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꿈꾸는 퇴사! 새해 첫날 좌천 통보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무기력한 40대 회사원이던 제가 딴짓을 하면서 퇴사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과연 퇴사할 수 있을까요? - 기자 말

[이전기사] 퇴사 꿈꾸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자전거 일주하자" (http://omn.kr/s70z)

마흔이 넘은 나이에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결정하게 되었을 때 2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첫 번째는 아내와 나의 체력문제 및 아내의 안전문제였다. 이 걱정은 기우였다. 라이딩 시작 후 2시간이 지나서 나만 잘하면 된다는 것이 팩트로 확인이 되었다.

두 번째는 고된 일정 속에서 혹시 생길 수 있는 인간관계의 갈등이었다. 체력적으로 힘이 들게 되면 누구나 짜증나게 마련인데다가 의견 충돌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한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아내의 자전거 실력 걱정만큼이나 두 번째 걱정도 기우였다. 역시 세상 걱정의 99%는 쓸 데 없는 것이고, 걱정은 걱정 인형에게 맡기는 것이 행복한 삶의 필수 조건이 아닐까 싶다.


어디를 가든 꼰대 노릇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이 인생의 신조 중 하나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 제주도 자전거 여행 멤버 중 최연장자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전거로 80킬로를 타고 나니 온 몸이 안 쑤신 곳이 없었다. 특히 안장이 닿는 민감한 부분의 고통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그래도 단체 생활이고 처음 보는 멤버들도 있어서 이것저것 하려고 굼뜬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 이따 설거지 할 때나 도와주세요. 형이 느린 몸으로 서성이니 저녁 준비가 더 오래 걸려요."

저녁과 간단한 다과를 마친 후 다음 날 일정을 위해 일찍 자리를 파했다.

다 같이 힘든데 조금 더 힘들어 보이는(?) 나를 배려해 주는 동생들에게 조금씩 마음이 열렸다. 너무 쉬운 남자인가? 당시에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서, 무엇보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사실 아무 것도 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일의 폭우를 빌며 잠자리로 슬며시 들어갔다.

'아내에게 그렇게 큰소리 쳐 놓고 이제 와서 내일 못 가겠다고 하면... 그리고 애들도 저렇게 챙겨 주는데... 비 많이 오면 안전상의 이유로 라이딩 취소한다고 했으니. 오! 제발.'

얼마나 피곤했는지 속으로 몇 마디 중얼거리자마자 잠이 들었고, 군대의 아침과 같은 속도로 새 아침이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결말


'오! 신이시여! 제 기도를 들어주셨군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도로는 빠른 속도로 젖어 가고 있었고 내 마음에는 환희가 차올랐다.

"30분만 더 기다려 보고 다수결로 결정할게요. 여행 온 건데 다치면 안 되잖아요. 지금 상태로 비가 계속 오면 저는 중단하는 쪽에 한 표입니다."

캡틴 수현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는 그치기 시작했고, 아내를 포함해 전 멤버들이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둘째날은 빠지기로 한 지윤이를 따라 관광을 하고 싶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 잡았다.

"형! 오늘만 넘기면 7부능선을 넘긴 겁니다. 파이팅!"
"오빠! 컨디션 어때요? 언니는 멀쩡해 보이는데요? 호호호."

나는 어느새 우리 팀 전체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 둘째날은 오르막이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엉덩이 쪽에 더 이상 불가능 할 정도의 패드를 부착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오빠! 어제보다 훨씬 잘 하고 있어요. 처음인데 엄청 잘 하는 거예요!"

회사에서 부장이나 임원이 하는 말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잘도 새겨 지는데, 녀석들이 해주는 격려는 한 쪽 귀로 들어오기 무섭게 다른 귀로 흘러 나갔다. 오늘도 꼴찌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과연 내가 완주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내가 너무 뒤처지는 바람에 예상보다 빨리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디서 먹지? 태욱아, 네가 가서 점심 먹을 만한 곳 좀 미리 찾아봐."

캡틴 수현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태욱이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국인의 밥상>과 <생활의 달인> 광팬인 나는 평소 몹시 싫어하는 말이 있었다.

"야! 배고프다. 그냥 아무데서나 한 끼 때우자."

이렇게 불경스러운 말이 어디 있나? 하루에 5끼를 먹는 것도 아닌데, 아무데서나 한 끼를 때우다니? 한 끼 한 끼를 선택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데 말이다.

나 때문에 목표 지점까지 정한 시간에 도착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누나! 여기 무슨 막 블로그 맛집은 아닌데, 맛있어 보여요. 선택지가 좁긴 하지만."

그렇게 대충 들어간 제주도의 이름 모를 식당에서 나는 신세계를 맛보았다. 사장님이 직접 잡아 올린 제철 생선에 사모님의 비밀 비법으로 만들어 낸 성게 미역국. 철마다 달라진다는 (가지 수는 적지만) 감칠맛이 나는 밑반찬들. 설상가상(?)으로 찰기가 도는 하얀 쌀밥까지.


숙소로 돌아오니 회 파티가 벌어졌다. 주량이 약하지만 이날만큼은 취하고 싶었다. 내일 오전 일정이 남아있지만, 마음속으로 작은 성공을 자축하고 싶었다.

'잘했어! 대단해! 기특해! 여기까지 온 것만도 대단한 거야.'

취기가 적당히 오르니 라이딩 멤버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가슴 속에서 전우애가 솟아났다.

이때 아내가 실언을 하기 시작했다.

"애들아! 우리 남편이 제주도 자전거 일주 여행 후기를 써 줄 거야!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책도 좋아하지만, 글도 재미있게 잘 써!"

갑작스런 아내의 말에 나는 몹시 당황을 했다.

"아니 여보? 무슨... 나는 글을 써 본 적이 없는데, 설, 설마 연예할 때 써 준 편지를 근거로 이런 무시무시한 말을 하는 건 아니지. 에이, 난 못 해. 책 읽는 거랑, 글쓰기랑은 전혀 다른 이야기야. 에이 말도 안 돼."

그렇게 우리의 제주도 환상종주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갔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


버킷리스트를 지우며 정말 하고 싶은 걸 정했다.
 버킷리스트를 지우며 정말 하고 싶은 걸 정했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일상으로 복귀한 첫 날부터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불이 났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격려하는 것이 흡사 참전 용사들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분위기 메이커 두나의 카톡 메시지가 나의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그리고 그녀의 미워할 수 없는 채근과 독촉은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오빠! 우리 여행기 언제 나와요? 너무 너무 기다려져요!"

처음 이틀간은 그냥 하는 이야기 인 줄 알았는데, 사흘째는 부담이 되고, 닷새가 넘어가니 짜증이 났다. 마침내 일주일째가 되는 날 모든 걸 체념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라이팅 멤버였던 태욱이가 우리 일정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내주었다. 두나의 집요함과 태욱이의 동영상으로 인해 여행기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용암처럼 폭발했다.

기억을 더듬으며 녀석들과 있었던 일을 한 자씩 적어 나갔다. 그렇게 점점 여행 속으로 다시 빠져 들게 들었다. 마침내 여행기를 작성한 후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다. 첫 번째 독자는 아내였다. 아내는 내가 쓴 글을 보고 재미있다고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오~! 여보 재미있어. 자기 글 한 번 써 보는 거 어때?"


모두 내가 쓴 여행기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혹시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망상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후, 스탠드 등을 밝히고, 하얀 백지 위에 내가 좋아하는 3가지를 적어보기로 했다. 이 세 가지로 당장 미래를 대비 할 수는 없지만, 10년 또는 20년 후를 위해 이제라도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로 제2의 인생을 대비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얀 종이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적어 나갔다. 마치 정성을 다해 적으면 램프의 요정이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까 하는 심정으로 적어 나갔다.

'농구, 요리, 책 읽기'

농구...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농구 선수에 도전해 보리라. 요리... 주변의 평가가 그리 좋지 않으니 취미로 남겨두기로 하자. 그렇게 두 개의 꿈에 줄을 그었다.

독서... 이것도 꿈인가? 책을 읽어서는 돈을 벌 수가 없는데. 그럼 혹시... 에이, 내가? 이런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나는 조심스럽게 책 읽기에 두 줄을 긋고, 슬며시 그 옆에 글쓰기를 적어 넣었다. 입 밖으로 낸 말도 아니고, 머릿속으로 한 생각인데도 누구에게 들킬까 민망했다. 피식 헛웃음이 났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왕후장상의 씨도 따로 없다는데, 글 한 번 써봐! 누가 너 보고 작가 되라는 것도 아니잖아.'


태그:#퇴사, #꿈, #제주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