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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 하지만 올 여름에도 매주 수요일 정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는 1992년에 처음 시작됐다. 일본 정부의 범죄사실 인정과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장이다.

할머니들에게 힘이 되어 주기 위해 해외에서도 많은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미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3A Project 팀은 올해로 4번째 횡단을 진행 중이며, 각 대도시 여러 인권단체들과 협업하여 이 문제를 알리고 있다.

현재 횡단 중인 이호준(23, 인천대), 백현재(26, 백석대) 외에 텍사스 주 오스틴 시에서 이들의 횡단을 지원하고 있는 마케팅팀 백덕열(26), 최인서(26), 이하얀(26) 씨를 지난 8월 24일 인터뷰했다. 이들이 미국 오스틴에 있는 탓에,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좌측부터 최인서, 이하얀, 백덕열 씨
▲ 3A Project 마케팅팀 좌측부터 최인서, 이하얀, 백덕열 씨
ⓒ 3A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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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최인서(아래 최): "한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재 텍사스 주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최인서입니다. 저는 3A Project 마케팅 팀에서 그래픽 디자인, 프로그램 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이하얀(아래 이): "한국에서 식품생물공학과를 졸업한 이하얀입니다. 저는 마케팅 팀에서 한영번역 및 프로그램 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백덕열(아래 백): "한국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백덕열입니다. 마케팅 관련 인턴을 하고 있으며 이 프로젝트 전반을 운영, 관리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나요?
최: "저희 어머니는 위안부 수요 집회를 자주 참가하는 분들 중 한 분이십니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위안부 할머님들을 위한 행사, 집회, 벽화 봉사 등을 다니며 이 문제를 알리는 활동에 몇 번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성인이 된 후 사회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접해온 위안부 관련 문제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항상 고민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고,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으로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동행을 이끄는 콘텐츠 등을 만들어 이 문제를 시각적으로 알려보자!라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미국 인턴을 오기 전, 친할머니를 뵈러 다녀왔습니다. 할머니께서 16살에 할아버지와 결혼하신 이유는 오직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일본군의 총기 난사로 인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먼 슬픈 과거라고 생각했던 역사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인 할머니가 직접 경험한 현실이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 공부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WEST 프로그램 참가자이자 3A Project를 기획하고 시작한 백덕열 군을 통해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백덕열 군의 프로젝트를 듣고 생각한 건 '대단하다'였습니다. 제가 생각만 하고 있던 일을 이미 계획하고 실천하여 현재 4년째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이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백덕열 군과 나누면서 4기 마케팅 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것을 이루고 싶으신가요?
최: "더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 인식을 통해 이 역사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현재에도 많은 나라에서 여전히 여성 인권이 유린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과거의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현재에도, 미래에도 잠재적으로 발생가능한 문제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몇 년 후 오늘을 돌아봤을 때 더 이상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저희의 프로젝트의 이름인 Triple A - 일본 정부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제도 및 피해 할머니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의미의 Admit,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에게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하는 Apologize, 그리고 저희가 할머님들의 혼과 마음을 안고 동행하는 의미의 Accompany를 이루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저희가 하는 이 작은 행동들이 모여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고, 행동하여 할머님들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백: "프로젝트 측면에서 말씀 드리면 저희의 목적은 단 하나 할머님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 저희의 첫 번째 목표이고, 더 나아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올바르게 교육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한 체육인으로서, 스포츠를 통해 세상을 보다 정의롭게 이끌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스포츠의 힘을 극대화 시키고 싶습니다. 저희가 열심히 페달을 밟아가며 '자전거'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하여 알리며 저희가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고 싶습니다."

- 혹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사안은 없었나요?
최: "매주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야할까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사람들에게 우리의 목소리를 잘 전할 수 있을까 늘 고민했습니다. SNS 를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매주가 늘 즐겁지만 이 과정이 가끔은 부담되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이미지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의미를 담고 싶지만 표현 능력에 있어 스스로에 한계를 느낄 때 많이 속상하고, 힘들었습니다."

이: "기본적으로 저는 횡단 팀이 횡단을 하며 프로젝트 SNS페이지에 글을 올리면 저는 그 글을 영어로 번역해서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번역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는 힘들 때가 있습니다.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 번역 작업도 함께 하고 있어 한창 바쁠 시기였습니다. 미국에서의 인턴 생활도 막 시작되어 정신이 없던 와중에 교통사고가 나서 한동안 번역이 매우 많이 밀려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백: "마케팅 팀원을 모집하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횡단을 지원하는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많지만, 마케팅 팀원에는 지금껏 지원자가 없었습니다. 4기에서야 마케팅 팀을 만들 수 있었고, 매주 회의를 통해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릴 수 있을지 회의하고 있습니다."

- 프로젝트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있나요?
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그날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프로젝트를 처음 만든 백덕열 군과 카페에서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목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프로젝트를 함께 해볼 생각 없으냐며 먼저 제안을 해주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세상을 바꾸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당돌하게 외치고 다니던 나에게 그 시작이 시작된 것 같아 이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 "횡단 팀이 시카고에서 수요집회를 할 때, 저와 백덕열 군이 함께 참여했었습니다. 저희 숙소와 집회 장소가 자전거로 1시간 떨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횡단 팀이 자전거를 집회 장소까지 타고 가야 해서 저와 백덕열 군도 같이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 다녀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수요집회가 끝난 후, 자전거를 빌려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이 너무 맑고 날씨도 좋고 도시와 미시간 호수가 너무 예뻐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고 놀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맑고 깨끗했던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으로 뒤덮이더니 우박과 같은 아픔을 주는 비가 쏟아졌습니다. 잠시 멈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그칠 것 같지 않아 결국 비를 맞으며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자전거를 반납할 때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쳐 다 같이 어이없어 웃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백: "2015년에 제가 시카고에서 집회를 개최했을 때에는 10명 남짓한 분들과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당시 시카고에서 처음 진행했던 집회였던 만큼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거나, 집회를 위한 피켓을 준비하는 등의 부분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올해 다시 시카고 집회를 개최했을 때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었고, 부족한 점을 꾸준히 보완하며 원활히 집회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3년 전의 집회 규모와 비교하며 프로젝트 자체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할머님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전하는 집회였기에 기억에 남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 기사를 접하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최: "누군가는 저희에게 우리도 베트남 전쟁 때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단순히 피해 국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제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에 대한 가해국가의 진정한 사과 없이 그저 과거의 일이 되어 잊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이런 문제가 또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읽는 분들도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실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 "일본군 '위안부'는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 중인 아픔입니다. 할머님들의 마음에 봄이 올 때까지 동행하겠습니다."

: "저희 곁에는 이제 27분의 할머님이 남아계십니다. 하루 빨리 할머님들이 진정 어린 사죄를 받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태그:#3A PROJECT, #'위안부', #미 대륙 자전거 횡단, #일본군'위안부', #트리플에이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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