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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DNA의 '프로 보노 퍼블리코'

대한민국은 국제개발협력분야에서 전무후무한 역사를 써나가는 중이다. 세계 최초로 외국 원조를 받아온 수혜국이 공여국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 이에 더 괄목할만한 점은 2016년 기준, 한국 정부 및 민간 해외봉사단원수가 미국 6,910여 명에 이어 6,320여 명으로 세계 2위 규모를 기록한 것이다(중앙일보, 2018).

개인적으로 우리 한민족 DNA에는 '남을 위하는 마음'이 각인돼 있다고 믿고 있다. 과거 공동체 내 상부상조 전통인 동제, 두레, 향도, 품앗이 등이 형태만 달라졌을 뿐이다. 전 국토가 파괴된 한국전쟁 이후 헐벗고 굶주리던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도 우리 선배들은 농촌농활, 도시야학 활동을 전개하며 공동체 유지에 힘썼다. 이 같은 선조, 선배들의 미풍양속은 세계화 시대를 맞아 국경을 넘어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국제개발협력의 형태로까지 진화했다.

선진국은 전통적으로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라고 하여 지식 이전을 주 업무로 다루는 정부 주도의 전문 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1950년에 창설된 호주해외봉사단(AVA, Australian Volunteers Abroad)을 필두로 미국 Peace Corps, 영국 VSO, 캐나다 CUSO 등이 '봉사에의 소명(call to service)'을 강조하며 농업, 교육,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외봉사 및 원조를 수행하고 있다(이태주, 2006).

한국 또한 OECD 개발원조 위원회(DAC,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일원으로서 이들 선진국과 함께 국제사회에 기여해야할 기본적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재 파견 인원 및 지원 규모는 다른 선진국의 평균 수준을 훨씬 웃돌고 있다. 해외봉사단 파견 규모 세계 2위라는 이 높은 수치는 그간 원조받은 것을 되갚고자 하는 정부 노력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 필자가 한민족 DNA 속에 '프로 보노 퍼블리코' 정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연유다.

반등하는 세계 기아(World Hunger) 수치
 반등하는 세계 기아(World Hunger) 수치
ⓒ UNst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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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식량안보

2018년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감소폭을 보이던 세계 기아(World Hunger) 수치는 2015년 777백만 명에서 2016년 815만 명으로 반등했다(UNSD, 2018). 그 원인으로 분쟁(conflict)과 기후변화와 연관된 가뭄 및 재해(drought and disaster)가 꼽혔다.

최근 필자는 볼리비아 남부 챠코(Chaco) 지역 출장 기간 중 기후변화 피해를 피부로 접했다. 이 지역은 '건조한 챠코(Dry Chaco)'라 불릴 정도로 연평균 강수량이 적은 곳인데, 현재 진행되는 기후변화로 과거 약 6개월(10월~4월)에 걸친 우기가 약 4개월(11월~3월)로 줄었다고 토착민들은 주장했다. 현장을 가보니 예전보다 극심해진 수분 부족 현상이 땅을 거북이 등껍질 마냥 갈라놓았다. 그 피해는 초지 풀을 뜯어먹는 가축과 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지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렇게 기후변화로 달라진 자연환경은 안 그래도 취약한(vulnerable) 지역사회를 더 곤궁에 몰아넣는다. 무엇보다 식량안보가 흔들리게 된다. 농업은 식량안보를 지키는 중추 산업이다. 세계적으로 농업 종사자는 10억여 명으로 매년 농업에서 약 1조 달러가 유통되며 인류가 사용하는 지구 면적 약 50%가 경작지와 목축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이경선, 2013).

허나 인류가 초래한 기후변화(climate change)는 선진국 개도국을 가리지 않고 농업현장을 무너뜨린다. 물론 자본과 기술이 풍부한 선진국은 기후변화에 나름 적응(adaptation)하며 그 피해를 최소화시킨다. 반면 이런 혜택은 동시대에 살고 있는 개도국, 특히 농업 경제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빈곤 지역에까진 찾아오지 않는다.

현지에서 진행중인 토지저하를 설명 중인 Yuri 박사(볼리비아 농림혁신연구청-챠코지역사무소)
 현지에서 진행중인 토지저하를 설명 중인 Yuri 박사(볼리비아 농림혁신연구청-챠코지역사무소)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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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KOPIA

한국은 여타 선진국과는 다르게 굶주림의 고통을 느꼈던,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이 있다. 인류가 생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 해결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우리 정부는 그 동안 발전시킨 농업기술을 갖고 세계의 가난과 굶주림을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

정부는 농촌진흥청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코피아: KOPIA, Korea Program on International Agriculture),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등의 기관을 통해 농업분야의 공정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를 진행하고 있다. 그 중 농촌진흥청은 2008년 코피아를 설립하여, 아시아, 중남미, 그리고 올해 8월 개소한 아프리카 가나(Ghana)를 통틀어 현재 21개국에서 현지 맞춤형 농업기술 지원을 위한 센터를 운영 중이다.

필자는 그중 코피아 볼리비아 센터에서 근무하며 안데스 산맥의 정기를 받은 토착민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병 씨감자와 토마토 양액재배 연구를 거들면서 현지 농업협력과제가 잘 진행되는지 모니터링 중이다.

대륙별 코피아 센터 현황
 대륙별 코피아 센터 현황
ⓒ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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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을 논할 때 늘 회자되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라는 문구가 있다. 출처가 고대 아프리카인지 아메리카 원주민인지는 불분명하다. 허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애정 어린 관심'이 꼭 수반돼야 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국제개발협력은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받은 은혜를 되갚아나가며 동시에 우리 품격까지 높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필자는 이 선의의 행위가 한민족의 가슴을 뛰게 한다고 믿는다. 세계 곳곳에서 땀 흘리는 농촌진흥청 코피아 일원들, 나아가 국제개발협력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께 독자들의 따스한 성원을 부탁드린다.

*필자가 덧붙이는 말

볼리비아에 온지 아직 한 달 채 안됐음에도, 이곳 코피아 센터에서 진행 중인 협력업무와 공동체 생활 그리고 남미여행에 필자는 크게 매료됐습니다. 앞으로 조금씩(poco a poco, 뽀꼬 아 뽀꼬) 이곳 생활을 풀어보려는 제 개인적 도전에 응원 부탁드립니다.


코피아(KOPIA) 볼리비아 센터 (가운데: 권순종 소장)
 코피아(KOPIA) 볼리비아 센터 (가운데: 권순종 소장)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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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1. 선진국의 해외봉사단 파견 프로그램 운영 사례와 교훈. 이태주(2016). 한국국제협력단
2. 국경없는 과학기술자들. 이경선(2013). 뜨인돌
3. 중앙일보 기사 "[논설위원이 간다] 한국 해외봉사 세계 2위" (2018.7.16)

- 농촌진흥청 블로그 농다락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rda2448&from=postList&categoryNo=80
- 2018 UN 지속가능발전보고서 https://unstats.un.org/sdgs/report/2018



태그:#코피아, #농촌진흥청, #볼리비아코피아, #국제개발협력, #해외농업기술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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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프리랜서 기자/에세이스트 前)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 농촌진흥청 KOPIA 볼리비아 / 환경재단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유엔 사막화방지협약 태국 / (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 (졸)경상국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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