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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희네 슈퍼 옆 일제가 판 방공호 동굴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해금연주가 손하늘.
 연희네 슈퍼 옆 일제가 판 방공호 동굴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해금연주가 손하늘.
ⓒ 권영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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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이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사흘 동안 전남 목포시 곳곳에서 열렸다. 한국의 지역축제는 거의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사실상 주관한다. 하지만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은 한국에서 민간이 만드는 유일한 지역축제다. 2001년부터 시작했으니 18년째 민간 주도의 지역축제가 목포에서 해마다 그 마당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을 이끈 손재오 예술총감독. 지난 3일 초저녁 유달산 자락에 있는 유달예술타운에서 그를 만났다. 예술타운 마당에선 축제 주관단체인 '극단 갯돌(대표 문관수)' 단원들이 뒤처리를 하느라 분주했다. 손 감독 역시 피로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손 감독은 기자의 거칠고 바쁜 질문에 마치 옴니버스 영화처럼 토막토막 자르고 다시 얼개를 짜서 대답했다.

이번 목포마당페스티벌의 메인 프로그램은 '목포 로컬 스토리 5선'. 근대 100년의 역사를 지닌 목포 원도심 공간에서 연출된 프로젝트 공연이었다. 손 감독에게 '지역'이라는 우리말을 안 쓰고 '로컬'이라는 영어를 쓴 이유를 물었다.

"'지역'이라는 단어가 중앙과 반대되는 대립 용어로 쓰이면서 늘 소외나 당하는 변방을 생각게 하더라.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언어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로컬(local)'이 적합하겠다고 판단했다. 지역 이야기를 축제화 시키는 방식이 중요하다.

목포는 피해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건물들이나 이런 것들이 근대문화재 등으로 살아있기 때문에 그걸 역이용해서 접근하는 것이 낫다. 일제와 100년, 120년 운명적으로 만났다. 잘 이용하면 목포 이야기 즉, 우리 시민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로컬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해서 5개의 스토리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목포가 내준 다섯 개의 공간에서 다섯 개의 로컬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손 감독은 서산노인당에서 펼쳐진 '기브 콘서트(Give Concert)'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서산노인당에서 '클래식으로 듣는 목포' 공연을 하고 있는 뮤즈앙상블팀.
 서산노인당에서 "클래식으로 듣는 목포" 공연을 하고 있는 뮤즈앙상블팀.
ⓒ 권영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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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 연희네 슈퍼 앞에서 거리공연을 하고 있는 선경진댄스스포츠팀.
 목포 연희네 슈퍼 앞에서 거리공연을 하고 있는 선경진댄스스포츠팀.
ⓒ 권영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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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공간을 선정할 때 그 공간에 걸맞은 감성과 영성의 그림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 자체가 로컬의 미학을 담아내는 작업이니까. 서산노인당은 어린 나이에 조선소 견습공으로 시작해 굴지의 사업가로 성장한 김덕진 사장이 사회기부 차원에서 지어서 기부한 곳이다. 이 분은 당신이 직접 서산동에 사시면서 수돗물도 제대로 공급 안 되는 동네에 물을 길어다 배급해주는 등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사회사업을 많이 하셨다. 서산노인당은 나눠주는 좋은 일하는 집이다. 그래서 주는 콘서트, 기브 콘서트다."

영화 <1987>로 유명해진 '연희네 슈퍼' 앞에선 '연희네 슈퍼-꿈꾸는 동네'라는 공연을 했다. 골목에선 거리공연을 했고, 일제가 방공호로 판 동굴에선 동굴 콘서트를 했다. 손 감독은 일제가 판 방공호 동굴에서의 해금 공연을 설명하며 "목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공연"이라고 했다.

"영화 촬영지가 된 이후 동네는 뜨고 있는데 주민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요즘 또 도시재생 이야기도 돌고.... 관광과 주민공동체와 도시의 미래가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 이야기하면 좋겠다. 동네가 뜨면 관광객은 늘어나지만 남는 건 여행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밖에 없다. 주민도 수익이 생기고 이 마을공동체가 깨지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연희네 슈퍼 앞에서 거리공연하고 일제가 만든 방공호 동굴 안에서 공연을 했다.

특히 동굴에서의 공연엔 거친 미감이 있다. 갇혀있는 공간인 동굴에서 입체적인 소리의 울림이 마음을 울리는 게 있다. 구속된 신명, 갇혀있는 신명이랄까.... 

경동성당에선 '시민야외극 멜라콩(Melakong)'이 선보였다. 목포 출신 석건축 명장인 손양동씨가 1954년에 완공한 경동성당, 사재를 털어 다리를 만드는 등 평생을 봉사와 헌신으로 산 목포시민 멜라콩 박길수(1928-1989)씨, 손양동 장인이 만든 성당에서, 멜라콩 박길수의 삶을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공연한 목포시민들.

각각이 하나의 거대한 서사구조를 이루고 있는 세 개의 이야기 하나로 어우러져 또 다른 서사를 낳았다. 역시 목포에서나 볼 수 있는 서사구조다.('멜라콩'은 박길수씨의 별명으로 영화에 나오는 사무라이 부하의 극중 이름인데 허약하고 왜소한 체격이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 기자 주)
 
 경동성당에서 '시민야외극 멜라콩'을 공연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는 시민배우들.
 경동성당에서 "시민야외극 멜라콩"을 공연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는 시민배우들.
ⓒ 권영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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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희네 슈퍼 앞에서 거리공연을 하고 있는 코트디브아르 공연팀.
 연희네 슈퍼 앞에서 거리공연을 하고 있는 코트디브아르 공연팀.
ⓒ 권영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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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성당은 진짜 이쁘다. 그 이쁜 공간에서 시민들이 '헌신하는 시민, 멜라콩'이라는 시민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이야말로 이번 축제가 지향하는 가치를 잘 전달해준 것이다. 시민들이 공부하면서 시민 야외극을 만들고 있다. 꾸준히 3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데 새해마다 새로운 시민배우가 등장하는, 말 그대로 '로컬 축제'다.

관계 공동체가 제일 좋은 것 같다. 목포는 마을문화와 마을공동체의 원형이 살아있다. 공동체는 귀찮고 준비할 게 너무 많다. 시간도 맞춰야 하고 여러 요소를 서로 배려해야 한 편의 연극이 무대에 올려진다. 그런데 그런 관계 공동체를 유지하며 목포 시민들이 야외극을 올리고 있다. 대단하고 멋진 일이다. 세계적으로 문화로 유명한 소도시들이 많은데 목포도 그런 도시 중 하나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시민들이니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옛 목포형무소 터에서 열린 '목포형무소 수형 제주4.3희생자 진혼제'. 한국전쟁 발발 직후 목포형무소에는 4.3항쟁 관련 수형자를 비롯 약 500~600 명의 수형자들이 있었다. 목포형무소는 열악한 형무소 환경을 견디지 못한 수형자들이 탈옥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또 한국전쟁 발발 직후 4.3관련자를 비롯 수백 명이 이유없이 총살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진혼제는 제주와 목포, 서러운 이름 두 개가 만나 서로 넋풀이, 살풀이 하는 마당이었다.

"형무소 진혼제는 목포대 사학과 최성환 교수가 오래 전부터 '이거는 꼭 좀 하라'고 재촉했었다. 70년 된 4.3을, 목포에서 끌어내 고(苦)를 푼다고 하니 4.3평화재단 등 제주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유가족들은 제사 음식을 모두 제주산으로 만들어서 가져오셨고,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하시는 분들이 흔쾌히 오셔서 굿을 해주셨다.

축제는 씻김과 신명이다. 풀어낼 고가 없으면 축제도 없다. 맺힌 게 있으니 이날 잡아서 풀자 하는 게 축제다. 우리 축제도 4.3의 맺힌 고를, 형무소 터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풀고 싶었다. 제단 앞에 세워둔 소원나무는 신목이고 소원나무다. 이 소원나무를 개막식장에 가지고 들어와 축제 기간 내내 세워두었다. 4.3의 한 맺힌 영들이 따라오셔서 한 사흘 재미있게 놀다 가시라, 무대에 올린 굿 한번 재밌게 보고 가시라 하는 마음이었다."

진혼제에 참석했던 이들의 소원이 담긴 소원나무이자 보이지 않게 다녀갔을 4.3원혼들의 바람이 촘촘하게 걸린 신목일 소원나무는 축제가 끝나고 손 감독의 사무실에 서 있다. 손 감독이 사무실 출입문에 기대 담배를 피웠다.
 
 3일 초저녁, 목포 유달산 자락에 있는 유달에술타운에서 만난. 손재오 예술총감독. 인터뷰를 하다가 사무실 출입문을 열고 담배 한 대를 피우는 뒷모습에 상념이 가득했다. 18년을 이어온 무게 때문이었을까.
 3일 초저녁, 목포 유달산 자락에 있는 유달에술타운에서 만난. 손재오 예술총감독. 인터뷰를 하다가 사무실 출입문을 열고 담배 한 대를 피우는 뒷모습에 상념이 가득했다. 18년을 이어온 무게 때문이었을까.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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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째 순수 민간 주도로 치르는 지역축제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 특히 예산 문제가 심각하다. 2017년엔 100개 작품을 올렸지만 올해엔 44개 작품을 올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가족과 함께 즐기는 지역축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연 프로그램이 많아야 한다. 손 감독은 "돈이 없으니 많이 초대를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목포의 아이들이 아름다운 문화 감성의 충격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손 감독은 또 "전국 공연을 다니면서 적금 넣듯 모아서 축제를 준비하니 정작 단원들의 월급이 밀리고, 1인 10역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는 극단 갯돌 단원들에게 나와 문관수 대표는 죄인"이라며 "그게 제일 슬프다"고 했다. "그래도 하실 거죠?"라고 물었다.

"글쎄, 글쎄... 올해는 특히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18년째니까 20년만 채우고 공중분해를 시킬까 그런 생각도 들고.... 민간의 축제를 살려야 도시가 산다. 민간이 주도하는 축제에는 분명한 가치와 정체성, 방향과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지자체가 주최하는 지역축제들을 보라. 주제도 없이 전국이 다 똑같다. 공무원들은 행정전문가니 전문적인 일을 해라, 행정지원 같은. 돈 몇 푼 주고 간섭이라는 간섭은 다 하면서 축제 망치지 말고.

그래도 18년을 하다 보니 전국에서 마니아가 생겼다. 몇 시에 무슨 공연한다고 하면 미리 딱 와서 앉아있다. 이 전국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목원동과 여타 목포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것도 하나의 스토리가 돼버렸다. 이게 도시의 미래다. 공간과 기억, 꿈이 어울려 노는 것. 옛것에 우리 스스로 우리 도시를 입혀 이야기할 때 외지인들의 시선은 굉장히 이쁘게 다가온다. 그런데 왜 우리가 목포가 심하게 자책하나, 왜 신파주의 감성에 빠지나. 쓸 데 없이 다른 도시 모델 카피하려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우리들의 도시 목포로 깊이 들어가면 된다. 이게 우리 도시 목포의 미래가 아닐까."

손 감독은 "대중성과 예술성, 과거와 현재와 미래,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함께 가고 싶다"라고도 했다,

"어차피 '로컬'에 발을 디뎠으니 경쾌한 중량감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 그 무게가 솜털처럼 가벼운, 그런 작품들과 공간들에 무궁무진한 스토리로 채워진 도시 목포였으면 좋겠다. 아직도 너무 많은 이야기가 목포 곳곳에 숨어있다. 그 숨어있는 목포의 이야기, 시민의 이야기들을 계속 캐내야 한다. 함께 가고 싶다. 시민의 역사를 다시 쓰고 싶다."

로컬리스트 손재오가, 다른 곳이 아닌 목포가 내준 마당에서, 그 누구가 아닌 목포시민과 함께 세계를 끌어와 신명나게 계속 놀 수 있을까. 목포시민들과 극단 갯돌 단원들이 18년 동안 힘겹게 이어온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할 수 있을까. 
 
 옛 목포형무소 터에서 열린 '목포형무소 수형 제주4.3희생자 진혼제'의 한 장면.
 옛 목포형무소 터에서 열린 "목포형무소 수형 제주4.3희생자 진혼제"의 한 장면.
ⓒ 권영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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