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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 유가족 9월 4일 순천역 광장에 마련된 여순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위해 마련한 캠프 앞에서 유가족인 장홍석 씨가 호소하고 있다.
▲ 여순 유가족 9월 4일 순천역 광장에 마련된 여순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위해 마련한 캠프 앞에서 유가족인 장홍석 씨가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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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 아래 한 마을이 군인이 저지른 불로 일순 잿더미로 변했다. 엄마를 잃고,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며 겨우 목숨을 건진, 그 때 그 아이는 노인이 된 지금도 여순 특별법 제정을 부르짖고 있다.

순천역 광장에 캠프가 꾸려지던 9월 4일, 파란 하늘에는 구름만 느릿느릿 움직였다. 전날 온종일 쏴쏴 쏟아지던 장대비로 젖은 세상은 쨍한 햇살에 보송보송. 2시 반이 가까워지자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전남 낙안면 신전리에서 양봉업을 하는 장홍석(72)씨는 70년 전 추석 이튿날인 음력 8월 17일에 임신한 형수의 등에 업혀 모친의 죽음을 목격했다. 모친은 45세에 그를 낳고, 47살에 사망했다. 당시 모친을 포함한 주민 22명은 수습할 시신마저 온전치 못했다. 군인들이 사람들을 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집에 몰아넣고 총살한 후 집도 불태워, 비녀나 가락지가 있어야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장 씨는 가난한 오지 농촌마을에서 부모와 형수랑 함께 살았다. 터울이 많은, 형을 비롯한 젊은 남자들은 낮에는 경찰이, 밤에는 '반란군'이 지배하는 흉흉한 시절에 어느 쪽이든 붙잡히면 죽을까봐 떠나서, 마을엔 부녀자와 노인들만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유일하게 젊은 두 명은 머슴살이 하다가 명절이라 고향집에 왔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

측은해서 도와줬는데... 잿더미가 된 마을

'반란군'은 이웃마을 14살 문 군이 똘똘한 데다 어려서 경찰의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연락병으로 삼았다. 어느 날 경찰이 쏜 총에 소년이 맞자, 이 마을주민들에게 돌봐 달라고 했다. 주민들은 애가 측은한 데다, 행여 말을 거역하면 해코지당할까 싶어 소년을 거두었다. 그리고 겨우 입에 풀칠하는 처지에도 이 집 저 집에서 올게쌀에 감도 따다 먹이고 약초로 치료도 하며 정성으로 돌봤다.

그 덕에 소년이 제법 거동을 하게 되자, 승주읍에서 한약방을 하는 할아버지에게 간다며 떠났다. 그런데 승주 관동마을 앞을 지나가다 낯선 이의 등장을 경계한 이들과 실랑이가 벌어져 몰매를 맞았다. 소년이 "이 새끼들, 우리 '유(類, '반란군')' 데려와서 쏴버리겠어"라고 반항하자, 이 말을 들은 면사무소 직원이 '반란군'과 내통하는 놈이라고 신고를 했다.

훤히 보름달이 뜬 추석 이틀 밤, 군인들이 봉홧불을 피우고 마을을 에워싼 후 주민들에게 마을 가운데로 모이게 했다. 그리고 67살 이장의 두 팔을 뒤로 묶은 후, 수로에 발로 차서 넣어 물고문하며 "빨갱이와 내통한 것을 실토"하라고 윽박질렀다. 그래도 이장이 모른다고 하자, 소년을 데리고 와서 협조한 이들을 가리키게 했다.

그러자 소년이 돌변하여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할머니에게도 발로 툭툭 차며 "감을 주었다", "여긴 올게쌀 먹여줘"라고 고자질했고, 장 씨의 모친도 그중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형수는 임신한 몸으로 장 씨를 업고 있다가 '손가락총'(손가락으로 대상을 지목하는 행위)을 받지 않는 무리로 옮겨 다니며 목숨을 겨우 건졌다.

군인들은 처형 후에 아예 마을 곳곳에 불을 질러 32가구짜리 마을은 결국 재만 남게 되었다. 어찌나 시신 타는 악취와 탄내가 진동하여 멀리 사는 이웃마을도 공포에 떨었다. 장 씨의 부친을 비롯한 주민들이 외양간에 불이 붙어 소가 울부짖고 날뛰자, "사람이야 죄가 있다지만, 저 소가 뭔 죄가 있나"라며 풀어주길 청했다. 소를 구출해 나가는 틈에 사람도 목숨을 건졌다.  

장 씨는 그래서 가난한 우리 마을이 모두 새집이 되었다며, 그 사건 후 다들 집도 없으니 이리저리 떠돌며 목숨 부지하고, '장리쌀'(쌀 한 가마니를 빌리면, 다음 해 추석 무렵에 한 가마니 반을 갚아야 했다)에, 집 짓느라 또 빚을 져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부친이 어린 아들 키우며 일 나갈 수 없어, 완도에서 온, 자식 둘 딸린 50대 여자와 재혼을 했는데, 새엄마가 구박하고, 배다른 20살 형이 사고를 쳐서 편할 날이 없었노라고.

결국 70년 전 빨갱이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인정에 사람 도리를 했던 이들마저도, 국가폭력으로 희생되었다. 그런데 그 비극은 그 죽음에만 머물지 않고 가족, 다른 사람들의 일생마저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이제라도 국가가 직접 나서서 이 비극의 수레바퀴를 멈춰야 할 책임이 있다.

유족들, 특별법 제정 거듭 호소
 
여순 특별법 제정 캠프 개소식 9월 4일 전남 순천시 순천역 광장에서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가 특별법 제정을 위해  전국민적 관심을 촉구하며 캠프 개소식을 열었다.
▲ 여순 특별법 제정 캠프 개소식 9월 4일 전남 순천시 순천역 광장에서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가 특별법 제정을 위해 전국민적 관심을 촉구하며 캠프 개소식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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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순천과 여수, 광양, 구례, 보성, 고흥 등 동부 6군 지역 시민단체 등이 하나로 뭉쳐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이하 여순특별법범국민연대)를 만들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캠프 개소식을 열었다.

캠프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두 팀으로 나누어, 캠프 지킴이를 자원한 단체와 개인이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10월 말까지 받는다. 여순특별법범국민연대는 10월 19일 청와대 국민청원과 20일 상생의 범국민띠잇기도 진행할 예정이다. 

순천역 광장에 캠프가 꾸려진 이유는 제14연대가 이곳을 기점으로 전남 동부지역으로 진출한 역사적 장소이자, 관광객 등 유동인구가 많아 정보 공유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는 1948년 10월 19일에 제주4.3사건 진압 출동을 거부하고,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봉기하였다.

정병철 순천유족회 회장은 "불신과 내분이 가장 무섭다"며, 아시안게임 축구의 손흥민 선수 일화를 언급하며,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는 "서로 배려하고 뚜렷한 목표를 위해 서로 하나가 되어 뭉쳐야"한다고 호소했다. 

"특별법도 없어... 정치인으로서 부끄럽다"
 
순천시의회 서정진 의장 9월 4일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가 순천역 광장에 마련한 캠프 개소식에서 순천시의회 서정진 의장이 격려사를 전하며, 순천시의회가 적극 도울 것을 피력했다.
▲ 순천시의회 서정진 의장 9월 4일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가 순천역 광장에 마련한 캠프 개소식에서 순천시의회 서정진 의장이 격려사를 전하며, 순천시의회가 적극 도울 것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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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진 순천시의회 의장은 "역사적 맥락이 동일한 4·3사건은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순사건은 아직도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적하며 "지역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2016년 11월 본회의에서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의 재추진 결의안을 채택, 드디어 3일 '여·순사건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고 전했다. 또 순천시의회가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시민의 뜻을 정부와 국회에 전달"하고 "희생된 민간인과 유가족의 피해보상과 명예회복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알렸다.

개소식에는 연대한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순천시의회 의원, 박병섭 순천여고 역사교사의 인솔로 역사 동아리 학생 12명도 동참하여 각 지역에서 온 유가족들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행사 마지막에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기원하며 팥시루떡 위에 놓인 커다란 양초에 불을 켜고 개소식을 축하하며 결의를 다졌다.
 
특별법 제정을 기원하는 유가족들 9월 4일 순천역 광장에서 여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열린 캠프 개소식에서 유가족들이  준비한 팥시루떡에  불을 켜며 기원하고 있다.
▲ 특별법 제정을 기원하는 유가족들 9월 4일 순천역 광장에서 여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열린 캠프 개소식에서 유가족들이 준비한 팥시루떡에 불을 켜며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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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