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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네 명의 로스쿨생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집회·시위현장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채증에 문제의식을 갖고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4년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5대 4, 안타까운 합헌 결정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소송의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청구인단에게서 기고문을 받았습니다.[편집자말]
   
세월호 참사 39일째인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에 참가했던 참가자들중 일부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 행진을 시도했다. 캠코더를 든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을 채증하고 있다.(2014.5.24)
 세월호 참사 39일째인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에 참가했던 참가자들중 일부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 행진을 시도했다. 캠코더를 든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을 채증하고 있다.(2014.5.24)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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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경찰 채증, 로스쿨생들에게 멱살 잡히다

지금은 여야 합의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법도, 선체조사 위원회 특별법도,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가습기 및 세월호 특별법)도 만들어졌지만, 4년 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는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법 하나도 만들기 어려워 보였고, 학생들이 나서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해야할 정도였습니다.

2014년 8월 29일 당시 연세대학교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행진에 참여하였습니다. 다들 수업이 끝나고 책가방을 멘 채로, 손에는 노란 A4용지에 각자 원하는 문구를 쓰는 등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말입니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행진하는 학생도 있었고, 남녀 커플도 눈에 보였습니다. 화염병, 죽창 같은 위험한 도구는 전혀 없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수사권·기소권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던 때 관련집회에 참석했던 로스쿨생들은 경찰 채증에 문제의식을 갖고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사진은 2014년 8월 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 모습.
▲ "특별법 제정하라! 청와대는 응답하라!"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수사권·기소권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던 때 관련집회에 참석했던 로스쿨생들은 경찰 채증에 문제의식을 갖고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사진은 2014년 8월 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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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평화롭고 한산하게 광화문까지 행진을 하던 도중, 우리는 경찰로부터 해산명령을 받고 채증을 당했습니다. 신고된 행진범위를 100m 벗어났으니 무조건 불법시위라는 것이었습니다. 2012년 대법원 판례에 따를 때, 학생들은 명백히 합법적인 집회를 하고 있었지만, 경찰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미신고 옥외집회로 인하여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하여 해산을 명할 수 있고, 이와 달리 미신고라는 사유만으로 해산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사실상 집회의 사전신고제를 허가제처럼 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므로 부당하다."

- 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1도6294 판결

합헌 4명의 논리, 위헌 5명의 논리

당시 경찰이 학생들의 얼굴을 채증하는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개개인들의 얼굴을 근거리에서 여러 대의 캠코더로 채증하여 학생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겁먹은 학생들이 흩어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경찰은 무난히 집회를 해산시켰고, 학생들은 평화적인 집회마저도 강제로 해산당할 수밖에 없다는 자괴감 속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문제의식을 가진 참여학생들 중 일부는 2014년 10월 20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4년 만에 이 사건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얼굴 채증은 합헌이라는 경찰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위헌이라는 5인 재판관의 다수의견이 있었지만, 위헌결정에 필요한 숫자가 1명 부족하여 공식 법정의견은 합헌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합헌의견을 낸 안창호·김창종·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 미신고집회에 참여한 일반 참여자는 불법행위자가 아니지만, 주최자는 불법행위자이므로 채증하여야 한다 ▲ 주최자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일반 참여자가 함께 채증되더라도 불가피하다 ▲ 일반 참여자도 갑자기 불법행위자로 변할 수 있으므로 채증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헌의견을 낸 이진성·김이수·강일원·이선애·유남석 재판관은 ▲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집회는 신고범위를 벗어나더라도 합법집회이므로 일반 집회참여자에 대한 채증의 필요성이 없다 ▲ 위법한 해산명령과 함께 이루어진 이 사건 채증은 위법하다 ▲ 미신고집회 자체의 증거수집은 전체적인 조망촬영으로도 가능한데, 이 경우 학생들 개개인의 얼굴을 직접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하며, 부당하게 심리적 위축을 가해 집회를 종료시키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UN인권이사회는 '집회의 적절한 관리방법'(A/HRC/31/66)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 채증장비를 통한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은 불법적인 침해가 일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하여야 함.
- 집회참여자들에 대한 채증은 위축효과(chilling-effect)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집회를 위협하거나 제한하는 목적의 촬영행위는 허용될 수 없음.
- 집회에서 개인정보 수집은 평화적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기준은 특별히 더 높아야 함.

평화 집회여도 '잠재적 범죄' 있다? 
 
2014년 5월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거리행진 도중 청와대로 가자며 도로를 점거하자 경찰이 캠코더로 촬영(채증)을 하고 있다.
▲ 대한민국은 "채증 공화국" 2014년 5월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거리행진 도중 청와대로 가자며 도로를 점거하자 경찰이 캠코더로 촬영(채증)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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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채증이 합헌이라고 한 헌법재판관 4명은 말합니다.

"새로이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을 발견하기 위하여는 촬영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새로이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혹시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집회에 참여하였던 학생들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경찰이 7대의 채증카메라를 들어올리자 학생들은 어찌할 수 없는 압박감과 두려움 속에, 하나둘 집으로, 학교로 흩어졌습니다. 이 학생들은 헌법재판소에 '새로이 불법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들, 잠재적 범죄자들이었습니다. 평화적 집회를 하는 이들의 인권은 뒷전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에 묻습니다. 법을 지키며 평화롭게 행진하는 국민이 잠재적 범죄자인가요?

태그:#경찰 채증,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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