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의병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미스터 선샤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자 주인공인 유진 초이(이병헌 분) 및 주요 인물 구동매(유연석 분)을 '국외자'로 설정해 방영초반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조국의 은혜를 받지 못해 고국을 떠난 노비의 아들이나, 백정의 자식이 각각 '미국인'과 '일본의 낭인'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설정은 제아무리 그들의 극적인 '자각'을 예정한다 했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들이 역사적으로 남긴 흔적들이 마음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 속에서 그들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국외자이자 늘 경계에 섰던, 아니 스스로 경계 밖의 존재라 자신을 규정했던 두 사람에게 경계를 넘을 수밖에 없는 일이 닥친 것이다(관련기사 : 김은숙 작가가 이병헌·유연석 앞세워 던진 무거운 질문 http://omn.kr/rzkc).

총을 잡은 유진 초이... 그는 미국시민이 되었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유진은 노비였다. 아비가 노비였고, 어미 또한 그러했다. 어미의 미색을 탐한 외부대신 이세훈과 그에게 잘 보이려던 김희성(변요한 분)의 조부가 유진의 아비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뒤 유진이 보는 앞에서 아비를 멍석말이했다. 어미는 유진을 살리기 위해 희성의 어미를 겁박했고, 유진이 무사히 그 집에서 도망치는 걸 보고 우물에 몸을 던졌다.

유진은 어미의 유언에 따라 추노꾼을 피해 조국에서 가장 먼 곳인 미국으로 향했다. 낯선 미국 땅에서 조선의 어린 소년은 이방인이란 놀림을 피하기 위해 총을 잡았고, 그 총이 그를 미국 시민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총'의 덕택에 그는 조국에 미국의 장교로 돌아오게 되었다. 당연히 그에게 자신을 버린 조국은 없다. 그는 이방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편의에 따라 그를 조선인으로도 미국인으로도 부른다. 경계에 선 유진, 하지만 그는 자신을 미국인이라 생각하려 한다.

유진은 조선의 왕 앞에서도 미국인이었다. 유진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외부대신 이세훈을 조선의 정부와 '협력'하여 제거하자, 그에 호감을 가진 고종은 '한국인'인 그를 조선의 '군사' 고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오로지 이세훈을 역모죄로 몰기 위해 '의병'과 '정부'와 협력했던 그에게 고종의 청은 '논외'의 문제였다. 어디까지나 그는 '미국인'이었고, 미 영사관 주둔 장교일 뿐이었다.

그런 그의 '철옹성'에 돌을 던지기 시작한 건, '사랑'이었다. 남자의 양복을 입고, 총을 들고 담 위에서 만났던 고씨댁 영애 고애신(김태리 분)은 어느 틈에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자신과 같이 총을 들었던 그녀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신분의 여성이었다는 그 다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위기의 상황에서 대나무처럼 더 꼿꼿해지는 그녀의 품성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그런 꼿꼿함 뒤에 숨겨진 '고독' 때문이었을까. 유진이 한글을 배워가고, 애신이 알파벳을 한 자 한 자 익혀가면서 두 사람의 마음 또한 깊어진다.

아버지 같은 요셉의 죽음, '경계인' 유진을 흔들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유진의 국적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외려 거리에서 총격을 벌이던 애신 대신 자신의 팔에 총상을 입어가면서까지 총을 들고 나서는 유진은 미국인 장교였기에 그녀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인'이라는 존재가 그에게는 '애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좋은 '장치'였다.

그러나 도자기를 담은 나무 상자 안의 소년을 기꺼이 한 달 여의 기간 동안 배 아래 칸에 숨겨 함께 미국으로 동행했던 선교사 요셉이 최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으면서, '미국'이란 울타리 안에 있던 유진을 흔든다. 그저 아버지같은 선교사인 줄 알았던 요셉. 하지만 그는 고종의 밀서를 품에 안고 이완익(김의성 분)이 보낸 자의 저격으로 죽음에 이른다. 미국인이었지만 조선을 위해 일하다 죽은 '아버지'같은 요셉. 유진은 그런 그의 죽음을 덮으려는 조선 정부 등의 처사에 반발한다. 지금 그에게는 요셉의 죽음을 덮으려는 조선 정부나, 그의 죽음을 사주한 이완익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요셉의 죽음을 파헤쳐가던 유진이 그 과정에서 알게된 사실들은 정문 휘하 '의병단'에게는 위기였다. 그들에게 유진이 파헤치기 시작한 건 그저 사건이 아니라, 의병의 전모였으니까. 그렇기에 '미국인'이자 '이방인'인 유진은 의병에게는 위험한 인물이었고, '제거' 대상이 되고 만다. 이는 역으로, 유진이 곧 '이방인'이 될지, '의병'의 동지가 될지 결정의 순간을 맞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건 앞서 "군사 고문관이 되어달라"는 고종의 청탁과는 결을 달리한 선택이다. 애신 앞에서 노비의 신분이었던 자신의 '전존재'를 밝히던 그 순간과도 다른 것이다. 드라마는 이제 본격적으로 미국인이었던 유진을 선택의 벼랑으로 몬다. 더구나 총을 들고 그를 저격하려 올 사람은 애신이다. 이제 더는 '미국인'이라는 존재가 그의 '안전 장치'가 될 수 없다.

경계인으로 안온했던 삶... 위기 맞은 동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조선에서 백정은 사람이 아니었다. 일반 백성 앞에서조차 머리를 들 수 없었고 매질은 일상이었다. 그런 백정은 조선의 신민이 아니었다. 어린시절 가마를 타고 가던 애신은 담 너머에서 부모의 조리돌림을 지켜보던 동매를 가마에 태워 구해준다. 이후 동매는 고국을 떠나 일본에 안착한다.

동매는 그곳에서 짐승을 잡던 칼을 사람에게 겨누었고 이후 그를 바라보는 눈은 달라졌다. 그런 그가 '일본'을 등에 업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양반도 아니지만 그가 '행차'하면 사람들을 고개를 조아리며 뒷걸음질 친다. 그의 칼 앞에서는 일본인들조차 움찔한다. 그는 그렇게 '무신회' 한성지부장으로 호가호위했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하지만 그의 위세는 '일본'이라는 그늘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완익과 구동매 모두 일본의 앞잡이었지만, 품고 있던 뜻이 달라지는 순간 그 둘은 적이 된다. 이완익에게, 그리고 일본에게 덩치가 커진 동매는 이제 고애신의 조부 고사홍을 잡는 데 쓰이는 '개'일 뿐이었다. 살기 위해 일본으로 가 칼을 잡은 동매였지만, 주인인 일본이 자신을 버리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렇게 이방인이던 유진과 동매는 경계인으로서 안온했던 존재의 위기에 봉착한다. 그리고 그것은 <미스터 션샤인>이 그리고자 하는 '의병 항쟁'의 큰 흐름과 맞물린다. 이방인이었던, 그리고 노비이자, 백정, 조선의 신민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그들마저 조국을 구하기 위해 총을 드는 순간, '의병 항쟁'은 극적이 된다.

그것을 위해 유진은 미국인임에도 조선을 위해 일하던 선교사 양아버지를 잃게 됐고, 동매는 자신이 의탁하던 일본과 또 다른 일본의 앞잡이의 배신에 봉착하게 된다. 그들이 가장 많이 믿던 것들을 잃는 순간,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직시하게 될 것이다.

이완익의 존재, 드라마지만 편치 않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 tvN


아직도 국가대 국가의 경기에서 한일전은 '필승'해야만 하는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듯, 역사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는 미국과 일본의 그늘에서 호가호위하는 주인공들의 존재를 편안하게 즐길 수 없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그 무력했던 국가의 상황 속에서 일본의 앞잡이들이 판치는 상황을 지켜보는 건 편치 않다. 드라마 속 '이완익'으로 대표되는 일본 앞잡이가 조선의 정부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은 더더욱 불편하다. 다른 하나는 드라마 속에서 의병 활동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이다. 과연 구한말 우리는 그렇게 조직적으로, 신분 제도를 넘나들며 양반과 하층민이 손을 잡고 집요하게 저들의 침탈에 대비했을까?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런 구한말 시대 상황에 대한 우리의 '무지'다. 국사 시험에서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의 이름에 배역을 맡았던 배우의 이름을 쓸 정도는 아니라지만,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라고 여기면서 실제 역사적 사실과 구분하며 여유롭게 시청할 정도로 우리의 역사적 지식이 탄탄하지 않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인 데는, 현실의 일천한 국사 교육이 적잖은 영향을 준다. 일부 학부모가 <미스터 션샤인>을 본 아이가 실제 역사와 혼동할까 우려하는 것도 역사 교육의 현실이 처참하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고작 몇 번, 달달 외우는 형식의 역사 교육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제대로 알려줄 수 없다. 한편으로는 어른이라고 해서 뭐가 다를까, 라는 생각이 드는 우리의 현실이 더 문제적이라고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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