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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는 8월 첫 대중강좌 <평등을 위한 준비운동>을 열었다. 4회에 걸친 이번 강좌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이 모여, 난민혐오, 여성혐오 등 주요 이슈들로 차별이 발생하는 구조를 읽고, 연대를 위한 반차별 감수성은 무엇일지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이 열기가 10월 20일 평등행진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며, 차제연은 각 강좌에 대한 후기를 연속기고로 전한다 - 기자말
 
평들을 향한 준비운동 제3강, 김순남 교수 '그들은 불청객일까요?'
 평들을 향한 준비운동 제3강, 김순남 교수 "그들은 불청객일까요?"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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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안에는 수많은 차별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불청객이라 불린다. 여성, 장애인, 흑인과 동양인, 성소수자... 이 많은 불청객들의 이름 중에는 내 것인 것도, 내 것이 아닌 것도 있다. 그러나 이 불청객들은 과연 타고나는 것일까? 그들이 가진 속성은 어쩔 수 없이 불청객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그들은 불청객일까요?' 성공회대의 김순남 교수가 묻고 답했다.

그들은 '타고난' 불청객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당연한 결론이지만 불청객은 타고난 존재가 아니다. 사회가 설정한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인해 그 대척점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들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조직적으로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집단이 있다. 그들은 동성애를 규탄하며 동성애자들이 화목한 가정을 결단내고 말거라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화목한 가정, 동성애자들이 박살내려 한다는 그 '정상 가족'은 어디로부터 기원한 것일까?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고정된 성역할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논리와 필연적으로 함께한다. 가정에 부여하는 정상성은 성역할 고정으로 이어지고, 임신과 출산, 가정에 대한 책임을 주부이자 엄마에게 부과한다. 이 성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않는 사람들은 재생산 중심의 미래주의에서 무가치한 존재들이다. 이 무가치함이 성소수자 혐오의 도구가 된다.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것은 꼭 퀴어 퍼레이드에서 드러누워 난동을 피우는 사람들만은 아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것은 나한테 별 의미가 없지만 내 주변에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없었으면 한다는 그 중얼거림은 결국 주변의 성소수자들이 벽장으로 숨어들게 하며, 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의사의 표현이다. 김순남 교수 : "'성소수자도 인간이다'라는 구호는 인간인 적 없던 퀴어들이 인간으로 승인되기를 요청하는 외침이 아니다(강연 자료에서 인용, 시우, 2018). 사회가 원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배제해왔던 존재들에게서 터져 나온 이 외침은 주류를 불안하고 불편하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그것은 사회가 설정한 인간 범주의 확대이며, 동시에 보편적 인권을 지향하고 있다."

'성소수자도 인간이다'라는 구호에서 우리는 그 문구를 통해 확대되는 인간의 범주가 지금까지 어느 지점에 한정되어 있었는지, 누구에 의해 한정되어 있었는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대상에 대한 차별에 맞설 때는 그 차별과 혐오를 통해 어떤 가치가 '정상'이 되고 공고화되는지 묻는 물음표가 필요하다.

보편의 위치를 가질 수 있는 속성들을 규제하는 주류의 보이지 않는 힘을 발견하고 수정하지 않는 한, 소수자들은 소수자 인권운동의 수혜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소수자 인권운동의 최종 목표는 결국 보편적 인권의 확립이므로, 그렇기에 반차별 운동은 기존의 규범을 극복하여 새로운 삶과 존재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창조하는 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권력화된 관계를 재배치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차별은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 인권운동과 성소수자 인권운동으로 소수자 의제를 갈기갈기 분리하는 것, 여성/퀴어/인종으로 한 사람을 범주화하여 바라보고자 하는 것도 권력이 작동한 결과이다. 차별을 재생산하는 권력의 문제를 보이지 않게 하고, 성별 갈등, 세대갈등, 인종갈등과 같은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킴으로써 결국 차별은 또다시 공고화 된다. 이러한 권력의 지배 방식에는 진짜와 가짜 나누기, 수치의 과장과 같은 세심하고도 악질적인 방식들이 포함된다.

김순남 교수 : "여성과 남성이 분리되는 것처럼, 시스 젠더와 트랜스 젠더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처럼 권력은 취급한다, 장애에 대해서 가지는 공포는 장애인들만이 겪는 고민으로 만들고 범주화한다. 비장애 여성의 겨우 자기 몸의 정상성에 대한 극도의 압박을 받는다. 아름다운 몸, 특정한 몸이 되려고 노력할 때, 이 방식에 타자로 배치되는 것이 장애인이다. 권력은 이것을 분리된 문제로 구분한다. 차별은 이러한 문제들을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이러한 권력의 지배방식은 차별을 행하고 당한 사람들 모두에게 깊이 녹아들어있다. 그에 우리는 우리 사회의 주류가 어떻게 결정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비주류를 배제해왔는지 계속해서 신경을 곤두세워야한다. 인권 운동의 주체들이 경각심 없이 받아들인 주류의 논리는 고통 경쟁의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이는 또 다른 차별과 또 다른 불청객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난민 이슈가 한국을 흔들었을 때, 난민들과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고통 경쟁이 반복되었다. 고통의 위계가 아닌, 고통의 연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위 문제에서 사회의 변화는 시민의 자격을 묻는 국가 권력에 질문을 던질 때 피어난다. 권력화된 관계에 질문을 던지고 이를 재배치함으로써 새로운 힘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주인의 도구로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권력에 의해 재생산되는 차별로는 기존의 차별을 엎어버릴 수 없다.

저항운동에서 '급진성'은 행동의 과격이 아니며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관점의 급진성은 고통경쟁에 뛰어들어 고통의 위계를 재생산하지 말자는, 권력의 지배방식에 굴복하지 말아야한다는 강력한 언어가 된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그렇다면 다양한 반차별 인권운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해져야 할까? 김순남 교수는 '정동적 연결성', 교차적인 운동, 소수자 의제의 연결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답한다. 정동적 연결성(Dinshaw, 2007)이란 정체성에 기반한 연결이 아니며, 정체성에 기반한 유사성, 동질성도 아니며 부분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다. 김순남 교수 : "우리가 연결될수록 강하다, 나의 문제가 너의 문제가 동일하다는 것이 아니다. 굉장히 많은 차이와 차별이 우리 내부에도 있지만, 사실 그 차별 자체를 공고히 하는 국가와 권력의 매커니즘 속에서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차별로부터 자유롭더라도 네가 차별당하면 나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회적으로 공동체 전체에 안전하지 못하다, 불안하다는 감각들이 만들어진다. 그 사건 자체가 동일한 피해의 고통은 아닐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감각들이 전이되는 방식 자체에서 우리가 연결된 존재들로서 사회와 세계 속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동적 연결성은 소수자 집단 사이의 접촉을 통해 얻어진다. 주변화된 존재들 사이의 접촉은 규범적으로 상상된 시공간적 질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어떤 한 사람을 그 사람이 가진 속성들로 분할하려 하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모든 속성들을 교차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정동적 연결성을 인지하고 교차하는 인간을 똑바로 바라보며, 소수자 의제를 분리하려 드는 권력을 가시화할 때 우리는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교차적인 나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권리를 둘로 나눌 수 있습니까?" 누군가가 외쳤다. 국가와 사회가 말하는 제도에 포함되는 단일한 대상이 되어야만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차적인 나의 존재로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한다.

김순남 교수 : "우리가 알고 있는 차별금지법, 평등법 등이 이루어진 나라에서는, 당연히 이성애자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는다. 사회 전반적으로 다양한 가족구성원에 대한 인정이 이루어진 나라가 성 평등한 사회이다. 성차별 해소 정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 정책은 여성을 지원하는 제도가 아니다. 성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져야만 인권과 민주주의가 완성된다는 인식론에 기반하여 행해져야 한다. 성소수자가 적고 말고를 떠나서 누구나 온전하게 인권과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관점과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잡한 삶의 조건을 가진 우리는 여성으로서, 장애인으로서, 성소수자로서, 이주민으로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나'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장애여성공감 3.8 여성대회 선언문 중에서). 사회적인 인식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미뤄야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금지법을 통해 인식을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의 혐오와 차별에 맞설 수 있는, 평등한 사회의 기반이 되어줄 차별금지법은 타자에 의해 조각조각 분리된 정체성들이 떨어져 있을 때도, 교차하고 있을 때도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반차별, 보편적 인권 운동이 어디를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하는지 그 방향을 고민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도 많은 질문이 이어졌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제정을 향한 노력, 제정 후 법적 적용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다시 한 번 되새겼다. 한 가지 속성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인간들이 모여 평등한 사회를 꿈꾸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나는 언어와 힘을 믿는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며, 민주주의의 완성과 보편적인 인권을 꿈꾼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내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민주주의가 완성되기를, 보편적인 인권이 보장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다흰님은 차제연에 함께 하면서 이번 대중강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평등UP 기고글은 차제연 홈페이지 equalityact.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차별금지법, #평등, #차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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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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