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 크레이티브와이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면 로봇 청소기가 반기는 풍경은 새삼스럽지 않다. 더구나 2000년대 초반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로봇 청소기는 이제 청소 업무를 넘어 자동으로 배터리 충전도 하고, 집안 구조를 확인해 장애물과의 충돌을 방지하기도 한다. 참으로 신통방통할 따름이지 않은가. 그런데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로봇 청소기를 보면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쉽게는 '오늘 점심을 무얼 먹을까?'부터 걱정, 고민되는 바를 반추하게 된달까.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작가 박해림은 로봇 청소기와 하루를 보내다가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극은 세상과 단절한 채 하루 종일 TV만을 보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독거노인 엠마에게 어느 날 로봇 스톤이 배달되며 시작된다. 스톤의 등장으로 어둡고 칙칙한 집에는 온기가 맴돌기 시작한다. 내내 불을 꺼두고 살던 집에 전등이 켜지는가 하면, 누군가 창틀에 붙여둔 포스트잇에 답장을 하기도 한다. 마을 주민 버나드는 이러한 변화를 목격하고 엠마를 걱정한다.

스톤은 엠마의 건강을 위해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각종 컨디션을 파악하고 건강 식단을 준비한다. 또 빛 바랜 가구와 잡동사니들을 청소한다.정부에서 보낸 이 로봇은 엠마의 생활을 돕지만, 그녀에게 "땡큐" 한 마디를 듣기가 어렵다. 그녀가 "땡큐"라는 말에 인색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스톤이 작동을 멈춘 후 엠마가 잊고 있던 기억들을 마주하면서 펼쳐진다.

젊은 시절 엠마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아내이자 엄마였다. 그러던 어느 날 딸 미아와 남편 스톤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미아는 목숨을 잃고 스톤은 장애를 입게 된다. 딸을 잃은 슬픔에 빠진 엠마로 인해 스톤은 집 밖으로 나가 자살했다. 현재 엠마는 남편과 이름이 같은 로봇 '스톤'을 만나 함께 지내고 있다. 스톤과 살면서 그는 잊고 있었던 기억과 마주한다. 그리고 엠마가 "땡큐"라고 말할 수 있게 된 무렵, 스톤은 기능을 다해 작동을 멈춘다. 이윽고 엠마는 로봇 스톤 없이도 홀로 집 밖을 나선다. 그리고 집 앞에서 만난 버나드에게 "땡큐"라는 말을 건넨다. 조금 어색하고 어딘가 조심스럽지만 나직한 한 마디 "땡큐". 이렇듯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로봇의 출현으로부터 인생 끝자락을 살고 있는 한 여인의 기억과 변화를 말한다.

로봇임을 알리는 수단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 크레이티브와이


로봇 소재 뮤지컬은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상업적으로 먼저 공연된 <어쩌면 해피엔딩>이 있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헬퍼 로봇들과 비교하면,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로봇 스톤은 좀 더 인간적이다. (비상업극으로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가 독회 공연으로 먼저 무대에 올랐다. 두 극을 비교 선상에 두는 이유는 뮤지컬 작품 중 AI 로봇 소재를 다룬 극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스톤은 사람처럼 걷고 사람처럼 말을 한다. 더구나 먼지가 많은 곳에서 기침을 하고 물을 마시기도 하는 등 언뜻 보면 로봇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스톤이 로봇이라는 설정은 작품에 썩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다. 마치 관객들에게 스톤은 로봇임을 재차 설명하려고 드는 것처럼 말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스톤이 로봇이라는 건 그가 등장할 때 엠마가 버튼을 눌러 활성화 시키거나, 엠마가 잠든 사이 충전을 하고 있는 점으로 충분히 설명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로봇'이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또 회색 벽면을 배경으로 인공지능을 형상화한 영상을 여러 번 보여준다. 인간보다 인간 같은 로봇으로 승부수를 던진 점은 좋았지만, 필요 이상의 설명은 오히려 더 인위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로봇 스톤의 출현에서부터 엠마의 아픈 기억을 관객에게 전달해야 했던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반전의 덫에 갇힌다. 단순히 엠마를 변화시키기 위해 등장한 줄 알았던 로봇이 사실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 과거 젊은 시절 남편 스톤이 사람을 본뜬 로봇 제작 신청자를 모집하고 있다는 TV광고를 보았고, 이를 엠마에게 상의했다. 여기서부터 로봇 스톤의 존재가 시작됐다는 것. 이에 대해 관객들은 로봇 스톤은 실재한다는 해석과 엠마가 빚어낸 환상이라는 해석으로 나뉜다.

해석이 어느 쪽이든 서사상 문제점은 쉬이 해결되지 않는다. 스톤이 실재한다면 마지막에서야 두어 줄로 설명되고 마는 스톤과 엠마의 연결고리는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스톤이 환상이라고 해 작위적인 것은 매한가지다. 엠마의 젊은 시절 기억 중 굳이 로봇에 대한 대화만 남아 환상으로 로봇을 만들었다는 점은 '억지 춘향식' 전개처럼 느껴졌다.

슬기롭지 않은 연출, 혼란스러운 관객들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 크레이티브와이


스톤이 작동을 멈추는 시점을 전후로 급격하게 바뀌는 작품의 분위기는 관객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극 전반부는 파스텔 빛깔의 따스한 연출이 돋보인다. 포스터나 귀여운 제목을 보고 예상한 대로다. 그러나 스톤이 바닥에 주저 앉자 작품 분위기는 순식간에 변화한다. 갑자기 붉은 빛 조명이 무대를 뒤덮는 광경에는 앞서 어떤 힌트도 없었던 터라,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어쨌든 스톤이 작동을 멈춘 뒤로, 극은 엠마와 스톤이 티격태격 싸움을 하고 정을 나누던 내용에서 엠마의 아픈 기억으로 급격하게 전환된다. 그런데 회상 장면은 관객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이유인 즉슨, 젊은 엠마와 젊은 스톤을 연기하는 배우가 미아와 버나드를 연기하는 배우와 같기 때문. 배우 2명이나 1인 2역을 하는 셈이다. 게다가 젊은 엠마는 의상조차 미아를 연기할 때와 같은 의상을 입고 있어 관객을 헷갈리게 만든다. 이 장면에서 퇴장하지 않고 눈시울을 붉힌 채 젊은 시절을 바라보고 있는 현재의 엠마와 두 사람을 등진 채 피아노 건반을 주시하고 있는 로봇 스톤은 관객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버나드의 존재는 시작부터 끝까지 의문투성이다. 버나드는 엠마와 같은 1인 가구 마을에 사는 주민이다. 의상과 말투로 보아 자폐 성향을 띤 인물이 아닐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유추일 뿐 창작진의 의도는 알 수 없다.) 버나드는 극의 중간중간 등장해 엠마의 집 주변을 살피고 그녀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한다. 엠마가 변화하고 있다고 판단한 그는 엠마의 집에 걱정이 담긴 포스트잇을 붙이기도 한다. 이에 버나드는 "변화는 위험하다"고 말하지만, 왜 변화를 위험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엠마와 마주한 그는 "왜 나를 걱정했니?"라는 엠마의 질문에 "엄마가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의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이처럼 버나드가 등장할 때 마다 남기고 가는 질문들에 극은 다소 맥이 끊기는 모양새를 띄게 된다.

소품에 내려앉은 먼지처럼 추억도 켜켜이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 크레이티브와이


다시 엠마의 기억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녀를 잊고 있던 기억 속으로 인도하는 계기는 로봇 스톤과 창고 정리를 하면서 부터다. 먼지가 켜켜이 내려앉은 창고에는 엠마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 가득하다. 빨간 구두, 새하얀 숄, 보석 귀걸이, 향이 다 날아간 향초. 로봇 스톤은 이 물건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며 엠마에게 신어보도록, 둘러보도록, 착용해보도록, 향을 맡아보도록 한다. 그렇담 이 추억의 물건들에는 저마다 기구한 사연이 있을까.

기대가 무색하게도 활용된 소품들은 지엽적인 사건을 간직하거나, 그마저도 없이 소비될 뿐이었다. 보석 귀걸이를 착용하는 동안, 향이 다 날아간 향초가 원래 무슨 향이었는지를 유추할 동안 어떤 사연도 나오지 않았다. 원래 사물이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 쓰였다면, 그 사물은 나름의 스토리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스토리가 서사 전체를 아울러 십분 활용된다면, 이는 소품 활용의 좋은 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소품들이 줄줄이 등장하니 각각 사연을 부여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의미가 부여된 소품도 아쉬웠기는 마찬가지다. 여러 소품을 소개하려다 보니 사연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여운을 앗아가버렸기 때문.

엠마가 스톤으로 인해 움직였듯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마침내 "땡큐"라고 말할 수 있는 극을 만나고 싶었지만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아쉬움을 남겼다. 우리가 생각했던 먼 미래보다 현재는 가까워졌다. 인간 대신 일을 해주는 인공 지능과 로봇 청소기가 보편화된 시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창작 뮤지컬 또한 재미있는 서사로 변화를 거듭하길, 그래서 "땡큐"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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