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죄 많은 소녀> 포스터.

영화 <죄 많은 소녀>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올해의 배우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던 영화 <죄 많은 소녀>가 5일 서울 용산CGV에서 언론에 선 공개됐다. 영화제 당시에 비해 음악과 아주 작은 장면이 편집된 최종 개봉 버전이었다.

영화는 같은 반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돼 온갖 수모를 당하는 영희(전여빈)를 중심으로 그 주변 사람들의 행동과 말의 변화를 밀도 높게 그린 작품. 연출을 맡은 김의석 감독은 실제 자신이 겪었던 사건에서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

영화엔 자식을 잃은 부모, 의심 받으며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영희, 그런 그들을 향해 충고하거나 때론 윽박지르는 어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김의석 감독은 "소중한 친구를 잃은 뒤 상실감이 큰 상태였는데 그때 충격을 받은 것 같다"며 "친구를 완벽하게 옹호해주지 못하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제 모습까지 보게 됐다. 생각보다 비열하고 치졸한 방식으로 살고 있다고 느꼈다"고 당시 소회를 어렵게 전했다.

그런 이유로 영화에 등장하는 각 캐릭터들은 감독이 당시의 생각과 감정을 물려받은 결과물이었다. "누군가 사망한 후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자신을 의심하며 발버둥 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감독은 "영화 캐릭터들은 죄가 없어서 자신을 변호하는 게 아닌 누구보다 자신을 자책하고 있고 죄라는 걸 떠안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썼다"고 말했다.

"연기하신 배우 분들도 결백하기에 그렇게 (영희에게) 발악한 게 아니다. 그렇게 보시면 1차원적으로 느껴지실 것이다. 캐릭터가 가진 죄책감의 무게를 소화한 후 보인 연기다. (중략) 영화 속 캐릭터들은 말을 마치 자신들의 무기인 것처럼 듣는 사람이 아닌 자신이 중심이 돼서 던진다고 생각하고 대본을 썼다." (김의석 감독)

영희가 돼야 했던 전여빈은 "감독님과 많이 대화하며 영희라는 캐릭터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며 "인간이 갖고 있는 절망을 바라보려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감정적으로 끝까지 가야 하는 등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연기였다. 전여빈은 "인간이 바라는 희망은 껍데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 안에 알맹이를 숨기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극중 영희의 친한 친구지만 중요한 순간 거짓말을 하며 위기에 빠뜨리는 한솔 역의 고원희 역시 고민이 많았다. "(영화 속 캐릭터와 비슷한) 개인적인 일을 많이 겪었는데 오디션 때 그 얘길 감독님께 했었다"며 그는 "제겐 연기가 아닌 진짜였기에 캐릭터적으로 접근하기 싫었고, 혼자 자신을 몰아가며 연기했다. 그래서 촬영 때 굉장히 힘들었는데 영화를 계속 보다 보니 좋았던 시간이었던 같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반 친구 다솜 역의 이봄은 "다솜이 극중 계속 나오진 않았지만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순간에도 영화 속 감정 흐름을 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극중 유리 역할을 맡은 이태경 배우와 촬영 쉴 때도 상황극을 하면서 감정을 잡아 갔다"고 당시 노력을 전했다.

어른들의 모습들
 
 <죄 많은 소녀>의 한 장면

영화 <죄 많은 소녀>의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영화 속 어른들의 모습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딸을 잃은 엄마 역으로 배우 서영화, 담임선생 역으로 서현우 등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 딸의 죽음에 대해 분노하며 영희를 감정적으로 몰아붙이는 설정 등에 서영화는 "시나리오를 봤을 땐 영희의 감정만 따라갔는데 직접 결과물을 보니 한솔, 담임, 교장선생님까지 그 인물들이 다 보이더라"며 "그래서 시나리오보다 영화가 더 좋았다"고 전했다.

이야기 자체가 묵직했고, 어두웠기에 현장 자체에서 배우들이 섣불리 감정을 흔들 수 없었다. 서영화는 "각자의 몫이 있어서 이 현장에선 아무도 서로 도울 수 없었다"며 "제가 선배라고 상대 배우를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게 거짓말 같았다. 적정선을 유지하되 그 이상의 친근함은 피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서현우는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담임은 신혼에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었다"며 "학생의 죽음은 담임에게도 시련이기에 그 아픔을 넘어서 다음 단계로 가려는 사람을 표현하려 했다"고 캐릭터를 설명했다. 

"제 개인 경험이기도 하지만 지인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 가서 눈물을 흘리다가도 거울에 자기 얼굴 비춰지면 매무새를 가다듬는 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그럴 수밖에 없구나. 피해자가 아닌 어른들이었기에 일상성을 담으려 노력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와이프를 떠올리면서 연봉은 얼마인지, 또 그 사건을 빨리 과거로 만들어 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서현우)

현장에선 영화에 나오는 일종의 동성애 설정, 여성 학생들의 감성을 세심하게 표현한 것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김의석 감독은 "특별히 (동성애) 코드를 넣거나 그걸 염두에 둔 건 아니고 중성사회라고 생각했다"며 "(남성, 여성이 아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인 만큼 드라마가 흘러가는 대로 쓰다 보니 나온 설정"이라 답했다. 

아울러 감독은 "자본 규모로는 작은 영화인데 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 스태프 분들의 고민과 재능은 환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들 치열하게 영화를 생각했고, 뭔가에 다가가려고 엄청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죄 많은 소녀>는 오는 1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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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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