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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당시 로빈 레이 멕케이 로빈 레이 멕케이는 생후 3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 입양 당시 로빈 레이 멕케이 로빈 레이 멕케이는 생후 3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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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생 로빈 레이 멕케이(Robyn Leigh MacKay)는 생후 3개월에 입양되었다.

입양부모나 입양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은 아기가 입양되는 시기가 빠를수록 좋다고 한다. 되도록 빨리 주양육자와 안정된 애착 관계를 맺는 것이 아기의 정서적 발달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생모가 입양을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하면서 아기를 데려갔다가 다시 보육원으로 데려오는 일을 반복하기도 하는데, 이는 나중에 아동의 정서적인 문제로 연결되기도 한다. 또 이런저런 사정으로 위탁이나 파양 등을 반복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지난 7월 중 로빈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해 그가 생후 3개월에 입양되었음을 알았을 때, 가슴이 아릿했다. 100일도 안된 아기 로빈이 새로운 가정을 찾기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꼬박 반나절의 비행했다는 사실 자체가 애처롭게 다가왔다. 그러나 정작 로빈 자신은 한국과 생부모에 대해 별다른 애착을 보이지 않았다.

"저는 제 친생가족들을 찾으려 한 적이 없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입양되었기 때문에, 제가 입양되었다는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거든요. 솔직히 제 친생가족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자랐어요. 물론 홀트가 저의 친생가족찾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굳이 찾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인종간 입양'의 경우에 해당되면서도 자신이 입양아라는 의식조차 하지 않고 자랄 수 있었던 그의 성장 배경이 궁금했다.

로빈의 부모님은 작은 마을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마을에서 결혼해서 로빈과 그의 동생을 키웠다. 로빈의 남동생은 로빈이 입양되고 나서 11개월 후에 태어났다. 동생과는 학령이 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이 학교를 다니며 매우 친하게 지냈다.

어머니는 6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로빈과 그의 가족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아버지는 지금은 직장에서 퇴직하셔서 행복하게 은퇴한 삶을 즐기고 계신다. 현재 동생은 로빈보다 한 살 어린 41살이고, 동생과 그는 남매이자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동생과 동생의 아내, 조카들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에게 서로의 존재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로빈의 부모님과 동생 로빈은 미국으로 입양되었지만, 자라면서 부모님과 한 번도 이질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남동생과는 둘 도 없는 친구처럼 우애가 깊다.
▲ 로빈의 부모님과 동생 로빈은 미국으로 입양되었지만, 자라면서 부모님과 한 번도 이질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남동생과는 둘 도 없는 친구처럼 우애가 깊다.
ⓒ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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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그는 입양인으로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던 걸까?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에서 동양인인 그가 자라나면서 차별의 경험이 없다는 게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저는 매사츠세츠주 보스턴의 교외에 있는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주로 중산층 가정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지요. 물론 그곳에 저와 같은 동양인은 적긴 했지만, 그 마을에는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다르다'라는 시각으로 보지는 않았어요."

그는 가슴에 깊이 각인될만한 인종차별의 경험이 없다. 그래도 굳이 차별의 경험을 기억해 보라는 주문에 그는 어릴 적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냈다. 사람들이 자기들 눈을 양옆으로 찢으면서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말을 썼던 일이 있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낯선 사람들이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아시아의 언어로 말을 걸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영어를 하는 것에 놀라곤 한다.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이건 저와 친한 사람들이건) 일반적으로 아시아인이나 아시아의 문화에 대해 좋지 않은 농담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나이 들면서 나는 그런 상황을 농담으로 웃어넘길 수 있는 센스를 터득하게 되었죠."


그러나 그런 소소한 경험들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그는 안정적인 사랑 속에서 자랐고,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누렸다.

로빈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 졸업 후에도 두 개의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저는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어요. 학업을 마친 후에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세계 여행을 했고, 집을 세 채를 가지게 됐죠. 그리고 사랑도 했고, 많은 우정도 쌓았어요. 이 모든 게 이곳 미국에서 가능했죠."

그렇다면 그는 지나온 삶에서 자신이 입양된 것이 언제나 만족스럽고 행복하게만 느껴졌던 걸까?

로빈이 어렸을 때는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입양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싫었고, 그 질문에 자신이 설명하고 대답해야 한다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그는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떳떳하게 여기며, 부모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입양은 제 삶을 불행으로부터 구했습니다. 또 여기 미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죠. 제 삶이 저를 입양해주신 부모님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은 만큼, 그분들의 삶은 제 영혼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인연이란 아름다운 것이고 놀라운 거죠. 결국 서로를 사랑한다는 게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삶은 인연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죠. 이 모든 게 해외 입양을 통해 가능했어요."

당연히 그는 해외 입양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우리는 모두 커다란 세상의 자녀들이죠. 그러니까 서로 사랑해야 해요.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죠. 모든 아이들은 가족의 사랑을 받고 가정의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를 낳든, 입양하든 간에 더 많은 가정들이 아이가 생기는 것을 환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어떤 가정이 기꺼이 아이를 사랑으로 기르려 한다면,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요? 아이가 사랑받을 기회를 빼앗을 이유가 말이죠."

로빈은 백인인 부모와 겉모습이 많이 달랐어도 자라면서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그는 가족적인 친밀감 속에서 자랐다.

"미국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많은 기회를 얻었죠. 저는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친생가족을 찾을 생각이 없다는 로빈에게 혹시라도 생부모님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입양에 동의해 준 것에 감사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또 그들에게 현재 그의 멋진 가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줄 것이며, 자기가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잘 자랐고, 너무나 행복하다는 것을 알릴 거라고 했다.

로빈과 아버지 남동생 가족 로빈은 "우리 가족에게 서로의 존재는 축복"이라고 말했다.
▲ 로빈과 아버지 남동생 가족 로빈은 "우리 가족에게 서로의 존재는 축복"이라고 말했다.
ⓒ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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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은 지금까지 한국에 총 세 번 방문했다. 세 번 다 홀트 인터네셔널과 한국 홀트와 함께 했다. 2015년에는 홀트 인터네셔널 Gift 팀의 행사에 참여한 뒤, 개인적으로 서울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그리고 2016년에는 일산 홀트 복지타운에서 한 달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이는 자신의 입양 절차를 진행하고, 입양을 가능하게 했던 한국과 홀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었다. 그후 2018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고, 서울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홍보행사에도 참석했다.

그가 떠났던 70년대로부터 지금까지 한국은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로빈 역시 한국에 대해 자세한 지식 없이 방문했다가 생각보다 발전한 모습에 많이 놀랐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한국을 생각하면 첨단시설과 정교한 지하철, 엄청나게 많은 커피 전문점, 그리고 개성 넘치는 멋쟁이 여성들의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이 화려할수록 입양되지 못하고 한국에 남은 자신의 모습이 암울한 이미지로 함께 떠오른다.

"냉정하게 말해서, 제가 미국으로 입양되지 않고 한국의 고아원에 남았다면, 저는 그러한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을 겁니다. 고아라는 낙인과 불이익에 직면했겠죠. 고등교육을 받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높고, 원하는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그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 아프게 다가왔다.

온통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고백으로 가득한 로빈의 이메일을 읽으며 그저 흐뭇할 수만은 없었다. 아니 그의 고백이 행복할수록 그간 우리 사회가 구가해온 경제적 발전이 우리에게, 적어도 우리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하는 질문은 더 깊고 아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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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공교육, 청소년 독서, 대안 학교, 미혼모 문제,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