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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기다리며
이르쿠츠크 기차역
 이르쿠츠크 기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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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식당에서 오래 기다리질 못하고 밤 12시쯤 이르쿠츠크 기차역으로 간다. 이번에도 택시를 이용한다. 기차역은 앙가라강 서쪽에 있다. 기차역에 내리니 주변이 한산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대합실로 들어간다. 우리도 대합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밤이 되니 기온이 떨어져 점퍼를 하나 걸쳐야 한다. 사람들의 표정이 무뚝뚝하다. 전광판을 보니 우리가 탈 기차가 3시 17분에 도착 3시 52분에 모스크바 방향으로 떠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시간 여유가 있어 시베리아 횡단철도 관련자료를 살펴본다. 먼저 E-Ticket을 확인한다. 영어로 Check Coupon 또는 Boarding Coupon으로 되어있다. 출발과 도착시간을 보니 7월 27일 22:52 이르쿠츠크 출발, 7월 29일 05:12 노보시비르스크 도착이다. 이 시간은 모스크바 기준이기 때문에, 현지시간으로는 이르쿠츠크 28일 03:52 출발 노보시비르스크 09:12 도착이다. 모스크바와 이르쿠츠크는 5시간, 모스크바와 노보시비르스크는 4시간 시차가 있다.
우리가 탄 시베리아 횡단열차: 선로 왼쪽
 우리가 탄 시베리아 횡단열차: 선로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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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기준시간은 모스크바다. 차편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운행하는 099ЭA다. 좌석은 5번 차량의 Economy Class 33/34번이다. 33번이 아래고, 34번이 위다. 요금은 침대 하나에 3,238.4루블로 나와 있다. 이 쿠폰을 인쇄해서 차를 탈 때 여권과 함께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차를 내리기 30분 전쯤 여권과 티켓을 승객에게 되돌려준다. 그러므로 내릴 시간과 장소에 대해 조바심을 할 필요가 없다.

표를 확인한 다음 우리가 갈 여정을 살펴본다. 이르쿠츠크에서 노보시비르스크까지 1,832㎞이고, 중간쯤 동서 시베리아를 나누는 예니세이 강변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가 있다. 이르쿠츠크에서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는 1,087㎞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는 22분을 정차한다. 정차시간이 20분이 넘으면 기차를 내려 잠시 역사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새벽 3시의 이르쿠츠크역 플래트홈
 새벽 3시의 이르쿠츠크역 플래트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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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2시가 넘어 우리가 탈 기차의 플랫폼이 전광판에 나타난다. 4번 플랫폼이다. 우리는 3시가 되기 전에 플랫폼으로 나간다. 기차의 도착시간이 3시 17분이기 때문이다. 이르쿠츠크에서는 기차가 무려 35분이나 정차한다. 우리는 5번 차량이 서는 곳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차가 도착할 때 한참 앞으로 뛰어가야 했다. 차를 타고 짐을 제자리에 놓고 침구용 시트와 수건 등을 받아 깔고 덮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새벽 4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니즈네우딘스크역
 니즈네우딘스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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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뜬 것은 9시다. 위도가 높은 지역이어서 해가 중천에 떴다. 중간에 지마(Zima)역에서 30분을 정차한 다음 떠났다고 한다. 아침 생각이 별로 없어 건너 뛰고 12시쯤 점심을 먹기로 한다. 기차가 툴룬(Tulun)역에 2분간 정차한다. 툴룬역이 아주 깨끗하다. 툴룬은 이르쿠츠크 서북쪽 390㎞ 지점에 있는 도시로, 목재산업과 갈탄광산이 경제의 핵심이다.

다음 정차역은 니즈네우딘스크(Nizhneudinsk)다. 니즈네우딘스크역은 13분 정차여서 처음으로 플랫폼에 내려가 본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이 내린다. 그것은 기차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니즈네우딘스크는 1648년 코사크족이 처음 마을을 형성한 이래 현재까지 군주둔지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에서 이르쿠츠크와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중간지점쯤 된다.
타이셰트역
 타이셰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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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정차역 타이셰트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함께 1897년 생겨난 작은 도시이다. 1937년 이곳에서 바이칼-아무르 간선철도 건설이 시작되면서 철도건설 지원기지로 도시가 커질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과 일본의 전쟁포로들이 철도건설 노동력으로 투입되었다고 한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시대에는 강제수용소로 향하는 사상범들이 이곳에서 기차를 갈아타기도 했다.

그러므로 타이셰트역에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사상범들의 불안과 공포가 서려있다. 이들의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한 책이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의 <수용소군도>(Архипелаг ГУЛАГ)》다. 이 책은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비난한다는 이유로 소련 국내출판이 금지되었다. 타이셰트를 떠난 기차는 레카 비류사(Reka Biryusa)강을 건넌다. 그리고 2시간쯤 지나 일란스카야(Ilanskaya)역에 도착한다.
일란스카야역
 일란스카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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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20분 정차한다. 일란스카야역에는 잠시 내려 역사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기관차 기지도 있고, 박물관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 기관차가 전시되어 있을 정도다. 저녁이 되면서 날이 흐려진다. 간간이 빗방울도 떨어진다. 오후 7시가 되기 전 자오제르나야(Zaozernaya)를 지나고 7시 30분이 다 되어 우야르(Uyar)역을 지난다. 우야르역은 특이하게도 아르누보 양식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 풍경
예니세이강
 예니세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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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노야르스크가 가까워오자 승객들이 술렁거린다. 이곳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리고 빗방울도 굵어진다. 분위기가 음산하다. 주변으로 공동주택들이 나타나고 드디어 예니세이강을 건넌다. 강이 대단히 넓고 수량도 많다. 예니세이강은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젖줄이다. 그것은 이 강물을 바탕으로 이 도시의 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예니세이강은 몽골에서 발원한다. 처음 강의 이름은 이데르(Ider)다. 그것이 세렝가강으로 합류되어 바이칼호수로 흘러든다. 바이칼호수의 물은 앙가라강으로 흘러들고, 크라스노야르스크 쪽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예니세이강과 합류해 북극해로 흘러들어간다. 수심이 20m 내외로 깊어서 배들이 자유롭게 운항할 수 있다. 1864년 영국과 네덜란드 상선이 북극해를 통해 예니세이강을 거슬러 올라왔다고 한다. 1893년부터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자재들이 배로 이곳까지 운반되었다.
기차를 내린 사람들
 기차를 내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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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노야르스크는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Omsk)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 체홉(Anton Chekhov)이 시베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지나친 산업화로 도시의 아름다움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 후 5개년계획을 통해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변화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어났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서부에 있던 산업시설이 예니세이강 주변으로 이전되었기 때문이다. 전후에는 알루미늄 등 금속공장이 들어섰고, 1956년부터 수력발전소 건설이 시작되었다. 1970년대에는 레이더시설이 들어섰고, 소련의 붕괴 후 공군기지가 들어오기도 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역
 크라스노야르스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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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붕괴와 함께 진행된 기업의 사유화 과정에서 크라스노야르스크의 기업들이 실업과 파업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96년 이후 시장경제에 익숙해지면서 공장운영이 정상화되고 있다고 한다. 강 주변으로 타워 크레인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니 크라스노야르스크가 여전히 산업도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강을 건넌 다음 오후 8시 54분에 기차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22분을 쉬고 9시 16분에 출발 예정이다. 하차하는 승객들과 함께 플랫폼으로 내려가 본다. 나가는 사람, 타려는 사람, 플랫폼 매점에서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역은 아케이드 형식으로 지붕을 만들어놓았다. 그래서 비를 맞지 않고 대합실까지 이동할 수 있다.
도시락 라면
 도시락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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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매점에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저녁거리를 구입한다. 도시락 라면을 많이 구입한다. 제품에 도시락이라는 한글도 보인다. 도시락 라면은 국물이 우리처럼 빨갛지 않고 사골국물처럼 뿌옇다.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라면이라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써 유르가역을 지난다
유르가역의 전시용 기관차
 유르가역의 전시용 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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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노야르스크역에서 우리 앞자리 승객이 내리고 새로운 승객이 탄다. 그들 역시 침구를 교환하느라 부산하다. 우리도 10시쯤부터는 잠자리를 준비한다. 아내가 아래칸에, 내가 윗칸에 자리 잡는다. 중간에 아친스크(Achinsk), 타이가(Tayga) 등의 도시를 지나지만 한밤중이라 제대로 보질 못했다. 아침 5시가 넘어 눈을 떠 보니 날씨가 좋다. 밤사이 날이 다시 맑아진 것이다.

기차는 6시 52분 유르가(Yurga)역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2분간 정차할 것이다. 유르가역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새로 지었다. 역사에는 철도박물관이 있는 모양이다. 기관차가 역사 한쪽에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차는 7시 22분 볼로트나야(Bolotnaya)에 도착해 2분 정차한 다음 노보시비르스크를 향해 달려간다. 이제 1시간 40분 정도 운행하면 우리의 목적지 노보시비르스크역에 도착하게 된다.
자작나무숲
 자작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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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이르쿠츠크에서 노보시비르스크를 여행하며 우리는 소나무 군락이 자작나무 군락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작나무의 하얀 줄기가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 하얗게 느껴진다. 9시가 지나자 시골 마을 대신 도시의 공동주택들이 나타난다. 이제 우리가 시베리아 서부지역의 중심도시 노보시비르스크로 들어온 것이다. 9시 12분 기차를 내리니 공기가 시원하다. 기차의 실내온도가 25℃였다면, 노보시비르스크의 대기온도는 15℃다.


태그:#시베리아 횡단철도,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타이셰트, #크라스노야르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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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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