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금토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이 본격적인 로맨스를 예고하고 있다. 회가 거듭할수록 드라마의 남주 도경석이 구사하는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화법이 인상적이다. 지난 주말까지 8회에 이르는 매회, 도경석이 날리는 돌직구에 감탄하고 있다. '얼굴 천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도경석은, 그 별칭이 썩 잘 어울리는 차은우가 연기하고 있다. 마치 20대의 장동건이 환생한 듯한 매끈한 얼굴의 차은우는 '신인스럽게' 그럭저럭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한 장면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한 장면 ⓒ JTBC


도경석은 그다지 말이 없는, 필요한 말 위주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대답을 주로 말하는, 그나마도 짧고 간결한 길이의 화법을 구사한다. 듣는 상대를 배려해 포장하지도 않고, 뱅뱅 돌려 말하지도 않는다. 사회성이라고는 찾아 볼래야 찾아 수 없는 화법이다. 처음엔 그저 순정만화의 흔하디 흔한 '나쁜 남자' 콘셉트의 도식적인 어법이라 생각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도경석의 화법은 상대 캐릭터들의 화법이 가지는 문제점을 드러내며,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해보게 한다.

도경석의 말은 마음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의 말은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점은 현수아와의 화법과 비교되며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현수아는 속 마음과 다른 겉말을 구사하는 인물이다. 곧잘 상대를 배려하는 친절한 말을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소위 상대를 '먹이는 말'을 하고 있다.

현수아는 자신의 자연스런 미모를 칭찬받는 대화 사이에, 굳이 강미래를 호출한다. 강미래를 포함해 모두들 멋쩍게 웃고는 있지만, 자리는 갑자기 어색해진다.

현수아 : 미래도 고친 데 없잖아요.
도경석 : 야, 재밌냐?
현수아 : 뭐가?
도경석 : 재밌냐고?
현수아 : 아, 개강 파티말야?
도경석 : 개강 파티? 너 하는 짓거리 말하는데?
현수아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도경석 : 모른 척하는 거겠지.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2회 중-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한 장면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한 장면 ⓒ JTBC


현수아는 강미래의 미모를 칭찬하는 것 같지만, 사실 강미래의 성형 사실을 떠벌려 당황스럽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평온하게 던지는 현수아의 화법은 늘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마음과 다른 말을 하지 않는 도경석은 겉말과 속마음이 다른 현수아 화법의 이중성을 정확히 집어낸다. '모른 척'하고 꾸며내는 말이 드러내는 본심과 그 추악함을 말이다.

이 '모른 척'에는 다수의 말없는 수긍이 공존한다. 누군가가 선의를 가장한 가시 돋힌 말에 공격당하고 있을 때, 우리는 알고도 '모른 척' 그저 같이 웃는 다수가 되기 쉽다. 도경석처럼 직설적으로 지적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가식적인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겠지만, 상처받는 누군가를 위해서는 '아는 것'을 표현할 용기가 필요하다.

속엣말을 그대로 전하는 도경석의 화법은 때론 상처를 만든다. 도경석은 강미래에게 '얼굴에 급 매기는 네 마인드를 성형하지 그랬냐', '약속 안 지키는 인간들, 질색이야'라는 식으로 상대의 아픔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경솔하게 말한다. 언중유골이라고 되새길 의미가 말들이지만, 듣는 상대는 화가 나고 상처가 될 말들이다. 상대를 위한 충고가 이렇게까지 적나라할 필요는 없다. 만약 도경석이 이런 말을 던지고도 태연하다면, 도경석의 화법은 되새길 필요가 없다.

도경석은 상대에게 날린 독설이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상대의 아픈 상처를 간과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바로 사과를 한다. 도경석의 사과는 간결하고 담백하지만, 즉시이며 진심이다. 누구든 말실수가 없는 완벽한 화법을 구사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강미래에게 심하게 말해 미안하다고, 네 잘못도 아닌데 화풀이해 미안하다고, 현수아에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도경석은 주저없이 사과한다. '사과'에 대한 도경석의 생각은 명확하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한 장면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한 장면 ⓒ JTBC


유진 : 진짜 정분이한테 미안해서 어떡하냐.
도경석 : 사과해야지.
유진 :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서 사과하기 힘들다 그 뜻 아니냐고.
도경석 : 그러니까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지.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6회 중-

경석 모 : 차마 미안하다고 말도 못하겠고...
도경석 :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하는 거죠. 뭐가 미안하신대요?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7회 중-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너무 미안하면 너무 미안하다고, 도경석에게 사과는 지극히 단순한 것이다. 이 간단한 것을 쉽게 하지 못해 우리는 무수한 오해와 상처 속에 남겨진다.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사과의 말, 꼭 해야 할 그 말을 도경석은 당연하게 짚어준다.

도경석의 화법은 말의 중요 기능인 일반적인 사회성을 담고 있지 않다. 그는 잘 보이려 말을 꾸미지도 않고, 빈 말을 던지지도 않으며, 거절에도 거침이 없다. 그의 건조한 화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그의 화법에는 예쁜 여자에게 예쁜 말을 하고, 멋진 남자에게 멋진 말을 하는, 차별이 따르는 부끄러운 사회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한 장면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한 장면 ⓒ JTBC


그러나 그는 친하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축제 때 바쁘지 않겠냐는 강미래에게 "난 안 바빠"라고, 데려다 주지 않아도 된다는 강미래에게 "데려다 줘도 되잖아"라고 마음에 있는 그대로 말한다. 포장하지 않는 솔직한 도경석의 화법은 다수를 포섭하는 사회성에는 취약하다. 그는 다수의 지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경석에게 중요한 것은 다수의 시선과 평가가 아닌, 그의 마음이 가는 한 지점이다. 도경석 화법 안에서 사회성은 두드러진 솔직함에 떠밀려 한쪽으로 내처져 있다. 그러나 도경석의 마음이 연결하고 싶어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두드러진 솔직함이 곧 사회성이 된다. 진심이 데려오는 친밀함은 말이 가져오는 친밀함 보다 조금 늦을 수 있지만, 그 힘은 보다 강력하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한 장면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한 장면 ⓒ JTBC


도경석은 외모로 인해 기름기 쏙 뺀 사회성 결여 화법으로도 대접을 받는 인물로 그려진다. 드라마가 현실을 조금 과장해 표현한다 하더라도 훌륭한 외모가 유리하게 작용하는 세상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세상 안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마치 외모를 꾸미듯 말도 꾸며내고 있다. 때론 그 치장이 도를 지나쳐 마음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을 보면서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내아이디는강남미인 도경석 도경석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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