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람차>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관람차> (2018) 포스터

<대관람차> (2018) 포스터 ⓒ 무브먼트


<대관람차>라는 제목을 보고서, 대관람차 안에서 연인이 키스하는 장면을 떠올린 관객도 있을 듯하다. 아쉽게도 그런 신은 나오지 않는다. 강두가 처음 전달받은 대본에는 로맨틱한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루나(호리 하루나)의 나이, 남녀 배우의 조화를 고려해 모든 멜로 장면을 삭제했다. 즉흥적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반영한 결과였다.

결과적으로는 그래서 더 좋지 않았나 싶다. <원스> <비긴 어게인> 같은 음악을 매개로 한 멜로가 아닌, 성장 드라마 같은 영화이다. 상처를 치유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오사카 배경으로 그렸다. 이희섭 감독도 사실적인 화면보다는 약간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화면을 의도했다고 한다. 서로 결은 완전히 다른 영화지만 풍광이 아름다운 장면에서 션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많은 이야기를 하며 다 같이 만든 영화라서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희섭 감독이 시사회 후 관객과 만나는 자리에서 소회를 밝혔다.

<대관람차>는 독립 영화 치고는 과감하게 올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했다. 백재호 감독이 각본과 배우 디렉팅 위주 연출, 이희섭 감독은 촬영감독을 겸하며 미장센과 콘티를 맡는 식으로 공동연출을 했다.

공동연출을 맡은 두 감독이 일본어에 유창한 것도 아니었다. 음악감독은 스노우가 배우를 겸하여 맡았다. 영화에 쓰인 대부분의 일본어 곡은 스노우의 자작곡이다.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스노우의 '끝의 세계'는 발표 후 20년 정도 부르지 않던 곡인데 이번 영화를 통해 재조명 받았다. 두 감독은 서로가 많이 달랐지만, 루시드 폴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사운드트랙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루시드 폴의 음악 비중도 상당하다. 

"루시드 폴의 노래를 들으며 오사카를 걷고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하고 편집한 것이 지금의 <대관람차>이고, 그의 음악이 들리고 보이는 영화가 되길 희망했습니다."

백재호 감독은 이렇게 전했다. 처음부터 그의 음악을 쓸 수 있었기에 만든 이야기이다. 만약 루시드 폴의 노래를 삽입곡으로 허락받지 못했다면 <대관람차>의 색채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루시드 폴과 친분이 있는 이종언 프로듀서의 공이다.

지대한(대정 역)은 이종언 프로듀서와 친구이며, 직접 강두에게 시나리오를 전했다. 또 지대한은 백재호 감독에게 연출 제의를 했고, 백재호 감독은 다시 이희섭 감독을 공동연출로 제의했다. 조감독과 조명감독도 이전 작품 <산타바바라>에서 같이 작업했던 친구들이다. 영화가 시종 따뜻한 톤을 유지하도록 하는 힘에는 시나리오, 장소, 카메라 촬영, 후반 작업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친구처럼 가까운 이들이 모여서 작업을 했기 때문은 아닐까. <대관람차>의 특유의 톤이 만들어진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대관람차> (2018) 스틸컷

<대관람차> (2018) 스틸컷 ⓒ 무브먼트


우주 미아가 된 명왕성

<대관람차>를 두고 슬로우 뮤직 시네마라는 명제를 붙였다. 요즘은 격무에 시달리며 열심히 돈을 모으기보다는 일과 삶의 밸런스를 소중히 하는, 속칭 워라벨을 중요히 여기는 시대다. 회사에 휘둘리기보다는 꿈을 위해 사표를 던지고, 조금 적게 벌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하는 젊은이도 많다. 우주는 꿈을 추구하는 것은 불안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그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우주가 입은 옷에는 실제 우주와 관련된 것이 많다. 우주가 어릴 때 했던 밴드 이름도 '우주 미아'고, 심지어 영화의 제작사는 '우주 레이블'이다. 왜 우주인가? 삽입곡 중에 루시드 폴의 명왕성이 있는데. 명왕성은 2006년 태양계 행성 지위를 박탈당했다. 명왕성의 가사에도 그런 내용이 잘 표현돼 있다. 
그 누구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 밤
가장 멀리 있어도
가장 빛나고 싶던
이 조그만 몸은
갈 곳이 없으니
난 다시 홀로
허공에 남아버렸어

마치 명왕성이 우주에서 덩그러니 미아가 된 것 같다. 때로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것 같고, 홀로인 것 같다.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우주는 술자리에서 자신이 탈선한 것 같다고 말하며, 돌아갈 곳이 있는 열차에 탄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탈선이 아니라 열차에서 내린 거예요. 이제부터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하루나가 우주에게 건넨 말이다. 
 
 <대관람차> (2018) 스틸컷

<대관람차> (2018) 스틸컷 ⓒ 무브먼트


물이 되는 꿈, 우주가 꾸는 꿈

백재호 감독은 관객과 대화에서 영화 속 인물이 전부 다 우주일 수도 있고, 각 인물들도 사실 우주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각 종교에서 다루는 우주적 자아에 대한 개념과 연관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인터뷰에서 두 감독은 SF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영화를 해석하는 데에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상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음악 영화가 아니라,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SF적 해석도 가능하겠다.
물, 비가 되는 꿈
내가 되는 꿈
강이 되는 꿈
다시, 바다
바다가 되는 꿈
하늘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백재호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물이 되는 꿈'을 염두하고 썼다고 한다. 루시드 폴 '물이 되는 꿈' 가사의 일부이다. 물질이 서로 순환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까지 꿈에 빗대어 말하는 것 같다. 대관람차도 한 바퀴 원을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선박 사고로 실종된 대정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은유가 될 수 있고, 하루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연관이 있다. 각 개인은 갑자기 눈 앞에 닥쳐온 국가적 재난, 자연적 재앙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사회가 아무리 발전하고, 기술이 뛰어나기로 손꼽히는 나라여도 감당할 수 없는 사고는 항상 있어왔다. 때로는 사고라기보다는 인재에 가깝기에 사람들에게 더욱 큰 슬픔을 안겨줬다.

감독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대화의 복원을 제시한다. 우주는 미숙한 일본어 실력을 갖고 있지만, 먼저 다가가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이들은 공동체라 하기에는 느슨하고 남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가까운 사이다.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서로 진심으로 소통하고, 음악이 그 매개체가 된다. Pier 34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온기가 있다.

우주는,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텐포산(음독은 다르지만 자막 표기를 따랐다.)이 어디 있는지 물어본다. 노인은 선문답처럼 구름이 아름답다는 대답을 한다. 어느 날 우주는 노인을 다시 만난다. 노인은 바로 이곳이 텐포산이라고 말한다. 우주는 꿈은 멀고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발 밑에 있었다. 텐포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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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를 씁니다. 블로그에 동시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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