사안을 바라보는데 익숙하지 않다. 내가 푸른 늑대라면 어떨까? 수년 전 잡아먹은 갈색 개를 기억이나 할까? 그 식사로 인하여 한 소년이 오랫동안 독을 품고 자신의 심장을 노려왔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숙제를 냈다.

"당신은 푸른 늑대입니다. 늙어서 하루하루 기력이 떨어져 가는 어느 날, 당신은 아툭이라는 모질고 억센 사냥꾼을 만납니다. 아툭은 자신이 사랑하는 타룩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면 당신에게 창을 겨눕니다. 이 순간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가요? 또 아툭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지금껏 아툭과 한 몸이 되어 복수를 외치던 아이들은 난감해했다. J는 숙제 종이로 나눠준 빨간색 붙임 딱지(포스트잇)를 쥐고 한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처음부터 복수를 주장했던 아이였다. 논리의 일관성을 고려한다면 늑대가 되어서도 아툭에게 당당히 목숨을 내어 놓는 게 맞았다.

다음 날, J가 숙제를 내밀었다. 놀라웠다. 자기가 늑대라면 당황스럽고 억울한 느낌이 들 것이라고 했다. 아래는 아툭에게 해줄 말이 진한 글씨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난 그 개를 10년 전에 잡아먹은 기억이 없다."

어제까지 아툭이었던 J는 하룻밤 사이 늑대가 되어 자기 목숨을 변호했다. 그가 처음으로 의견을 바꾼 것이다. J도 충분히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아이였다. 선생님도 늑대였다면 비슷한 말을 했을 것 같다고 하자 J가 "진짜요?" 하며 콧구멍이 커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J가 웃는데 괜히 미안했다. J에게 필요한 건 그저 감정을 받아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만! 넌 애가 왜 이렇게 폭력적이니?" 따지는 사람 말고, "그랬구나. 나도 마찬가지야. 그럼 우리 이 방법으로 시도해 보는 건 어때?" 하고 감싸줄 사람 말이다. 

그날 J는 하루 종일 평화로웠다. 친구와 다투지 않고, 수업도 절반 이상 집중해서 들었다. 복수심을 내려놓은 아툭이 우리 반에 앉아 있었다. 푸른 늑대를 생각하지 않는 J가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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