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허재 감독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18.8.30

▲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허재 감독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18.8.30 ⓒ 연합뉴스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동메달을 따내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일정을 모두 마쳤다. 한국은 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GBK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3위 결정전에서 대만을 89-81로 이기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표팀의 상황을 고려하면 동메달은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처럼 보인다. 홈에서 열린 지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지만 이번 대회를 앞두고서는 오세근, 양희종, 김종규, 이종현 등 당시 우승주역들이 부상으로 대거 낙마하며 선수층이 얇아졌다. 특히 빅맨진의 공백이 심각해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높이의 약화'도 두드러졌다. 대표팀의 유일한 패배는 준결승에서 우승후보 이란에 진 것이었고, 최종적으로 3위를 차지했으니 체면치레는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라건아의 압도적인 활약... 아쉬웠던 점은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다르다. 귀화선수 라건아가 가세하며 저우치(중국)-하다디(이란)과 함께 이번 대회 3대 빅맨으로 꼽힐 만큼 압도적인 활약을 펼쳐줬고, 골밑 파트너인 이승현도 언더사이즈 빅맨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 우려했던 높이 문제는 심각하지 않았다. 김선형-박찬희-최준용의 가드진이나 이정현-전준범-허일영으로 이어지는 슈터진은 1년 전 아시아컵과 비교해도 전력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은 항상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었고, 이번 대회에서 역시 최정예 전력을 내보냈다. 한국 보다 앞서있다고 할 만한 상대는 이란과 중국 정도였다. 준결승까지 대진운이나 대회 일정도 이전 대회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었다. 더구나 이번 아시안게임은 대표팀이 전임 감독 체제로 바뀌고 허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지 2년 만에 나서는 대회로 그간의 결실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은 대회 내내 오히려 '라건아의 원맨팀'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경기 내용이나 운영면에서도 오히려 짜임새있는 수비 로테이션과 3점슛으로 호평받았던 작년 아시아컵보다 퇴보했다는 평가도 많았다. 아시아컵에서 종반까지 대등한 승부를 펼쳤던 이란을 상대로 이번엔 리드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완패를 당한 것도 뼈아프다.

허웅-허훈 논란, 결국 증명하지 못한 발탁 이유

드리블 하는 허웅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웅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2018.8.30

▲ 드리블 하는 허웅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웅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2018.8.30 ⓒ 연합뉴스


사실 대표팀은 이번 대회 선수 구성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허재 감독의 두 친아들인 허웅과 허훈을 모두 발탁하면서 '아빠볼' 논란에 휘말렸고 결과적으로 이들은 대표팀의 전력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하면서 오히려 악영향만 남겼다. 허웅은 3점슛 스페셜리스트, 허훈은 리딩능력을 갖춘 포인트가드라는 이유로 허재 감독 부임 이후 줄곧 대표팀에 중용되고 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국제대회에서는 포지션상 단신(허웅 185cm, 허훈 180cm)인데다 수비력도 그리 좋지 않다는 핸디캡이 뚜렷했다. 냉정히 말해 허웅은 팀내에서 이정현-전준범-허일영에 이은 4순위 슈터이고, 허훈은 김선형-박찬희에 이은 3순위 가드에 불과하다.

허웅은 몽골-태국-인도네시아 등 약팀들과의 경기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으나 정작 중요한 필리핀-이란전에서는 침묵했다. 준결승 이란전이야 슈터진 전체가 동반 부진했기 때문에 허웅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 없지만, 애초에 다른 슈터들과 비교할 때 '슛' 하나를 빼면 신장이나 수비 등 특출한 장점이 없는 식스맨에 불과했던 허웅을 논란까지 감수하며 무리하게 데려가야 했던 명분을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허훈은 토너먼트 접어들며 아예 코트를 밟지 못했다. 장신에 힘 좋은 가드들이 즐비한 국제대회에서 공격도 스피드도 특출날 것이 없는 허훈을 활용할 만한 기회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출전시간이 적더라도 유망주들을 국제 경험 차원에서 대표팀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허재 감독은 이번 대표팀 명단 전원을 프로 출신 정예멤버로 구성했다.

더구나 허웅-허훈 논란의 나비효과는 단지 이 두 선수가 '잘했느냐 못했느냐'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결국 허재 감독의 선수운용의 실패로 귀결된다.

활용도가 낮은 허웅과 허훈을 동시에 무리하게 끼워 넣으면서 농구대표팀 전체 엔트리의 활용폭이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빅맨진의 신장이 낮은 대표팀은 포워드나 가드진에라도 장신이나 수비력이 좋은 선수들을 보강하며 좀 더 다양한 전술적 카드를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허재 감독은 2016년부터 대표팀 전임감독을 맡아오며 2년간 KBL과 대학농구 등에서 수많은 유망주들을 테스트 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폭이 좁아진 선수 운용, 전술적 변화도 없었다

라건아 '덩크슛'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라건아가 덩크슛을 하고 있다.

▲ 라건아 '덩크슛'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라건아가 덩크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대회에서 허훈 외에 출전시간이 많지 않았던 선수로는 강상재와 김준일을 꼽을 수 있다. 두 선수는 높이 면에서 라건아와 이승현의 백업 역할을 할 수도 있었지만 허감독은 중요한 경기에서 이들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대표팀은 강팀과의 경기를 사실상 8~9명의 제한된 선수로만 치러야했다.

작년 아시아컵에서 12명을 선수들을 최대한 고르게 활용하는 변화무쌍한 수비 로테이션과 체력전으로 상대를 괴롭혔던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이란과의 준결승전에서 초반부터 수비가 무너지고 2대 2게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에서도 허재 감독이 내놓을 수 있는 전술적 변화는 거의 없었다. 라건아의 개인능력과 슈터진의 양궁농구에 의존하는 패턴은 이란 같은 강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주전과 백업의 전력 차를 고려해도 애초에 경기에 내보내지 못할 선수들을 대거 데려갔다는 것은 허재 감독의 명백한 패착이었다.

'농구 대통령'이라 불리는 허재 감독은 대표팀 전임감독 부임 이후 첫 대회였던 작년 아시아컵에서 3위라는 기대 이상의 호성적을 내면서 경기내용과 전술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거의 모든 면에서 대표팀의 전력이 퇴보한 듯한 내용을 보여줬다. 자신이 쓰는 선수들만 고집하고 새로운 전술변화나 선수발굴에 소홀한 모습은 아쉬웠다.

허재 감독은 자신의 아들 발탁 논란을 둘러싸고 소통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선수발탁에 대한 논란에 대하여 최소한의 공개적인 해명도 거부한 것이나, 심지어 농구계 관계자들의 조언조차 무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가대표 감독의 투명하지 못한 팀 운영과 무성의한 태도는 결국 선수들이나 대표팀 전체에도 부담을 안기는 부메랑이 되기 마련이다. 감독은 성적이 나쁘면 그만두는 것으로 '책임졌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표팀이 거둔 성적은 결과로서 영원히 남는다.

라건아의 원맨쇼가 아니었다면 과연 동메달이라도 가능했을까.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2019 농구월드컵, 2020 도쿄올림픽 등 중요한 대회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농구가 위기의식을 느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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