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시 소성리 주민들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소성리>(2017) 한 장면

경북 성주시 소성리 주민들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소성리>(2017) 한 장면 ⓒ 오지필름


박배일 감독의 영화 <소성리>(2017)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서울독립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등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에 열린 영화제를 휩쓴 화제작이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THAAD) 배치를 반대하는 경북 성주시 초전면 소성리 주민들의 투쟁을 다루었다는 시의성이 있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대상 수상작 격인 '비프메세나상'을 받을 정도로 완성도도 준수했다. 영화 자체가 가진 힘과 매력도 비교적 강렬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지 약 1년 만에 극장 개봉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게 된 <소성리>는 영화가 내뿜는 열기에 비해 다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실 박배일 감독과 <소성리> 그리고 사드 문제에 아주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소성리>라는 영화가 개봉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한적하고 소박한 삶 살아온 소성리 주민들

 경북 성주시 소성리 주민들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소성리>(2017) 한 장면

경북 성주시 소성리 주민들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소성리>(2017) 한 장면 ⓒ 오지필름


애초 일반 관객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독립 다큐멘터리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영화 <소성리>가 힘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사드 배치 문제가 시의성 있는 소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사드 배치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사드 배치지로 예정된 성주, 김천 시민들은 지금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농성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사드 배치 문제는 점점 일반 국민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대다수 국민들이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성주, 김천 주민들의 외로운 투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작년에 제작·완성된 <소성리>는 성주 소성리 주민들의 1~2년 전 상황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왔던 소성리에서 본업인 농사를 짓고 틈틈이 사드 배치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일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고 크고 작은 송사에 휘말릴 없이 한적하고 소박한 삶을 영위하던 소성리 주민들에게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마을에 웬 무기가 배치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부터였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소성리 마을의 전경, 주민들의 일상을 보면 알겠지만, 애초 소성리는 군대가 주둔해있는 곳도 아니고 전쟁, 싸움과는 영 거리가 멀어보이는 평범한 농촌마을이다. 한국 전쟁 당시 소성리 주민들 일가 친척의 상당수가 국민보도연맹에 연루되어 고초를 치르긴 했지만, 이는 대한민국 어느 마을에서나 종종 들을 수 있는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이는 국가 권력자들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 하에 한국전쟁, 사드 배치 등으로 반복되는 민중들의 수난사를 암시하기도 한다.

영화는 별탈 없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 한국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아픔을 겪은 소성리 할머니들이, 사드 배치를 계기로 그들 자신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정쟁에 휘말려 평범한 삶을 박탈 당하는 수난기에 주목한다.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바 없이 농사 짓고, 주민들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는 소성리의 일상적인 풍경을 전달하는 도입부가 유독 긴 것도, 사드 배치로 삶에 대혼란을 겪은 주민들의 변화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하는 연출의도와 부합한다.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사드를 배치한다고?

 경북 성주시 소성리 주민들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소성리>(2017) 한 장면

경북 성주시 소성리 주민들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소성리>(2017) 한 장면 ⓒ 오지필름


액티비즘(행동주의) 경향을 띠고 있는 <소성리>는 연출, 촬영, 메시지 전달에 있어서 기존의 액티비즘 영화들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보여준다. 투쟁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는 여타 액티비즘 영화들과 다르게, <소성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격렬한 투쟁의 현장으로 탈바꿈된 소성리라는 공간과 그 속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다루고자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배치된다는 사드가 법 없이도 잘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일상의 평화를 망치는 순간, 조용히 소성리 마을과 주민들을 응시하던 영화는 그때서야 묵직한 질문을 건넨다. 과연 평화가 무엇일까. 사드 배치를 둘러싼 여러가지 정치적, 경제적 이해 관계를 따져보기 전에,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침해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사드 배치 찬반 의견을 떠나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질문이다.

사드 배치 문제로 인해 조용할 날 없는 소성리이지만, 그럼에도 소성리 주민들의 삶은 계속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연일 지속되는 싸움에 지쳐있을 법도 하지만, 생기를 잃지 않는 소성리 여성 주민들의 환한 웃음으로 끝나는 영화는 일상의 소박한 평화를 위해 지금도 투쟁 전선에 나서는 소성리 주민들을 위로하고 함께 하고자 한다. 사드 배치 이후 평화롭지 못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성리 주민들을 통해 평화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 영화 <소성리>는 지금도 극장에서 절찬 상영중이다.

소성리 사드 영화 박배일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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